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특성은 과도한 세금과 국민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이다.
엄격하고도 섬세한 법 집행으로도 대변된다.
개인들은 국가의 틀 속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유토피아는 국가와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시장 뿐이다.
그것이 오타쿠인 것이다.
유럽 절대왕조 중상주의 국가 시절 왕의 도우미로 탄생한 부루조아가, 망해가는 일본 자본주의 시장에서 오타쿠라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상품과 국가의 간섭에 길들여진 개인들의 선택으로서는 어쩌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오타쿠들은 소비자로서 일본시장을 주도하고 심지어 새로운 생산자로서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세상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발적 실직자로서 운둔형 인간형인 히끼꼬모리들에게 오타쿠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살았던 30 년전에 이미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복지 국가를 실천하고 있었다. 유학생이었던 나에게도 일본 복지 혜택이 부여되었다.
아이를 낳으니 일본돈 11만엥이 구청에서 나왔고 병원비고 무료였고 구청에서 아이 출산 삼개월 전후 내내 우유를 배달해주었다.
일본은 지구 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집단성이 강한 나라였다. 일본의 지방자치는 메이지 유신 전의 막부 정부에서도 건재했다.
우리나라의 道에 해당하는 행정기구가 일본의 縣이다. 그런데, 그 현을 부르는 다른 말이 일본어에 있다.
구니(國)이다. 일본은 구니의 천국이다.
각 지방은 전부 다른 나라였던 것이다.
일본의 전국 시대는 그래서 구니간의 전쟁이었다. 각 자치정부간의 치열한 전투를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평정하고 무신정권을 확립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통일은 하였지만 각 구니의 경제적 자립은 여전했다.
일본의 지방자치는 이토록 역사가 깊었고 인민들의 생활 시스템에 뿌리내려 있었다.
일본의 축제인 마쯔리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탄생한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처럼 행정기관이 주도하고 주민들이 동원되는 엉터리 축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 일본의 전통이 자본주의에 의해서 부서지고 있었다.
집단은 간 곳이 없이 사라지고 개인만 남아 있었다.
국가는 집단 보다도 개인을 관리하기가 수월하다. 집단은 오히려 국가에게는 적이 된다.
집단을 철저히 때려부셔 힘없는 개인을 관리해야 법과 제도를 확실하게 실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들은 자신들이 때려부셨던 공동체를 다시 살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방자치라는 행정조직이다.
국가는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과 제도에 의해 사라진 자발적인 경제 시스템을 다시 법과 제도로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아이 살리려는 것 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다.
법과 제도라는 칼날을 치우는 것이아말로 진정 공동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공동체는 자발적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국가는 이미 인민들을 타발적인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인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타의에 움직이는 노예가 된 것이다.
국가의 간섭에 길들여지고 국가가 없다면 불안해하고 있다.
그것이 애국심이라는 추상적인 정신병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의 또 한가지 정신병이 물신숭배의 오타쿠가 된 것이다.
그래서 히끼꼬모리에게 오타쿠가 되라는 지식인들이야 말로 일본 자본주의 복지국가의 파시즘의 친위대인 것이다.
다만, 일본에는 각 구니마다 구니를 지배했던 아름다운 城들이 남아있다.
일본의 수 많은 성들은 각 구니를 지배했던 영주들이 살았던 흔적들인 동시에 막부 시절의 평화로운 시절에 구니의 무사들은 스스로 행정가나 기술자나 상인들이 되어 인민들의 자발적인 경제시스템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 하급 무사들 중에 중앙정치에 차별을 받고 불만이 많았던 사쯔마 지역의 무사들이 드디어 난을 일으켜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사쯔마의 하급 무사들 역시 상업과 수공업을 장악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유럽의 부루지아를 흉내 내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동해를 건너기 전 도시마 구니의 마쯔에 성을 바라보면서 인민들을 독려해 그들의 삶을 자발적인 생활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무사들과 근면하고 검소했던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장면에 오버랩 된 것은 불행하게도 오타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