|
겨울산, 그 냉정한 침묵 – 오봉산,제왕산,능경봉,고루포기산
1. 새봉, 선자령, 곤신봉 연릉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떠돌이 신세로.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곳, 들새가 가는 길, 표범이 가는 길을 나도 가야겠다.
껄껄대는 산사나이들의 신나는 이야기와 그리고 기나긴 눈벼랑길을 다 하고 난 뒤의 깊은 잠과 달콤한 꿈만 내게
있으면 그만이다.
―― 김장호(金長好, 1929~1999),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 산행일시 : 2023년 12월 24일(일) 맑음
▶ 산행인원 : 4명(광인, 캐이, 그러지마, 악수)
▶ 산행코스 : 오봉서원,오봉산,만종봉(586m),제왕산,828m봉,능경봉,샘터,전망대,고루포기산,1,104m봉,오목골,
횡계리 지르메 마을
▶ 산행거리 : 도상 17.5km
▶ 산행시간 : 9시간 45분(07 : 30 ~ 17 : 15)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KTX 열차 타고 강릉으로 가서, 택시 타고 오봉서원으로 감
▶ 올 때 : 횡계리 지르메 마을로 내려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진부로 가서, KTX 열차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5 : 32 – 청량리역
07 : 02 – 강릉역
07 : 30 – 오봉서원, 산행시작
08 : 30 – 오봉산(五峰山, 542m)
09 : 07 - ┣자 갈림길 안부, 제왕산 2.24km
09 : 25 – 임도, 제왕산 1.6km
10 : 05 – 제왕산(帝王山, △840m)
10 : 35 - 임도
10 : 58 – 안부, 대관령 0.8km, 점심( ~ 12 : 20)
13 : 04 – 능경봉(陵京峰, 1,122m)
14 : 01 – 샘터,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광산골, 직진은 전망대 1.6km
14 : 52 – 전망대(1,168m), 고루포기산 1.0km
15 : 29 – 고루포기산(△1,238m)
16 : 27 - ┣자 갈림길 안부, 직진은 지르메 1.5km, 오른쪽은 오목골 0.5km
16 : 45 – 도로, 라마다호텔
17 : 15 – 지르메 마을, 산행종료
19 : 00 – 진부역
20 : 23 - 상봉역
2.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3. 산행 그래프
▶ 오봉산(五峰山, 542m)
새벽에 일기예보대로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 도로와 인도가 온통 새하얗다. 청량리역을 가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
이 들어 일찍 집을 나선다. 아직 가루눈이 내린다. 차량통행에 뜸하다. 카카오택시를 부른다. 7분후에 도착할 거라고
한다. 이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다. 택시는 도착예정시간을 6분, 5분, 4분 … 분단위로 알려주며 정확한 시간
에 도착한다. 눈발 날리는 도로는 휑하다. 택시는 기다시피 서행한다. 88올림픽대로에 들어서고 천호대교를 건너도
마찬가지다.
교통장애는 눈길만이 아니다. 신호대기에는 왜 그리 자주 걸리는지. 그 대기하는 시간 또한 초조하도록 길다. 택시
기사님은 내 사정을 알아보고 나름대로 분투하여 달린다. 가까스로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무사히 오는지 걱정하실
광인 님에게 알린다. 나더러 상봉역이냐고 묻는다. 아, 이 시간 강릉 가는 KTX 열차는 상봉역을 경유한다. 내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상봉역으로 가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한데 말이다.
열차는 캄캄한 어둠 속을 달린다. 차창 밖으로 아무 볼 것이 없고, 이른 새벽부터 서두르느라 다 못잔 잠을 청한다.
강릉역이 어스레하고 황량하다. 오늘 함께 산행할 4명의 일행을 강릉역에서 만난다. 각자 열차표를 예매했었다.
곧바로 택시승강장으로 가서 길게 늘어선 택시 중 맨 앞차를 탄다. 강릉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쾌속으로 달린다.
오봉서원이 금방이다. 나는 이곳이 처음인데 다른 일행은 이전에 왔던 터라 눈에 익은 지형이다.
오봉서원 너른 주차장에 내려 산행채비하고 서원 담장 앞 안내문을 들여다본다(서원은 문이 잠겼다). “이 서원은
공자 ㆍ 주자 ㆍ 송시열의 영정을 보시고 제사를 지내며 학생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함헌(咸軒)이 사신으로 중국에
갔다가 공자 진영(孔子 眞影)을 가져와서 1556년(명종 11)에 서원을 건립하고, 1782년(정조 6)에는 주자(朱子)의
영정을 모셨으며, 1831년(순조 31)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을 모셨다. (…)”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은 공자의 영정을 보려고 이곳을 찾았다.
그의 「오봉서원(五峯書院)에서 공자(孔子)의 진상(眞像)을 배알하고 퇴계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五峯書院。謁夫子
眞像。次退陶先生韻)」라는 시 2수 중 제1수다. 임영(臨瀛)은 강릉의 옛 지명으로 고려 34대 공양왕(恭讓王) 때
강릉을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별호(別號)를 임영(臨瀛)이라고 했다.
임영에 사묘 있단 말 일찍이 들었는데
오늘 아침 처음으로 유상에 숙배했네
관동의 한 구역을 직접 와서 밟아 보니
세속 먼지 덮였던 눈 시원하게 확 트이네
曾聞祠廟在臨瀛
遺像今朝拜肅淸
脚踏關東一頭地
塵眸刮得十分明
ⓒ 한국고전번역원 | 양홍렬 (역) | 2006
이 시 중에 “세속 먼지 덮였던 눈 시원하게 확 트이네(塵眸刮得十分明)”는 공자 진영을 보아서라기보다는 서원 뒤
로 몇 발짝 더 올라가면 훤히 트이는 칠봉산 연봉 넘어 칠성대 장릉의 시원스런 전망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선 중기
의 문신으로 오봉서원을 건립한 함헌(咸軒, 1508 ~ ?)이 자신의 호를 칠봉(七峯)이라 한 것은 이 칠봉산에서 따왔음
이 틀림없다.
오봉서원 왼쪽 뒤로 오르고 큰재궁골 사면을 길게 돌고 강릉 단오제 기능보유자인 김신묵(金信黙)의 무덤 지나 서당
뒷골을 간다. 완만한 오름길 오른쪽은 사유지로 철조망을 길게 둘러쳤다. 철조망 따라 오른다. 일출이 별 감흥 없이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 보인다. 날이 의외로 포근하다. 등로에 쌓인 눈은 얼어 딴딴하다. 걸음걸음 발바닥에 미끌미
끌한 감촉을 즐기며 오른다. 오봉산 중턱 쯤 올랐을까, 벌목한 사면 뒤로 장엄한 경치가 펼쳐진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백설 덮인 선자령 연릉과 그에 이르는 무수한 산줄기에 아! 하고 놀라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한다. 장관이다. 바로 이런 경치를 보려고 눈발 날리는 새벽을 도와 달려왔다. 오봉산 정상에 오르는 내내 두 눈을
그에 조준한다. 기실 오봉산 정상은 키 큰 나무숲에 둘러싸여 사방 조망이 없다. 오봉산은 국가 숲길인 대관령 숲길
의 한 기점이다. 정상 공터 한복판에는 커다란 돌탑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오봉산은 고만고만한 높이의 다섯 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아니다. 실지는 물론 지형도를 아무리 살펴도
한 개 봉우리일 뿐이다. 그 점에서 이 오봉산의 작명은 매우 이례적이다. 오봉산의 의미는 음양오행설에서 찾기도
한다. 조선시대 어좌의 배경그림인 일월오봉도가 시경(詩經) 천보(天保, 하늘이 보우하시어)를 형상화하였다고 하
는데, 정작 천보에는 오봉이 나오지 않는다. 다음은 시경 천보 중 일월오봉도에 가장 가까운 부분이다.
如月之恒 달이 점점 차오르는 것과 같이
如日之升 해가 떠오르는 것 같이
如南山之壽 남산이 무궁함 같이
不騫不崩 결코 이지러지지 않으며 무너지지 않네
如松栢之茂 소나무 전나무 무성함과 같이
無不爾或承 당신의 자손 길이 이어지리라.
5. 일출직후, 칠성대(954m)
6. 새봉
7. 선자령
8. 화란봉
9. 제왕산
10. 제왕산 가는 길
11. 멀리 가운데는 대관령
12. 능경봉
13. 오른쪽은 서득봉
14. 새봉, 선자령, 곤신봉 연릉
▶ 제왕산(帝王山, △840m), 능경봉(陵京峰, 1,122m)
오봉산 정상에 오른 의식으로 배낭 벗어놓고 정상주 탁주 분음하고서 물러난다. 이제부터 당분간은 대관령 숲길이
라 잘 다듬은 등로다. 눈길은 오를 때보다 내릴 때가 더 조심스럽다. 아이젠을 맨다. 눈길 또는 빙판 내리는 발걸음
이 한결 가뿐하다. 눈길은 이미 여러 사람이 오갔다. 안부마다 봉마다 솔향치유센터로 수렴하는 거미줄처럼 조성된
숲길 갈림길이 나 있다. 길게 내렸다가 제왕산 방향표지 보고 그 인적을 따랐더니 만종봉(586m)을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넘어버린 것을 뒤늦게 지도 보고 깨닫는다. 아깝다.
반도지(半島池) 모양의 왕산 함박꽃 삼림습원에 이어 소나무 숲길 지나고 임도다. 임도 건너 바로 산릉에 붙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송백후조(松柏後凋)인 노송과 그 뒤로 세한(歲寒)의 설산인 대관령, 새봉, 선자령, 곤신봉 등이 또
다른 세한도(歲寒圖)이다. 그 그림을 감상하느라 제왕산을 힘 드는지 모르고 오른다. 오석의 아담한 정상 표지석 앞
에 언 눈에 덮인 삼각점이 있다. 안내문에 삼각점은 ‘구정 405’이다.
제왕산은 오래 전부터 겨울산행의 명소로 꼽혀왔다. 노송과 어울린 광대하고 장엄한 설경의 조망이 그 특장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제왕산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 32대 우왕(禑王, 1364~1389)이 이곳에 피난 와서 성을 쌓았다는 유래
에서 비롯하는 게 아닐까 한다. 제왕산 정상을 서쪽으로 약간 벗어나면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제왕산을 오른
동릉과는 달리 서릉은 암릉이다. 제왕산성은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는 날등이기도 하다.
여기서 바라보는 능경봉은 그 우뚝하고 준험한 모습에 어떻게 저기를 오를까 우선 기가 꺾인다. 더구나 거친 칼바람
이 그런 분위기를 잡는다. 이곳은 오늘만 바람이 센 게 아닌가 보다. ‘강풍주의’라는 표지판이 있다. 외돌괴로 솟은
솟대바위 지나고 바윗길은 계속 이어진다. 828m봉은 암봉이다. 좀 더 트인 조망을 바라보고자 굳이 교대로 정상에
기어오른다. 남동쪽으로 칠성대, 만덕봉, 석병산 등이 하늘금을 이룬다.
고개 숙이고 총총걸음 하여 테크계단 내리고 임도다. 방금 넘어온 제왕산은 1.0km이고, 진행방향인 대관령은
2.0km인데 우리는 그 0.8km 전 안부에서 능경봉을 오를 것이다. 그때까지 임도를 간다. 임도는 능선으로 났다.
다만 도중에 888m봉은 직등하지 않고 그 왼쪽 사면을 도는 임도로 간다. 이런 눈길 임도는 걸음마다 뽀드득하여 걷
기에 재미난다. 일단의 등산객들을 만난다. 모두 중무장하였다. 반갑다. 대관령에서 온다고 한다.
골 건너로 능경봉이 첨봉이다. 그 동쪽 사면이 눈부시게 빛나는 것은 빙화가 만발하여서다. 오늘은 저 경치가 고대
질세라 어서 가서 보자 하고 조바심내지 않는다. 지난주 예봉산 산행 때 빙화인 줄 알았고, 빙화는 설화와는 다르게
쉽사리 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점심 먹을 자리 찾는다. 888m봉을 내린 안부는 고갯마루라 바람이 세게 분다.
뒤돌아 바람이 모르는 절개지 임도에 자리 편다. 비닐쉘터를 친다. 어느새 바람이 몰려와서 흔들어댄다.
겨울산행의 짜릿하고 달콤한 맛은 설한풍 한가운데 비닐쉘터를 치고 그 안에서 악우들과 술잔 곁들여 가며 담소를
나누는 데 있다. 칼바람이 비닐을 흔들어댈수록 우리는 더 신난다. 세상일은 모두 잊는다. 웃고 또 웃는다. 버너 불
피워 코펠에 어묵, 떡사리, 만두 넣고 끓여 먹은 다음 라면도 끓여 먹고, 잔반에 밥 넣고 죽 쑤어서 먹는다. 반주는
탁주와 잘 익은 산삼주, 마가목주다. 마지막 코스는 식후 마가목주 얹은 커피다.
임도 따라 고갯마루 넘어 좀 더 갔으면 대관령에서 고루포기산을 오가는 잘난 백두대간 길을 만났을 텐데, 성질 급
한 우리는(걸어 다니는 산경표이기도 한 광인 님은 좀 더 가자고 주장했다)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성긴 산죽지대다.
눈에 발목까지 빠진다. 언 눈이라 내 무게를 지탱할 듯하다가 푹 빠지고 만다. 그럴 때면 발을 빼내기가 쉽지 않다.
함부로 내닫다가는 발이 빠지지 않아 엎어진다. 또박또박 걸어야 한다.
한참동안 설원을 이리저리 누벼 대관령을 오가는 등로를 찾아낸다. 잘 났다. 넙데데한 설원이라 아무데다 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여러 곳을 금줄 치고 막았다. 동쪽 사면은 급하고 서쪽 사면은 완만하다. 능경봉 정상이 가까워지자
급한 동쪽 사면에 빙화가 화려하다. 흐드러진 빙화다. 멀리서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그 속에 들여가서도
본다. 그러다 보니 너른 눈밭의 능경봉 정상이다. 덩그렇게 놓인 자연석의 정상 표지석 뒤로 칠성대와 만덕봉 연릉
이 장쾌하다.
배낭 벗어 놓고 휴식한다. 능경봉 또한 제왕산과 더불어 겨울산행지로 이름난 산이다. 광활한 설원과 빙화, 발아래
바라보는 강릉과 만덕산 연릉 때문이리라. 때마침 고루포기산을 넘어온다는 홀로 산꾼을 만난다. 그 분에게 부탁하
여 모처럼 넷의 인증사진을 찍는다.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이 소개하는 능경봉의 이름 유래이다.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세 가지 속설이 있다. 첫째, 대관령 능선 아래 있다고 해서 능정봉(凌頂峰)이라 한다.
둘째, 산의 모양이 둥그스름하여 마치 큰 왕릉처럼 생겨서 능정봉이라 한다. 셋째, 활시위처럼 생겨서 소궁음산(所
弓音山)이라 한다. 그런데 이 속설은 능정봉 이름의 해석으로는 신빙성이 약해 보인다. 능선(稜線)과 왕릉(王陵)의
한자가 각기 다르고, 소궁음산은 소우음산(所亏音山)의 잘못된 표기로 여겨진다. 『관동읍지』와 『증수임영지』에서
는 “소우음산은 위에 영험한 샘이 나는 곳이 있으며 가뭄이 들어 비가 오기를 빌면 신통하게도 비가 온다고 하여
능정산(凌頂山)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릉디지털문화대전에는 ‘凌頂峰’이라고 하고, 이칭으로 ‘능경산’이라 한다.
15. 산 주름
16. 멀리 왼쪽은 만덕봉, 오른쪽은 석병산(?)
17. 왼쪽은 화란봉, 오른쪽은 서득봉
18. 새봉, 선자령, 곤신봉 연릉
19. 제왕산, 그 왼쪽 뒤는 오봉산
20. 능경봉 가는 길
21. 능경봉 정상 주변
24. 능경봉 정상에서
▶ 고루포기산(△1,238m)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까지 5.2km이다. 언뜻 들여다본 지형도나 등산안내도 측면도에는 한 차례 길게 내렸다가 샘
터 안부에서 바닥 치고 세 피치 오르면 고루포기산인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봉봉을 무수히 넘어야 한다. 우선 하늘
가린 숲길을 0.2km 내려 ‘행운의 돌탑’을 지난다. 대세는 내리막이다. 눈길 인적은 능경봉 오를 때에 비해 눈에 띄
게 뜸해졌다. 한갓진 눈길이다. 수렴 사이로 고루포기산을 아득하게 바라보며 간다.
길게 내리다 한 봉우리 잠깐 오르고 다시 길게 내리기를 반복한다. 대체 얼마를 더 내려야 바닥 칠까 끝 간 데 없이
내린다. 세 개 봉우리 넘은 영동고속도로 위 산릉이다. 저 아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이 내 손가락 끝으로 튕기
면 멀리 날아갈 것 같은 장난감으로 보인다. 봉우리 한 개 더 넘어 샘터인 안부다. ┣ 갈림길 오른쪽은 광산골로 간
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때는 땀난다. 아이젠 덕 본다. 일보전진하려다 이보후퇴하는 경우가 없다. 한 걸음
도 허실함이 없다.
930m봉 넘고 잠시 설원을 지날 때는 느긋하다가 곧추선 오르막과 맞닥뜨린다. 긴다. 저 공제선 위가 이정표의 전망
대 같은데 오르고 보면 공제선은 신기루처럼 어느새 저 멀리 물러나 있다. 양봉래 태산 오르듯 한다. 오르고 또 오르
면 못 오를 리 없을 것. 이윽고 빙화가 만발한 전망대다. 데크 전망대에 올라서면 대관령면의 광활한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눈이 다 시원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오후 들어 날이 궂어진다. 원경이 흐리다. 바람이 연무를 몰아
내기보다는 연무를 몰고 온다.
고루포기산 정상 1.0km. 고도 1,100m가 넘는 오르내리막이 없는 설원이다. 가파른 왼쪽 사면은 눈부신 빙화 화원
이다. 일목일초가 저마다 경염하듯 꽃 피운 화원이다. 절벽에 막히면 등로에 올랐다가 다시 화원에 살금살금 들어가
둘러보기를 반복한다.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지르메(3.5km) 갈림길 지나고 완만한 오르막 0.2km 오르면 고루포기산 정상이다. 오석의 조그만 정상 표지석 앞에
있는 삼각점은 이등이다. 도암 24. 도암은 대관령면의 개명하기 전 지명이다. 사방 키 큰 나무숲 둘러 조망은 막혔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사전에 의하면 고루포기산 이름은 “이 산 넘어 명주군 왕산면에 고루포기라는 마을이 있어
산 이름을 고루포기산이라 하였다.” 한다. 명주군은 1995년에 강릉시와 통합하였다. 반면 강릉시에서는 ‘골폭산’이
라 한다. 일제강점기에 발행한 지형도에 이 산 이름을 ‘コルポキ山’(고루포기산)이라 표기했다고 한다.
고루포기산 몇 미터 아래와 그 아래 안반데기에는 풍력발전기인 수 대의 바람개비가 천천히 돈다. 그래도 쉭쉭 바람
가르는 소리가 위압적으로 들린다. 하산! 잘난 등로 따르기로 한다. 지르메 마을이 가장 가깝기도 하다. 임도가 그리
로 가니 발걸음 또한 수월하다. 건너편 발왕산과 그 주변은 연무에 가렸다. 아쉽다. 쭉쭉 내린다. 우리가 내리는
능선 끄트머리에 솟은 △934m봉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혹시 저 산을 넘지나 않을까 약간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에 다가간다. 야트막한 안부에 내려서고 ┣자 갈림길이 나 있다. 졸았던 가슴 쓸어내린다. 이정표에 오른쪽은
오목골 0.5km, △934m봉을 넘는 직진은 1.5km이다. △934m봉 쪽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은 조용한 눈길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그리로 가자고 하는 일행이 없다. 망설이지 않고 오목골로 간다. 산자락 길게 돌고 지능선에 자락
붙들어 오목골 입구로 내리고 조금 더 가면 라마다호텔이 나오고 차도다.
지르메 마을. ‘지름길’의 방언인 ‘지르메기’가 줄어든 말이 아닐까? 우리는 고루포기산에서 지름길로 내려왔다. 지르
메 마을이 불야성이다. 쇠고기 국밥집에 들러 머리고기 수육 놓고 맨 소주(덕순주가 아니다) 술잔 높이 들어 오늘의
무사산행을 자축한다.
25. 멀리 수렴에 가린 산이 고루포기산
26. 고루포기산 정상 가기 전 전망대 주변
27. 대관령면 전망대에서
28. 고루포기산 동쪽 연봉
29. 고루포기산 정상 가는 길 동쪽 사면
34. 횡계리 지르메 마을 가는 길
첫댓글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펑펑 쏟아진 눈을 치우고 들어와, 누마루에 난로 켜놓고 아직도 계속 내리는 눈을 보며 산행기를 읽었습니다. 그냥 부럽군요.ㅎ
누마루에서 술잔 기울이며 눈 구경하신다면 그보다 더한 호사가 없을 듯합니다.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정경과도 잘 어울리고요.
한폭의 그림입니다 ㅎ
그래도 실경보다는 당최 못합니다.^^
모든 장면이 시원시원하네요...얼음 꽃은 언제 보아도 황홀합니다. 요즘은 얼음 꽃 보는 재미에 산에 가는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역광에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을 카메라로 잡을 수 없어서 퍽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