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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퍼온글인데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곳에서 다시 퍼온글이라
출처를 적지 못한점 죄송하구요 이글이 이 게시판에 알맞은 글인지는 모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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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
언제부턴가 희화화 된 이름.
언제부턴가 공공의 적이 되어야만 했던 이름.
그리고 언제부턴가, 가슴속에서 사라지던 인물.
얼마전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았다. 독일 월드컵에서 누가 활약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기사 내용에는 최순호-황선홍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어갈 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였다.
씁쓸했다. 황선홍이 은퇴한 뒤 채 2년이 안되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은 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해해야 하더라도, 황선홍의 이름 다음에 그의 이름 세글자가 적혀 있지 않은것이 씁쓸했다.
그는 이제 한국 축구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의 계보에서 지워져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길 바라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마치, 조 본프레레가 맡은 역할 처럼.
내가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열성적으로 보기 시작한 시기는 한국이 이란에게 6-2로 패했던 시기.
AC밀란을 홈으로 불러들여 격파하고, 온 국민이 2002년 월드컵 유치로 들떠있을때,
98년 월드컵까지 달려갈 것만 같던 박종환 사단이 처참하게 무너진 그 경기 무렵부터다.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곧이어 시작된 월드컵 예선에서 그러한 불안함 -역대 최악- 이라는 온국민의 마음을 한순간에 바꿔준 최용수. 그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때면 항상 따라나오는 이 이야기에 고개부터 흔들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만큼 임팩트가 큰 시기였다.
일본이 월드컵 진출을 위해 온갖 힘을 다해 발버둥 칠 때, 먼저 예선을 통과하고 '일본, 프랑스 월드컵에 같이 가자' 라는 배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앞으로 자주 보기는 힘든 옛 추억일 것이다.
물론 그의 이름이 월드컵 예선을 통해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세대로서 95년 초에 콜롬비아와 가졌던 (그것도 한국 올림픽 대표와 콜롬비아 성인 대표팀 간의 경기였다) 경기에서 윤정환의 쓰루패스를 받아 콜롬비아의 명수문장 이기타의 키를 넘겨버리는 루프 슛으로 결승골을 작렬 시켰다. 내가 나이가 어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청대시절의 그의 명성은 알 수 없고 이때부터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을거라 생각한다.
모든 국민들의 불안감을 일거에 해소시켜주었던 프랑스 월드컵 예선이 끝나고(물론 그 와중에도 김주성 -98년 월드컵에 나갔더라면 4회 연속 대회를 나갔을- 을 뽑지 않은게 아쉬웠지만) 황선홍이 돌아왔다. 다방면에서 다양한 재능을 보여준
황선홍과, 문전에서의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던 최용수의 투톱. 한국축구의 팬이라면 정말 기대했을 만한(2002년 핀란드전에서 결국 볼 수 있었지만) 스트라이커 둘을 보유하게 된다.
인기가 지금의 박주영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것 없었던 최용수는 또한 월드컵을 앞두고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유럽의 강호로 이름 날리던 체코를 맞이하여 극적인 벼락슈팅으로 동점골을 뽑아내며 인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소를 금하지 못하지만 당시 월드컵을 앞두고 최용수와 베르캄프의 비교기사가 나왔을 정도로 한국의 스트라이커는 곧 최용수였다.
그리고 맞이한 월드컵. 아직도 논란거리인 대 멕시코 전에서의 비출장. 네덜란드에게 당한 참패. 벨기에전에서의 '전봇대'헤딩. 처음 맞이한 그의 월드컵은 그렇게 그에게 아픔만을 남겨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대활약을 하며 '그래도 최용수' 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이후로, 허정무 사단은 그를 중용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프리미어 리그 진출 실패로 인해 슬럼프에 빠져든다.
히딩크호 출범 이후로 오랜만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그는 나이지리아전과 크로아티아 전의 활약을 통해 다시금 월드컵 명단에 뽑히게 되었고, 많은 국민들이 K-리그에서 팀을 정상에 올려놓고 J-리그에서 연일 득점포를 가동하고 있던
그에게 다시금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맞은 월드컵. 2002년 월드컵은 그에게 있어 축구선수로서 쌓아온 공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대회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다분히 호의적이던 그에 대한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변해갔고, 코엘류 호 출범 이후로 부진에 빠지면서 결국 그의 국가대표는 그렇게 반납되고 만다.
최용수를 위한 변명.
가끔씩 드는 생각이 그는 '한국식 뻥축구'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하석주-윤정환 등과 함께.
히딩크 등장 이후로 네덜란드식 토털축구가 유입되면서 부터 이미 그가 설 자리는 대단히 좁아졌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그가 2002년 월드컵 명단에 든 것은, 그만큼 그의 골 결정력에 대한 믿음이 히딩크에게도 컸다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이동국을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시킨건 차두리가 아니라 바로 최용수다. 히딩크에게 있어 최용수는 입맛에 딱 맞는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엔트리에 집어넣어야 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결국 항명설 까지 흘러 나오고 미국전에서의 찬스를 놓치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의 부상이 호전되었다면 이탈리아전에서
한번 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용수를 보면 군대 있을때 실세 병장이 왜그리 생각나던지. 황선홍이 훗날 그에게 말했듯이 최용수는 자신이 팀의 중심이어야만 날라다니는 선수이다. 98예선전이 그랬고, 챔피언 시절의 안양에서의 모습이 그랬으며, 제프 이치하라에서의 모습이 그랬다. 2003년 코엘류호 출범 초기의 부진으로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차라리 98년 월드컵 본선에서의 대참패를 그에게 책임지울수는 있어도 2003년 코엘류호 출범 초기의 부진을 그에게 덧씌울순 없다고 생각된다. 이미 그때의 한국팀은 그의
팀이 아니었다. '같이 부진했던' 선수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어느덧 '최용수' 하면 생각나는게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의 일본 골대를 향한 강력한 발리슈팅보다 미국전에서의 홈런슛이 더 기억날 것이다. 그것을 굳이 이을룡의 패스가 강했네, 줄타이밍에 안주고 접고 줬네 같은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국가대표팀의 스트라이커라면 넣어줘야 했을 것이니깐. 물론, 그상황에서 못넣는 선수가 생각외로 많긴 하지만.
나는 이탈리아가 월드컵이 끊나고 수번의 단독찬스를 무산시킨 비에리에 대한 살해위협이 없는지에 대해 이상할 정도다.
'광적인' 이탈리아 팬이라면 한국팬들 못지 않을 건데, 어째서 그럴까?
그들에게 마녀는 한국과 모레노 심판이고, 우리에게 마녀는 최용수 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미국전에서 최용수가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이을룡의 패스를 홈런때린 장면이 아니라 설기현이 오른쪽에서 올려준 센터링을 받았을 때이다. 미국전에서 기록한 두개의 슈팅중 하나인 이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트래핑 후 넘어지면서 발끝으로 공을 건드려 프리델의 가슴팍에 맞힌 것이었다.
피지컬 적인 면에선 당대 최고인, 최용수가 볼트래핑 하나로 몸을 가누지 못하다니. 그 장면을 다시금 돌려보면 알겠지만,월드컵 직전 프랑스전에서 드자이에게 당한 옆구리 부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장면이었다. 정말 그 장면은, 최용수가 정말 좋아하는, 또한 자주 성공시키는 그러한 장면이다. 거칠게(?) 트래핑 후, 사각지대로 있는 힘껏 강슛을 날리고, 관중석으로 뛰어갔어야 할 그 상황에서 그는 좋은 센터링을 올려준 설기현에게 박수를 쳤을 뿐이다.
나의 영웅 최용수.
내게 있어 최용수는 영웅이다. 차범근-최순호-김주성-황선홍 의 이름 뒤에 적혀 있어야 할 레전드이며, 내가 진정 좋아했던 선수중 아직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몇 안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역시 '축구팬' 으로서가 아닌, '애국자' 로서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중동이던 동남아던 중앙아시아던 가리지 않고 골을 넣고, 과격한 파울을 당하면 어김없이 보복을 가했으며, 일본 벤치에다가 공을 차고, 가와구치의 물을 빼았아 마시던 그는 나에게 있어 이시대의 독립군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고 볼품없는 체격' 인 한국축구에 홀연히 나타난 피지컬형 스트라이커였고, 수비수들의 진땀을 빼게 만드는 저돌성과 헤딩슛은 월드컵예선당시 고등학생인 나에게 '영웅' 그 본질적인 이미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2003년의 봄. 그가 교체되어 나올때 TV에서 보인것은 상무시절 그가 하던 절도있는 경례도 아니고, 관중을 향해 손을 들고 머리위로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고개를 떨군 그의 모습과, 홈경기에서 자국의 선수에게 야유를 퍼붓던 '진정한'
붉은 악마들이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 큰 충격이었다. 2002년 월드컵때 본 길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인파들의 존재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고, 한국에 '애국자'는 많지만 '축구팬' 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으며, 말로만 듣던 '냄비근성' 이란 것을 혹독히 깨닫게 해 준 것이었다. 홈경기에서, 자국팬들의 야유를 듣는 기분이란. 그날 경기에서의 그의 모습은, 그시절 그 터프하고 강인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마치 관중의 야유에 쫗겨 황급히 찬 '홈런볼' 과, 잔뜩 주눅든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반년 전, 나는 한번 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 본프레레' 라는 '3류 감독' 이 세대교체에 실패한 팀을 맡아 이기고 깨지면서 월드컵 본선진출을 해놓고 나서, 사우디와의 홈경기때 한번 더 터져나온 야유를...사우디에게 두번 진게 한국에 있어서 그렇게 큰 충격이었을까?
난적 쿠웨이트를 두경기 도합 6골 무실점으로 대파하고, 아시아킬러 독일을 상대로 보여준 승리는 사우디에게 얻은 두번의 패배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것이다. 월드컵 4강에 빛나는 한국팀에 있어서는.
아주 구색이 잘 맞는 마녀였다.
하나는 2002년 월드컵에서 국가의 적인 '미국' 을 이기지 못한 주범이자, 월드컵이 끝난 후 코엘류가 새롭게 시도한 전술의 실패를 책임질 마녀였고, 또 하나는 2002년의 한국팀 만이 머리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마녀였다.
모두들 잊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 거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 꺼야. 그렇게 이해하고는 싶지만...
아마도 그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 모습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가 국가대표에 들어 올 이유도 없다.
이미 국가대표엔 좋은 슈팅능력을 보유한 이동국이 있고, 접기 하나로 아주리군단의 수비수들을 제껴버리는 안정환이 있으며, 떠오르는 신예 박주영도 있다. 물론, '개티즌' 도 여전히 있다.
물론 그가 노장으로서 대표팀에 '정신적 지주' 가 되어 국가대표팀에 올일도 없다.
황선홍이나 홍명보처럼 그가 후배들에게 다정다감했던 선수도 아니며, 상병 말호봉 같은 매서움만 간직하고 있는 고참 하나 온다고 해서 졸졸 따라다닐 후배도 없어보인다.
결론적으로, 그가 황선홍이 지난 날의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접고 마지막에 금의환향하는 그 모습을 재현할 길은 대표팀에선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그는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영웅일 지라도 온 국민에게 영웅일 운명은 타고 나지 못했나 보다.
아마 앞으로 한국 국대에서 최용수 같은 선수를 보긴 힘들지 않을까? 갈수록 공격수의 수비참여와 유기적인 플레이, 활동량을 기대하는 -사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현대축구에서 최용수 같은 선수는 살아남을수 없을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감이 가는 선수. 하석주, 노정윤, 고종수, 윤정환 등과 함께 이제는 앞으로 한국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볼때마다 지워야 하는 스타일의 선수.
하지만 그 누가 뭐래도...나의 영웅은 최용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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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또한 한때 최용수선수의 팬이었습니다... 저또한 최용수선수를 이렇게 버렸구요...
여러분은요?
첫댓글 제 영웅도 최용수였습니다..
제 영웅은 홍명보였습니다..
님이 직접 쓰신글인가요? 상당히 잘 쓰셨네요...
정말 안타까운 선수...제발 이동국선수만은 이렇게 되지 말기를
97 월드컵 아시아예선 득점1위. 반지에 키스하는 세리모니의 원조....
최용수선수 .. ; 정말 .. 최고였는데 ..
"-나-"님께서 직접 쓴글이 아닌 퍼온글은 본게시판의 진행방향과 성격상 맞지 않습니다 곧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 하겠습니다 "-나-"님의 양해 바랍니다
네 ^^~ 아직 게시판의 글올리는건 경험부족이라 하하;
붉은 악마 최용수선수를 버린거 보고 붉은악마에 가입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최용수. 당대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물론 그의 하락세를 눈으로 직접 지켜보고 말았지만 아직도 가슴속에는 최용수란 세글자가 선하죠. 정말 멋지게 은퇴하시길 바랍니다..
'최 용 수' 이름 석자만 들어도 억장이 무너지는 듯 합니다. 카자흐스탄과의 98년 월드컵 예선때 해트트릭을 집어넣던 그의 모습에 열광하던 사람들... 하지만 그런 그를 버린 붉은악마... 저는 독일전이 끝나고 '붉은악마' 라는 칭호로 한국인들을 매도할때마다 외쳤습니다. 아주아주 크게는 아니지만 가슴속으로 저는..
'나는 붉은악마가 아니다!!!!' 라고. 나의 붉은 악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고 2002년에 대한민국으로 기우는 듯 했지만 월드컵 예선이후 오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뿐이라고...
최용수 선수 하면 역시 98년 월드컵의 아시아 예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 어디랑인지는 까먹었는데 코너킥을 가슴으로 트래핑하고 때린 발리슛은 아직도 제 눈에 선합니다 ㅎㅎ
ㅎㅎ 그거 진짜 총알슛이었는 데 최용수 진짜 멋있었는 데 월드컵후에도 j리그에서 득점3위인가 하고 .. 천부적인 골결정력이 있는 선순데 아쉽
어떤 경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UAE 3-0으로 이겼을때가 떠오름.. 최용수선수의 해트트릭.. 정말 어렸을때였지만 최용수없으면 한국축구도 없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최용수 저희 고등학교 선배로 한참 날릴때 학교 방문 왔는데 장난 아니였죠. 모교 왔다고 기자들도 우글우글... 정말 전 그때 황선홍의 뒤를 이을줄만 알았습니다. 거의 동시대지만 원톱 타겟에 어울리는 선수는 황선홍선수보단 최용수선수라고 생각될 정도로 였죠...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동래고 신가봐요?? 용수선수 부산오면 경기장에서 뵐수도 하하;;
(2002년 핀란드전에서 결국 볼 수 있었지만)(2002년 핀란드전에서 결국 볼 수 있었지만)(2002년 핀란드전에서 결국 볼 수 있었지만)(2002년 핀란드전에서 결국 볼 수 있었지만)(2002년 핀란드전에서 결국 볼 수 있었지만).....압박.........
미국전 후반 끝부분에 이을용선수가 다뚫고 땅볼크로스해 거의 완벽한(?) 찬스 날려먹은게쫌 ...
한번의 실수. 단지 그뿐이었지만, 그것도 죄라면 죄지만, 그때문에 너무나 가혹한 벌을 받고 있는 선수죠. 전 개인적으로... 98년 차범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최용수를 기용하지 않았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버리지 않았음..... 머.. 많이 냉소해졌죠.. 우리나라 축구 현실에 말이죠..--a 아~ 우리나라에서는 축구를 즐긴다는건.. 아니구나.. 하구요. 아직도 수비수 둘을 몸으로 뚫고 나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최용수 뿐입니까.--a 한때 이동국 한때 황선홍 지금은 슬슬 박주영 한때 김병지. 등등등 셀수 없이 많은. 선수들이 그렇게 사라져갔죠. 다행이 몇몇 선수들은 재기해서 다행입니다.
박주영벌써?
최용수..흑흑
제가 그때 초1이었는데 최용수가 볼잡으면 다 골인줄 알았습니다-_-
제가 중학교 때~~ 아마도 98 아시아 예선 때 최용수선수의 수훈으로 월드컵에 진출했던걸로 기억되는데.. 그당시 황선홍 선수와 최고의 투톱을 이뤄 월드컵에서 활약을 할것으로 생각햇는데 중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의 부상~~ ㅠㅠ
짱깨 ㅅㅂㄻ 갮
1998 월컵 예선전에서 최고 였죠!!!
아... 최용수... 진짜 멋졌는데...
"축구를 말한다"에서 옮겨 옵니다 날짜 : 2006.01.03 20:42
축구를 벗어나자면, 추성훈/하은주가 있죠. 둘 다, 국적버리고 타국국대로 뽑혔다고 뭐라고 할 게 아니라서, 오히려 안타깝기만 할 정도입니다. (근데, 하은주는 그냥 일본국대로 뽑히지, 왜 그걸 고사했는지... 하은주의 경우는 오히려 한국 여자농구 국대를 잡았으면 할 정도지요.)
최용수 ....
이 점을 알아두셔야 합니다. 빨간 옷입고 응원한다고 다 붉은악마 정식 소속 회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붉은악마 산하 자치단체나 가맹단체에서 활동하는 붉은 악마들은 대부분 매너가 좋습니다. 우리나라 어떤 선수가 무슨 잘못을 하던간에 박수쳐주고 격려합니다.
뭐 쓸데없는 이야깁니다만 축구로 뭉친 단체가 완전히 영악(?)해졌다는 느낌을 주는게 바로 붉은악마라는 단체죠. 스폰서를 단 자체가 상당히 아이러니컬하다는...
감동 입니다
전 지금도 최용수 선수 팬이라는. 98월드컵때 너무나 아쉬웠다는.,;
최용수...저도...영웅 중 한 명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