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ktea가 가장 좋아하는 서태지 관련 문화평론입니다.
1996년의 글인데...
그럼에도 지금의 '즐거운 저항'에 확실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쓰시는 분이 서태지의 팬이라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쓰셨고
글쓰기 자체를 아주 즐기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5년여가 흐른 지금 보아도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아직도 신선한 글입니다.
'즐겁게 쓰는 글'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다」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올리는 글의 출전은 글쓰신 분의 책, 「나눔, 나눔, 나눔」입니다.
뒤에 짧게 붙이신 글은 생략하고 본문만 올립니다.
글이 길지만, 갈무리를 해서라도 한 번 읽어보시면 정말 좋겠네요.
서태지,
즐거운 저항
조병준, 1996년 1-2월호 「지성과 패기」 수록
-Did you enjoy that?
김덕수의 태평소 가락이 한바탕 난장을 벌이고 난 뒤, 화끈한 메탈 기타의 애드립이 그 절정에서 갑자기 멈추는 시간이 2분 56초, 그리고 59초에서 스크래치를 동반한 랩 리듬이 다시 시작된다. 2분 57초에서 58초까지의 2 초 동안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묻는다. "Did you enjoy that?" (「하여가(何如歌)」) 즐거웠나요?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냥 "디쥬 인조이 댓"으로 번역 없이 듣는 편이 좋다. 아마 대답도 "네에!"보다는 "Yeah!"로 나오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서태지가 지닌 최고의 미덕, 그것은 '즐거움'이다. 랩과 록과 사물놀이가 김치 햄버거처럼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다. 갓 변성기 문턱을 넘은 듯한 목소리의 미소년이 작사, 작곡, 연주, 노래에서 프로듀싱까지 다 해내는 것을 보면 '동네의 신동'을 보는 즐거움이 또한 쏠쏠하다.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잖아요"(「난 알아요」) 하는 청승맞음도 회오리춤에 실려 즐거워진다. "한민족인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 우리가 만든 큰 욕심에 내가 먼저 죽는 걸"(「발해를 꿈꾸며」)하고 외치는 열혈남아의 절규가 얼터너티브 록의 형식에 실려 단발머리 소녀들의 환호성에 묻히는 광경도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전교 꼴등을 맡아 하며 딴따라 판을 돌아다니다가 전 국민의 우상이 된 인생 역전을 듣는 것도 즐겁고, "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교실 이데아」)라고 잘난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에게 대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왜?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나는 결국 그러지 못했는데, 서태지는 그렇게 하니 얼마나 신나는가. 얼마나 부러운가. 그러다가 즐거움은 지긋지긋하게 교정(矯正)을 요구하는 '꼰대' 검열관들에게
아예 벌거벗은 엉덩이를 내보이는 대목에 이르면 거의 절정에 이른다. 가사를 고치라고? 이건 어때? 그렇게 「시대 유감」은 이주노의 감기 마스크에 담겨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 등장한다. 난공불락이던 공륜의 사전심의는 드디어 폐지된다고 한다. 디쥬 인조이 댓? 예에에!!!!!
-나의 유일함을 위해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닮을 순 없네. 나를 세상에 알릴 거야. 나 역시 그 누구를 따라하진 않겠어, 나의 유일함을 위해"(「수시아(誰是我)」) 나는 서태지의 열렬한 팬이다. 내 주변엔 서태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 중에는 문화 비평가로 일하는 박사 선생님도 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가진 40대 아저씨 한사람도 서태지의 팬임을 자처하고 있다. 내가 아는 또 한 사람의 열광적인 팬은 내 친구의 여섯살짜리 아들이다. 서른 다섯 살의 나와 여섯 살의 내 친구 아들이 함께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 시공간 좌표가 바로 서태지다. 서태지가 무너뜨린 것은 세대 간의 벽에 그치지 않는다. 석사학위가 있으니 그래도 지식인 언저리를 기웃거릴 수도 있는 내가 수업도 빼먹고 다니는
여중생들과 함께 절묘한 의견일치를 볼 수 있는 대화방이 바로 서태지다.
'서태지와 저항 음악으로서의 가능성'이라는 상당히 뻣뻣한 주제의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뒤 나는 상당히 불행해졌다. 청탁받은 글쓰기의 괴로움! 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서태지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저항하자! 저항하되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아주 즐겁게! 랩으로 글을 쓸 수는 없을까, 헤비메탈을 넣는 건 어떨까, 코맹맹이 소리도 한 번 집어넣어 볼까.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공식적인 글에서는 가능한 한 글쓰는 사람이 정면으로 등장하는 것을 피해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도 '나'라고 하는 대신 '점잖게' 필자라고 써야 한다는 18년에 걸친 교육의 결과를 나는 조금 전에 내팽개쳤다. 고맙다, 서태지! 편집자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쓸거야!
「저항 음악으로서의 가능성―서태지 음악의 주장과 현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것이 내게 주어진 제목이었다. "Yo! Taiji! 태지는 저항하겠대! 뭘 저항한다고 설치지? 잘 될까! 그런데 우린 어떡할까?"나는 그렇게 제목을 바꾸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춤추고 싶을만큼,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춤을 춘다. 즐거운 저항. 서태지 음악이 지닌 즐거움은 바로 그 즐거운 저항에서 비롯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저항이 즐겁다니? 우리가 알던 저항은 항상 고통과 고문과 고뇌 등등 '고, 고, 고'자로 시작하는 말들을 꼬리표로 달고 다녔던 것 같은데….
저항문화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60년대 미국의 반전 노래들과 1980년대 한국의 노래운동 같은 것들이다. 저항이라면 앞 뒤 가릴 것 없이 맨 먼저 정치적 저항이 연상되는 우리네의 불행한 역사 때문이리라. 정치적 저항만이 저항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우리네 역사는 참 많이도 구부러져 진행되어 왔다. 그 덕분에 지배도 엄숙했고 저항도 금욕적이었다. 불행히도 이제까지 우리는 저항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고, 이제 다행스럽게도 즐거운 저항의 움트는 새싹을 보고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문화 바로 세우기와 다르지 않다.
음악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록이 기본적으로 저항문화라는 것, 바로 그 때문에 1980년대 영국의 펑크 록과 1990년대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은 너무도 당연한 사필귀정의 산물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메이카의 레게와 미국 흑인의 랩 역시 저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저항 음악들이 거의 예외 없이 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신나게 몸을 흔들며 저항! 단, 조건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리듬으로, 다른 가사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머리 모양과 옷차림으로!
복잡하게, 어려운 용어들을 써 가며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간단하다. 그저 지금 잘 돌아가고 있다고 어떤 사람들이 얘기하는 방식대로 살면 내가 없어질 것 같으니, 비록 인생이 거칠어질 위험은 있겠지만 나를 완성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것이 저항이다. 나는 찢어진 넝마를 입으면 어울리니 그렇게 입겠다는 것이고, 내가 가고 싶은 학과에 엄마가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으니 나는 아예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 선언과 "저임금에 양심수 세계 1위의
한국적 민주주의는 내가 살아가야 할 모습이 아니므로 나는 저항한다"는 선언은 과연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일까?
저항문화의 출발점은 내가 하고싶은 말을 내 스타일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창작자가 운이 좋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속내에 담고 있던 욕망을 제대로 표현하는 진짜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경우 '나'는 '우리'가 된다. 그렇게 내가 우리가 되면 저항문화가 대중문화로 바뀌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나/우리의 전환과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자기 멋대로 규정한 '우리'만 있다고 억압하는 것이 전체주의이다 , '나'를 고집하는 놈들은 잡아다 '물을 먹여야 한다'는 사회가 독재 사회다. 나를 나대로 내버려두는 사회에서는 저항이 즐거워진다. "내 마음대로 춤을 춰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그런 춤을"(「록앤롤 댄스」) 출 수 있는 사회, '나의 유일함'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민주 사회이고 거기에선 저항도 즐거워질 수 있다.
-Come back home
"나는 없었어. 그리고 또 내일조차 없었어. 내겐 점점 더 크게 더해갔던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는 마음 보다 따뜻한, 거칠은 인생 속에 나를 완성하겠어."(「Come Back Home」)
시대에 유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나인 채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원치 않는 나로 있으라고 누군가가 강요하기 때문이다. 공권력으로, 전통과 도덕의 논리로, 그리고 다수의 힘으로 그들은 끝없이 나 아닌 나로 나를 바꾸라고 윽박지른다. 이 유감 많은 시대에 없어진 나를 찾기 위해서는, 없어진 내일을 찾기 위해서는 나는 저항해야 한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저항한다. 나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엎어치나 메치나. (이 세 문장을 갱스터랩으로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항 문화란 모름지기 금욕적으로 심각해야 하며 대중문화와는 거리를 두어야 하고, 아니 대중문화는 죽창들고 없애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다. 랩처럼 정신 없이 어지러운 시대다. 김민기나 [노찾사]나 대학 노래패가 아닌 서태지를 놓고 우리는 저항 음악을 얘기하고 있다. 댄스뮤직이 지닌 저항 음악으로서의 가능성! 우리는 바뀐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댄스 리듬과 저항적 메시지가 결합되었다. 민중 가요를 부르며 해방춤을 추던 대학생들과 여기저기서 찔러 넣은 까맣게 썩어버린 돈들, 돈으로 명예를 사고 친구를 샀던 썩어 버린 인간들, 정복당해버린 지구에서"(「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를 따라 부르며 힙합을 추는 10대 소녀들은 분명히 다르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니편 내편'하며, 고상한 말로 하자면 '흑백 논리에 사로잡혀서' 살아갈 작정이냐고. 서태지를 한 번 보라고. 증오를 거쳐서 이제 그 아이는 '거칠은' 인생을 인정하면서 자기를 완성하려 집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서태지는 아름답다. 사물놀이와 헤비 메탈과 랩을 한 노래 안에서 행복하게 결합시키고, 위선적인 기성 체제의 도덕률과 검열에는 저항하면서도 대중 음악의 문법과 매체와는 절친한 친구로 지내는 그 통합의 힘이야말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 젊은이는 저항하되 즐거운 방법으로 저항하는 묘수를 깨치고 있는 고수(高手)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니편 내편'의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일제의 창가와 독립군가가, 트로트와 통기타가, 대중 가요와 민중 가요가, 비디오형 댄스 가수와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서로를 꺾어야 한다며 대결하던 싸움터가 우리의 문화였다.
서태지는 그렇게 양편으로 갈려 있던 경계선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면서 편가르기 문화를 뿌리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진정한 저항문화는 대중문화를 통해서 오히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문화의 '집'은 바로 대중문화라고. Come back home! 집을 떠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집에 돌아가서 거친 인생 속에 나를 완성하겠다고. 서태지 음악의 가능성은 바로 그렇게 집으로, 곧 현실로 돌아가겠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발해를 꿈꾸며
"Yo! Taiji! 태지는 저항하겠대. 뭘 저항한다고 설치지? 잘 될까! 그런데 우린 어떡할까?" 이제 마지막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서태지는 이미 그 대답을 우리에게 주었다. 다음 구절을 불러 보시길. "언젠가 작은 나의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엔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젊은 우리 힘들이 모이면 세상을 흔들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은 것으로 큰 힘인데."(「발해를 꿈꾸며」)
충분하지 않은가? 평화와 사랑을 이루려면 '나'도 유일하지만, 동시에 '너'도 유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손을 잡을 수가 있다. 나의 문화와 아예 딴판인 다른 문화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문화 역시 다른 누군가에겐 아주 소중한 '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문화가 싫거든 그냥 귀막고 눈감으면 그만이다. 내가 싫어하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제 됐어, 정말 됐어!
대중으로서의 우리가 해야할 역할? 제일 중요한 일은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술집에 가서는 '뽕짝'을 신나게 부르다가 팝가수 앞에서 실신하는 소녀들을 비난하는 위선적인 기성 세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 공부 잘한 변호사들과 말 잘하던 앵커들과 잘 생긴 배우들이 모두 국회의원 선거장으로 몰려가는 이 기묘한 사회를 비웃으며 내버려두고, 그 대신에 서태지와 [공일오비]와 김종서와 [넥스트]를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엄숙주의와 권위주의야말로 바로 우리가 즐거움이라는 무기로 무장하고 저항해야 할 대상이다.
한 마디만 더! 또 대중은 변덕스러워야 한다. 세상은 변한다. 저항의 내용과 형식도 당연히 변할 수밖에 없다. 변하는 세상을 눈치채고 거기에 맞는 저항문화를 들고 나오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기본 요건이다. 대중은 그런 진정한 예술가를 알아보고 환호해 주어야 한다.
문화는 끝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운 문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변덕을 부려 예술가들에게 끝없이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중인 '나'부터 끝없이 바뀌려 발버둥쳐야 한다. 남자건 여자건 변신은 무죄다. 그래야 다양한 문화가 가능해 질 테니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메일까,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교실 이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