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실 하나 주세요. 없으면 다음에 올께요."
소비자들의 일반약 지명구매 모습은 이제 약국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기침약, 무좀약, 두통약 등 질병을 말하고 약사의 권유로 약을 받아가는 풍경은 이제 옛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일반약이 정체된 전문약 시장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활로로 여겨지면서 일반약 광고 폭도 크게 늘어가고 있다. TV 광고는 물론 버스, 지하철, 라디오에서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일반약 광고는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일반약을 브랜드화 시키기 위해 앞다투어 광고를 시행하고, 소비자들 역시 스스로를 진단하고 약을 고르는 '전문가형' 소비자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약을 한번 복용해 본 소비자 또는 광고를 듣고 지명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명구매하는 '전문가형' 소비자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일 수 있지만 약국들은 남몰래 한숨을 쉬고 있다. 바로 '구색' 갖추기가 더욱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동네 약국들의 경우 방문하는 소비자들의 특성을 알고 필요로 하는 품목들을 구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출하락 등을 우려해 지명구매 소비자도 놓칠 수 없다는 심적 부담이 구색 맞추기에 나서게 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K약국의 경우 종합 농피증·화상·외상 등에 사용되는 후시딘과 마데카솔이 대표 품목이었지만 박트로반을 찾는 소비자는 물론 광고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는 티로서겔까지 모두 주문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좀약도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무조날크림으로 쉽게 판매가 가능했지만 이제 라미실, 카네스텐은 물론 크림형, 분무형 등 의약외품으로 나온 다양한 종류를 구비해야 한다는 게 약사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반약들이 주문 이후 판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다는데 있다고 약사들은 말하고 있다.
동일한 치료효과가 있음을 충분히 설명해도 전문가형 소비자들은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결국 장시간 방치된 후 반품처리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K약국 약사는 "얼마 전까지 상처 치료제로 권하던 제품이 후콘투락투벡스겔이었다. 한가지만 계속 팔아왔는데 벤투락스겔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 이를 주문했다"면서 "하지만 주문한 수량에 비해 판매량은 미미하다. 또 반품해야 하는건 아닌가 걱정"이라고 전했다.
인근의 또다른 약사도 "지명구매가 늘어나면서 약국들도 소비자들 입맛에 맞는 여러가지 종류의 약들을 구비해야 한다"면서 "생각만큼 매출이 안나오더라도 일단 소비자들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품목만 늘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