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물리학에서 쓰는 수학은 기본적으로 벡터미적분(vector calculus)이다. 고등학교 과정에 나오는 어지간한 곱셈과 나눗셈은 상당부분이 벡터를 이용한 적분과 미분으로 다시 정의되었다. 그래서 미적분학 과목은 이공계 대학생이라면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벡터미적분은 말하자면 이공계 대학생들이 반드시 익혀야 하는 새로운 언어와도 같다.
얼마 전 교육부가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에서 미적분Ⅱ와 기하가 포함된 심화수학을 수능 출제과목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시공간에서의 에너지 분포와 그에 따른 시공간의 기하를 연결하는 중력장방정식은 미분방정식이다. 방정식을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 물리학과에서도 고학년이나 대학원 정도 가야 그 의미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작년 5월 서울대학교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이공계 및 의학계열 신입생 대상 수학성취도 시험에서 무려 41.8%가 정규수업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학력미달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수능 안이 나올 때마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주장과 대학에서 전문 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가치가 현실에서는 너무 허구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뜻 보기엔 두 가치가 양립 불가능한 것 같지만,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문제가 빠져 있다. 바로 수능의 상위권 변별력이다. 사태의 핵심은 상위권 변별력 때문에 문제를 꼬아서 킬러문항을 자꾸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즉 시험범위의 문제가 아니라 난도 깊이의 문제이다.
시험범위가 넓더라도 기본적인 내용을 제대로 익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문제를 출제하면 학습 부담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반면 아무리 시험범위가 좁더라도 킬러문항이 자꾸 출제되면 수험생의 학습부담은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고득점을 받고 싶은 학생이라면 킬러문항 전문학원에 다니고 싶은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이는 결국 사교육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무엇보다 수학의 중요성이 분야를 막론하고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코딩교육을 실시하는 것보다 기본적인 수학부터 착실하게 가르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기술적인 코딩은 이제 인공지능에 맡겨도 되는 시대이다.
미적분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라 할 수 있다. 근대과학을 확립한 뉴턴이 미적분을 개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리학에서 자연의 질서는 많은 경우 미분방정식의 형태로 표현된다. 뉴턴의 운동방정식, 전자기 현상을 기술하는 맥스웰 방정식, 양자역학을 대표하는 슈뢰딩거 방정식, 유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중력장방정식도 그렇다.
현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미세한 변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수학으로 표현하면 대체로 미분방정식의 형태가 된다. 이들 방정식을 풀기 위해 우리는 미세한 변화들이 쌓여 추후에 어떤 결과로 귀결되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이 과정이 적분이다. 그렇게 방정식을 푼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러니까 미적분은 호모 사피엔스가 자연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미적분을 이해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물론 수능에서 상위권 변별력이 필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대학서열화 내지는 대학의 존재이유와 역할, 대학입시 자체와 심지어 대학개혁의 이슈까지 심각하게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쉽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를 모른 체하고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손쉽게 훼손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또한 모든 사안을 오로지 수능 입시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문제이다. ‘고등학교 수업이 오직 대학에서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라는 항변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주장이다. 그러나 한 나라에서 국가단위의 시험에 어떤 내용을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그런 내용을 국가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이다.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한다며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코딩교육을 실시하는 마당에 고등교육을 위한 국가차원의 시험에서 수학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 과연 일관적이고 타당한가, 하는 근본적인 고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방향 속에서도 얼마든지 학생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이들 가치에 비하면 그놈의 상위권 변별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오히려 하찮게 보일 지경이다.(이종필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