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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카페 게시글
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9월호와 금꿩의다리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206 18.09.05 03: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주요 목차

 

*권두 에세이 | 임보

*신작시 18| 김석규 이종수 이규홍 도경희 유진 김기화 정온유 임미리 이주리 박병대

                          방화선 이명해 이제우 박상희 장인이 황병숙 박용진 정유광

*신작 소시집 | 남대희          *테마 소시집 | 김영호

*연재시 : 홍해리                  *시 묶어 읽기 | 유진

*나의 시 한 편 & 시 에세이 | 권애숙 이병금 전선용

*한시한담 : 조영임

 

 

 

♧ '권두시' 파초(芭蕉) - 김동명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꽃무릇 2 - 도경희

 

마음에 넘쳐흘러

목구멍에 막힌 소리

빛의 시위를 당긴다

 

화살은 날카롭게

선병질 심한 심장 꿰뚫고

 

가시 삼키듯 아슬히 삼키는

천년도 뜨거운 이름

 

호젓한 숲덤불

몸 낮추어가는 바람에

퍼덕이는 붉은 나비

 

사랑이 횃불로 타오르기까지

부챗살 환한 감옥에

기꺼이 혼자 남는다 


 

 

- 유진

 

재봉틀을 돌린다

먼저 몸통을 박고 호주머니와 소매를 붙이면

재봉은 틀이 잡힌다

 

엄마는 재봉틀을 틀이라 부르고

가정선생님은 수틀을 틀이라 불렀다

 

빵틀 사진틀 문틀 가마니틀

모양을 갖춘 격식이나 형식은 죄다 틀 속에 넣어야

틀이 잡혔다

 

틀에 박힌 말을 듣고

틀에 박힌 밥을 먹고

틀에 박힌 잠을 자고

 

융통성 없는 나는

재봉틀 돌리듯 하루를 산다

스스로 갇힌 포획 틀인 줄

알면서도

똑같은 하루를 내 몫만큼 산다 


 

 

물섬 - 정온유

   -거식증 19

 

환한

상처가 끌고 온

새벽,

 

먼 데

수평선에서

은빛으로

달려온

 

미명의 붉은 섬들이

굵은 등을 뒤척인다

 

가늠할 수 없는 가없는 언어들이

수평선 너머에서 달려오고 달려와서

해 남은 시간 절벽에

꺾어지고 부서진다

 

공중에 떠도는 물섬 같은 마음들은

해가지면 무성했다 해가 뜨면 사라지고

물마루 두두룩하게 마음들이 젖는다.

     

 

파랑새는 있다 - 방화선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

행운의 클로버를 찾고 있는 여자의

앞섶이 팔랑거린다

 

네잎클로버 한 뿌리가 요행을 달고

충혈된 심장을 부추긴다

 

간절한 바람은 아니나

부족함을 채우기는 또 다른 숫자 퍼즐로 들어가는 것

밖을 기웃거리나 생면부지의 또 다른 면을 만드는 것

가끔 번개치고 천둥칠 대박을 향하면

변종에 빠져든 영혼이 시들었다

 

물음표룰 거실에 앉히고

들뜬 심장을 골똘하게 고치면

마음 안에 날개 접힌 파랑새의

묵상이 익어간다

 

적적한 고요 속에

여자의 행복 환하게 불을 켠다

 

 

 

dumm* - 박용진


분리 수거장에 깨진 유리가 있다

조각에선 어둠이 흘러

 

파편에선 흙먼지와 웅크린 윽박이 자리 잡지 못하고

 

지난 밤 다툰 이웃의 창문은 꺼져

 

유리엔 빗장뼈가 자란다

굴곡의 겉멋과 부푼 말에 무감각을 내놓지만

골막에 금 가고 아픈 얼거리로 더 잠겨

수목한계선을 잊고 상륙하는 나무같이

 

마저 흘리지 못한 어둠을

둠으로, 둠은

오래도록 갇히는 일

 

깨진 결 따라 읽던 바람은 다시 방향을 잃고,

 

---

* dumm: 바보라는 말   


 

코스모스 - 정유광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시골집 앞마당

바람 부는 밤이면

코스모스는

알 수 없는 부호를 산란한다

 

지구 밖 떠나온 고향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일까

 

나 어릴 적

하나 둘 세어 보던 숫자 속에

숨어 있던 꿈의 개수만큼

코스모스에 있던 푸른 돌들이

지구로 뚝뚝 떨어져

아름다운 코스모스로 피어났다

 

코스모스의 난민들이

왜 지구로 왔는지

여섯 꽃잎이 되어 피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맑은 눈으로

지구 한쪽에서 서서히 유랑하며

밤마다 고향으로 슬픈 편지를 보내는

난민들의 유랑을 공감한다면

코스모스의 아름답고도 슬픈 비밀

이 밤에

내 가슴에 녹아내리겠지

   

 

 

아내의 지우개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322

 

아내의 지우개는 성능이 탁월합니다

어느새 세상도 다 지워 버리고

세월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어느 틈에 말도 말끔히 지워 버리고

생각도 이미 다 살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

침묵의 집이 되어

멀뚱하니 누워먹는 애기부처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우는 일도 모두 잊었습니다

그걸 아는 나는 실큼한 생각에 젖어 있다

슬그머니 돌아서고 맙니다

잃어버린 그림자 같은 사랑과

잊어버린 격정의 세월을 지나

하롱하롱 져버린 꽃잎이 되어

아내는 혼자 아파서,

아픈 줄도 모르고 누워 있습니다.

 

 

                         * 월간 '우리詩' 2018년 9월호(통권 363호)에서  

                           * 사진 : 지금 한창 꽃을 피우는 금꿩의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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