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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2/6)
-뻬쩨르부르그의 잿빛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면 관리들은 자기 봉급과 취향에 따라 적당한 저녁 식사를 배불리 먹고 비로소 여가를 즐기게 된다. 관청에서 사각사각 종이 위를 미끌어져 가는 펜촉 소리,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일 또는 필요 이상 자진해서 떠맡게 되는 온갖 용무 둥에서 벗어나 이제 모두 다리를 쭉 뻗고 쉬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기운이 넘치는 사람은 여가를 즐기려고 극장으로 달려가고, 어떤 사람들은 길거리를 지나는 여자들의 모자 구경을 하려고 외출하며, 또 어떤 사람은 보잘 것 없는 관리 사회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예쁜 처녀에게 알랑대기 위해서 저녁 파티 장소를 찾곤 한다.
그러나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찬이나 나들이 따위는 단념한다.
그 대신 아파트 3층이나 4층쯤에 자리잡은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이다. 그런 집에서는 대개 돈을 아껴서 간신히 사들인 램프나 기타 물건으로 유행에 맞춰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실내는 대개 조그마한 방 두 개와 부엌, 현관이 있을 뿐이다.
이런 집 안 좁은 방에 흩어져서 대부분의 관리들은 트럼프 놀이를 하거나 싸구려 과자 조각에 홍차를 홀짝거리거나 파이프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카드를 돌리는 동안에는 상류 사회의 온갖 소문들을 화제에 올리는 것이다. 이런 상류 사회의 소문이야말로 러시아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에서도 인연을 끊지 못하는 그런 화제이다.
그런 화제조차 없을 때에는 어느 경비 사령관에게 보고가 들어왔는데, 팔꼬네가 만든 동상의 말 꼬리가 떨어져 나갔다는 둥 케케묵은 에피소드라도 재탕 삼탕으로 우려먹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뻬쩨르부르그에 사는 모든 관리,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아 헤매는 그런 시간에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어떤 오락에도 결코 끼어들지 않았다. 어쩌다 우연으로라도 그를 어떤 야회석상에서 보았다는 소문조차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음이 흐뭇해지도록 정서를 하고 나면 그는 내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또 무슨 일거리를 주시려니 생각하고, 미리부터 내일 일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그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연봉 4백 루블의 초라한 자기 운명에 만족할 줄 아는 인간은 이렇게 평화로운 생활을 보냈다.
만약 인생 항로 여기저기에 덧처럼 자리잡고 있는 그러한 불행만 없었다면 그의 이러한 생활은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은 꼭 구등관이 아니더라도 삼등관이나 사등관, 칠등관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관등의 인간들에게도 빠지지 않고 찾아들기 마련이다. 심지어 누구에게 충고를 하지도 않고, 자기 스스로도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구하려고 하지도 않는 그런 인간들에게도 이런 불행은 예외없이 찾아오게 된다.
뻬쩨르부르그에서 기껏 연봉 4백 루블 정도로 생활하는 모든 인간에게는 공통적으로 무서운 적이 하나 있다. 그 강적은 다름 아닌 북쪽 지방 특유의 지독한 추위였다. 물론 이 추위가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침 여덟 시쯤이면 관청에 출근하려는 관리들이 도시의 거리를 가득 메우게 된다 그리고 이 무렵이면 혹독한 추위가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어찌나 매섭게 몰아닥치는지, 가엾은 우리 관리 나리들은 어디다 코를 두어야 할지도 모르고 쩔쩔매는 것이다. 지위가 높은 양반들조차 추위에 머리가 띵할 지경이고 눈에 눈물이 글썽해지는 판이니 가엾은 구등관 따위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이란, 초라한 외투로나마 몸을 단단하게 감싸고 될 수 있는 대로 발걸음을 빨리 해서 대여섯 개의 골목을 얼른 지나 관청 수위실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몸을 녹여, 오는 도중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사무 능력이나 재주가 제 자리에 돌아 오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역시 그러한 거리를 될 수 있으면 빨리 뛰어서 지나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잔등과 어깨가 유난히 뼈에 사무칠 정도로 추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외투가 뭔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외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그는 자기의 외투 잔등과 어깨 두서너 군데가 마치 모기장처럼 얇아진 것을 발견했다. 나사천이 닳을 대로 닳아 훤히 비칠 지경이었고, 안감도 갈기갈기 해어진 상태였다.
여기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외투 역시 동료 관리들의 놀림감이 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그것은 이미 '외투'라는 고상한 명칭을 이미 상실하고, '싸개'라는 해괴망칙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실 그 외투는 겉모양부터가 무척 야릇했다.
우선 외투 깃이 해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외투 깃을 잘라 다른 해진 데를 기워서 입기 때문이었다. 외투를 깁는 재봉사의 솜씨도 그리 신통하지 못한 터라 외투는 이제 흡사 보릿자루 마냥 볼썽 사나운 꼬락서니였다.
외투를 살펴보고 나서 사태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대충 짐작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외투를 뻬뜨로비치에게 가져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뻬뜨로비치는 뒷계단으로 해서 올라가는 어느 4층 집 한 구석에서 살고 있는 재봉사였다. 이 친구는 애꾸눈에다 곰보였다. 그래도 말단 관리나 그 밖의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윗도리와 바지 등을 고쳐주는 솜씨는 나름대로 쓸모가 있었다.
물론 이것은 그가 술이 취해 있지 않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또 그가 다른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있지 않아야 했다. 하긴 이따위 재봉사 이야기를 여기서 이렇게 길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소설에서 어떤 인물이 등장할 경우 그 인물의 성격을 완전히 묘사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어서 부득이하게 여기에 뻬뜨로비치를 좀더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원래 그의 이름은 그리고리라고 불렸다. 다시 말해서 그는 어느 지주 귀족의 농노 신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뻬뜨로비치라고 불리게 된 것은 농노 해방 증서를 받고, 자유의 몸이 된 뒤로 축제 때마다 술을 진탕 마시게 되면서 부터의 일인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큰 축제 때에만 술을 마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력에 십자가 표시가 되어 있는 날이면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곤드레 만드레 취하게 됐다. 이 점에서 그는 자기 조상들의 전승에 무척 충실 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마누라와 다툴 때에도 그는 더러운 계집년이라는 둥, 독일 계집년이라는 둥 상스러운 욕을 내뱉곤 했다. 이왕 뻬뜨로비치의 마누라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여자에 대해서도 두서너 마디 덧붙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마누라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저 뻬뜨로비치에게는 마누라가 있다는 것, 그 마누라는 머릿수건 대신 모자를 쓰고 다닌다는 사실이 고작이다. 어쨌든 이 여자의 용모는 그다지 내세울만한 것이 못되는 모양이다. 그 여자의 옆을 지나칠때 콧수염을 쫑긋거리고 요상한 소리를 내면서 그 모자 아래 얼굴을 힐끗거리는 것은 기껏해야 말단 근위병 따위였다니 말이다.
뻬뜨로비치가 사는 곳으로 가는 뒷계단은 온통 구정물 투성이었다(물론 이것은 나름대로 깨끗하게 한답시고 걸레질을 한 것이다...). 게다가 뻬쩨르부르그의 아파트 뒷계단들이 으레 그렇듯이 두 눈이 아릴 정도로 지독한 알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뭐 이런 사실이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뻬뜨로비치가 외투를 고치는 삯으로 얼마나 달라고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그는 마음 속으로 2루블 이상을 절대 내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뻬뜨로비치의 마누라가 무슨 생선 따위를 굽는 모양이어서 부엌에 문자 그대로 박쥐 새끼조차 날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온통 연기가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주인 마누라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잽싸게 부엌을 통과해 작업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뻬뜨로비치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작업대 위에 앉아 있었다. 마치 터키 총독 마냥 책상다리를 한 자세였다. 재봉사들이 일을 할 때는 대개 그렇지만, 지금 뻬뜨로비치도 맨발이었다.
제일 먼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눈에 띈 것은 이미 눈에 익은 뻬뜨로비치의 엄지발가락이었다. 그 발톱은 모양이 비뚤어진데다 마치 거북 등처럼 두껍고 딴딴하게 보였다. 뻬뜨로비치는 명주실과 무명실 타래를 목에 걸고 헌옷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그는 벌써 3분 가량이나 바늘에 실을 꿰려고 하다가 방이 어둡고 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잔뜩 골을 내고 투덜거리는 참이었다.
"제기랄, 지독하게도 애를 먹이는군. 성미가 못된 계집년처럼 말이야!"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하필 뻬뜨로비치의 기분이 언짢을 때 찾아온 것이 마음에 좀 걸렸다. 사실 일을 맡기기에는 뻬뜨로비치가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거나 또는 그 마누라의 표현을 빌려 '애꾸눈이 싸구려 보드카에 퐁당 빠져 있을 때'가 좋았다. 그런 상태일 때는 뻬뜨로비치는 옷 고치는 삯을 선선히 양보할 뿐만 아니라 일을 맡겨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그럴 경우 나중에 뻬뜨로비치의 마누라가 찾아와서 자기 남편이 술김에 그런 헐값으로 일을 맡았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 일쑤지만, 그럴 경우에도 10코페이카 동전 한 닢이면 만사가 수월하게 해결되곤 했다.
그러나 오늘처럼 뻬뜨로비치의 정신이 맹숭맹숭할 때면 흥정하기가 무척 까다로워진다. 도대체 삯을 얼마나 달라고 할지도 짐작하기가 어렵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역시 이런 정황을 재빨리 눈치채고 얼른 뒤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뻬뜨로비치가 하나 밖에 없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이쪽을 쳐다보고야 만 것이다. 그 바람에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요즘 어떤가, 뻬뜨로비치!"
"어서 오십쇼, 나리!" 뻬뜨로비치는 이렇게 대꾸하며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손을 곁눈질로 살폈다. 무슨 돈벌이 일감을 가져왔는지 보는 것이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말이야, 오늘 온 것은 뻬뜨로비치, 그게 말이지..."
참고 삼아서 말해두지만,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뭔가 설명해야 할 경우 전치사와 부사, 심지어는 아무 의미도 없는 전치사까지 이것저것 동원해 늘어놓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이 까다로운 일일 경우에는 말끝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그건 분명히, 전혀, 그러니까, 에, 또, 뭐랄까..." 이따위 말로 얘기를 시작해 놓고서는 그 다음 말은 전혀 꺼내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 놓고서도 자기 딴에는 해야 할 이야기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지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오신 건데요?" 뻬뜨로비치는 이렇게 말하면서 또 한편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제복을 옷깃에서 부터 소매 자락, 어깨, 옷자락, 단추 구멍에 이르기까지 죽 훑어보았다. 하긴 이 옷은 뻬뜨로비치의 손으로 만든 것이어서 너무나 눈에 익었다. 그러나 일단 손님을 봤다 하면 그렇게 죽 살피는 것이 재봉사들의 몸에 밴 직업적인 습관인 것이다.
"그게, 다름이 아니고, 뻬뜨로비치... 내 외투가 좀... 아니 그러니까, 겉의 옷감은... 이렇게 다른 데는 다 멀쩡한데 말이지... 먼지가 좀 앉아서 겉으로는 고물처럼 보이지만, 아직 새 옷이나 마찬가지지... 그저 한두 군데가 좀... 아니 잔등과 어깨 부분이 좀 낡고, 이쪽 어깨가 좀... 알겠나? 요컨대 그것뿐이란 말일세... 다른 데야 뭐 손볼 데가 있겠나...?"
뻬뜨로비치는 싸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의 외투를 받아서, 우선 작업대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고 나서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손을 뻗어 창틀에서 동그란 담배통을 집었다. 그 담배통에는 어떤 장군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으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손가락 구멍이 뚫려 그 구멍을 네모난 종이로 메워놓고 있었다. 그래서 그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뻬뜨로비치는 코담배를 한 번 들이마시고 나서 다시 두 손으로 싸개를 집어들어 밝은 빛에다 찬찬히 비춰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또 다시 장군 초상화에 종이 조각이 붙은 담배통 뚜껑을 열고 담배를 콧구멍에 집어넣었다. 그는 담배통 뚜껑을 닫고 통을 치우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안되겠는데요... 이건 고칠 수가 없습니다. 외투가 너무 낡았어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니,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건가? 응, 뻬뜨로비치?"
마치 어린애가 뭔가 애원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말했다.
"어깨 있는 쪽이 좀 해진 것 뿐인데... 응, 자네한테 괜찮은 헝겊이 있을 것 아닌가?"
"뭐 헝겊이야 찾으면 나오겠죠." 뻬뜨로비치는 말했다. "하지만 헝겊이 있으면 뭐합니까? 대고 기울 수가 있어야죠. 하도 천이 낡아서 바늘로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찢어지고 말 텐데요."
"찢어져도 상관없다네. 거기에 또 다른 천을 붙이면 되니까 말이야."
"다른 천을 어떻게 붙입니까? 바닥 천이 워낙 형편없어서 바늘을 꽂을래야 꽂을 수가 없어요. 거 듣기 좋은 말로 나사지, 이게 어디 천입니까? 바람만 좀 세게 불어도 갈기갈기 찢어져버릴 것 같은뎁쇼."
"그러지 말고, 어쨌든 이걸 손을 좀 봐주게나. 이건 그래도... 거 뭐랄까...!"
"도저히 안 됩니다!" 뻬뜨로비치는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바닥 천이 워낙 낡아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구요. 그러느니 차라리 이걸 잘라서 각반이라도 만드시는 편이 훨씬 나으실 겁니다요. 이제 겨울이 되고 날씨가 점점 추워질 것 아닙니까. 양말 갖고는 아무래도 발이 시릴테니까요. 하긴 그 각반이라는 물건이 독일놈들이 돈을 긁어모으려고 재주를 부린 것이긴 합니다만...(뻬뜨로비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독일 사람들을 욕하고 비웃기를 즐겼다) 그 대신 어쨌든 외투는 아무래도 새로 하나 장만하셔야 할 겁니다요..."
'새 외투'라는 말을 듣자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방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뒤엉켜 범벅이 되는 느낌이었다. 단지 담배통 뚜껑에 그려진, 얼굴에 종이조각이 붙은 장군의 모습만이 뚜렷하게 보였다.
"새로 하나 장만하다니, 도대체 무슨 수로?"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듯 한 기분으로 그는 말했다. "내게 그만한 돈이 도대체 어디 있다고?"
"어쨌든 새 것을 하나 장만하셔야 합니다." 뻬뜨로비치는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태연한 말투였다.
"그렇지만, 가령 말일세... 새로 하나 맞춘다고 하면, 도대체 그게 말일세, 그러니까 그게, 뭐랄까..."
"돈 말씀이세요?"
"그렇지."
"글쎄요... 아무래도 150루블은 있어야 할 거고, 거기에 가욋돈도 좀 들어가겠습죠..." 뻬뜨로비치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의미심장하게 입술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는 극적인 효과를 무척 좋아했던 것이다.
갑자기 느닷없는 말을 내뱉어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고 나서 곁눈으로 상대방이 자기의 말에 대해 어떤 표정을 짓는지 힐끔힐끔 살피기를 즐기는 것이다.
"뭐, 외투 한 벌에 150루블이라고?" 갸엾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건 아마 그가 태어난 이후로 가장 큰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게 그의 특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습죠." 뻬뜨로비치는 말했다. "그보다 더 비싼 외투도 얼마든지 있지요. 깃에다가 담비 가죽을 대고, 모자 안쪽을 비단으로 대면 적어도 200루블은 먹힐 걸요."
"뻬뜨로비치, 제발 나 좀 봐주게."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뻬뜨로비치가 말하는 새 외투의 효과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굳이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좀 이걸 손을 좀 봐주게나. 얼마 동안만이라도 더 입고 다닐 수 있게 말이야..."
"아니, 소용없는 일이에요. 공연히 헛수고만 하고, 돈만 날릴 뿐이라굽쇼." 뻬뜨로비치는 말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이 말을 듣고 완전히 풀이 죽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뻬뜨로비치는 손님이 돌아간 뒤에도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단호하게 다문 채 일거리에도 손을 대지 않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재봉사의 기술을 값싸게 팔아넘기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은 것이 그의 마음에 무척 흐뭇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