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夏之門人問交於子張 子張曰 子夏云何 對曰 子夏曰 可者與之 其不可者拒之 子張曰 異乎吾所聞 君子尊賢而容衆 嘉善而矜不能 我之大賢與 於人何所不容 我之不賢與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벗을 사귐에 대해 물으니 자장이 말하기를, “자하가 무엇이라고 하던가?” 하니, (문인이) 대답하기를, “사귈 만한 사람을 사귀고 사귀지 못할 사람을 사귀지 말라(거절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자장이 말하기를,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어진 이를 존경하고 대중을 포용하며 선행을 칭찬하고 능하지 못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니, 내가 크게 어질다면 남들을 포용하지 못할 바가 무엇이며, 내가 어질지 않다면 남들이 장차 나를 거절할 것이니, 어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子夏之言迫狹 子張譏之 是也 但其所言亦有過高之弊 蓋大賢雖無所不容 然大故亦所當絶 不賢固不可以拒人 然損友亦所當遠 學者不可不察 자하의 말은 박절하고 협소하였으니, 자장이 그것을 풍자한 것은, 옳은 것이다. 다만 자장이 말한 것 역시 너무 높다는 병폐가 있다. 대개 크게 어진 사람은 용납되지 못할 곳이 없지만, 그러나 큰 변고가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마땅히 거절해야 할 바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본래 남을 거절할 수가 없지만, 그러나 해가 되는 벗 역시 마땅히 멀리해야 할 바다. 배우는 사람이라면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和靖尹氏曰 子張所言 汎交之道也 子夏所言 擇交之道也 汎交而不能擇 取禍之道也 화정윤씨가 말하길, “자장이 말한 바는 널리 벗을 사귀는 道이고, 자하가 말한 바는 벗을 가려서 사귀는 道다. 널리 사귀면서도 가릴 줄 모른다면, 이는 禍를 취하는 道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汎交而不擇 取禍之道 子張之言汎交 亦未嘗不擇 蓋初無拒人之心 但其間自有親疎厚薄爾 和靖非以子張爲不擇也 주자가 말하길, “널리 사귀면서 가리지 않는다면, 이는 禍를 취하는 道다. 자장의 말은 널리 벗을 사귀는 것이지만, 이 역시 일찍이 가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대체로 처음에는 남을 거절하는 마음이 없었지만, 다만 그 사이에 저절로 친밀하고 소원함과 후하고 박한 것이 생겨나게 될 따름이다. 화정윤씨도 자장이 벗을 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初學大略當如子夏之言 然於其不可者 但亦疎之而已 拒之則害交際之道 成德大略當如子張之說 然於有六故者 亦不得而不絶也 以此處之 其庶幾乎 처음 배우는 사람은 대략 자하의 말처럼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교제하기 불가한 자에 대해서는 다만 역시 소원하게 대할 따름이다. 만약 그를 거절한다면 교제하는 도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덕을 이룬 사람은 대략 자장의 말처럼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6가지 변고가 있는 자에 대해서는 역시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써 대처하면 거의 가깝게 되지 않겠는가?
慶源輔氏曰 可者與之言 美矣 若曰不可者拒之 則傷亟過中而害義理之正矣 迫則不寬 狹則不廣 必如集註大故亦所當絶 損友亦所當遠之說 然後得義之中 無掠虛務高之意 而有切於學者爲己之資 경원보씨가 말하길, “사귈 수 있는 자와 더불어 말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만약 사귈 수 없는 자라 하여 거절한다면, 너무 신속함에 다치고 중도에 지나쳐서 의리의 올바름을 해치는 것이다. 박절하면 관대하지 않고, 편협하면 넓지 아니한 것이니, 반드시 집주의 ‘큰 변고가 있는 자는 역시 마땅히 끊어내야 할 바이고, 손해가 되는 벗 역시 마땅히 멀리해야 할 바’라는 말씀과 같이 한 연후에 義의 中道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허명을 훔치고 고원한 것에 힘쓴다는 뜻은 없으면서도, 배우는 사람의 爲己之學에 절실한 도움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齊氏曰 拒則太迫 何所不容則幾於無別 제씨가 말하길, “거절한다면 너무 박절한 것이고, 어떤 곳인들 용납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은 거의 구별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子張容字矜字是破子夏一拒字 然論交之道 不必拒而拒之 其交也不廣 當拒而不拒 其交也不正 必如集註之言 則盡乎交之道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자장의 容자와 矜자는 자하의 拒자 하나를 깨뜨린 것이다. 그러나 벗 사귐의 도를 논한다면, 반드시 거절할 필요가 없음에도 거절하는 것은 그 사귐이 넓지 않고, 마땅히 거절해야 함에도 거절하지 않는 것은 그 사귐이 바르지 않은 것이니, 반드시 집주의 말처럼 해야만 사귐의 도를 다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以上三章 子張之言 皆有過高之病 一章以致命思義祭敬喪哀爲高 故有其可已矣之言 則其於察理 必有所不周 二章以執德弘信道篤爲高 故有焉能爲有亡之言 則其於待人必有所太迫 三章以能容人爲高 故有不拒人之言 則其於善惡必有所不察 夫子嘗稱其過 曾子嘗稱其難能又稱其堂堂 則是其資稟趨向未免有過高之病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이상 3장에서 자장의 말은 모두 지나치게 고원하다는 병통을 갖고 있다. 1장에서는 목숨을 바치고 의를 생각하고 제사에 공경하고 초상에 애통해하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겼는데, 그래서 ‘그것으로 괜찮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가 이치를 살핌에 있어서 반드시 주밀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이다. 2장에서 덕을 붙잡음이 넓고 도를 믿음이 독실한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겼는데, 그래서 ‘어찌 있다고 없다고 여길 수 있으리요?’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니, 그가 사람을 대함에 있어 반드시 너무 박절한 바가 있는 것이다. 3장에서 남을 용납하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겼으니, 그래서 ‘남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던 것인즉, 그가 선악에 대하여 반드시 잘 살피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일찍이 그 지나침을 지칭하였고, 증자도 일찍이 그가 하기 어려운 것을 한다고 칭찬하면서도 또한 그가 겉으로만 당당하였다고 지칭하였으니, 곧 그 타고난 자질과 趨向에 지나치게 고상하다는 병통이 있음을 면하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