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춤 곱사춤 원숭이 춤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이시대의 환획을 그은
1인 창무극의 광대 공옥진 여사가 며칠전 별세헸다.
결혼에 실패하고 비구니가 되려구 절에 들어가 3년을 살기도 했던 가슴에 응어리
와 한많은 삶은 방송을 통해서도 많이 보도되었다.
40대 나이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큰 무대에서도 환호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공연을 했지만 노후의 삶은 어찌된 일
인지 영세민으로 전략하고 몸이 많이 아파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우러찬 목소리로 창을 부르고 구수한 감칠맛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섞은 말솜씨는 누구나 좋아하고 박수를 보냈다.
한샌병 환자들이 살아가는 소록도에 공연을 가서 환자와 같이 부등켜안고 울던
모습의 옛날 화면은 보는이들을 울게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병신춤을 추어 한때는 장애인 단체에서 항의 소동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모두는 그들의 힘든 한많은 생애를 달래주기 위함이었을것이다.
동물원에 가면 쇠창살에 같혀있는 짐승을 보고 그들의 한을 풀기위해 동물춤을
추었다고한다. 이렇게 유명한 공옥진 여사를 인간문화재로 발굴 영광군청에서는
전라남도에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었다. 이유는 어디서 배웠다는 근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하나 후계자도 안나왔다고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2010년 6월에 무형문화재로 그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0여년전 뇌졸증으로 쓰러져, 이분이 세상을 뜨면 1인 창무극은 영원히 묻혀
버릴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크다고 누구나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후계자가 없다.
후계자 없이 아쉬움에 눈을 감았지만, 고인은 창무극의 유일한 보유자 이자 마지막
전승자로 남아서는 안될것이다. 구성진 판소리 창극 춤을 합해놓은 종합광대 1인
창무극 하루빨리 후계자를 발굴 세상에 널리 알려 길이길이 전통을 이어서 이분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것이다.
내가 영광에서 태어나고 공옥진 여사가 우리 엄마와 동갑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분의 공연과 살아온 삶에 대해 많이도 관심을 가졌으며 전에 라디오 방송에 출연
일생일대를 이야기 한 당시목소리가 생각난다.
어릴때 법성포에서 단오축제를 하면 아버지는 다녀와서 공옥진여사 공연자랑을 많이
하셨다.3년전 화면에서 저를 사랑하는 모든분들 화면으로 인사드린다고 하면서 하는말
(세상사는게 별거 있간디 힘들고 괴로울때는 일어나서 춤한번 춰버려) 하는 그분의 말씀
그후 예술회관에서 아픈몸으로 공연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안죽으면 다시올게요) 하는 애잔한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맘을 짠하게 했다.
스스로 발명한 창무극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공옥진여사 그의 삶은 파란만장 했지만
서민들의 힘든삶에 윤할유가 되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춤과 창을 기억할것이다.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춤추시고 못다한 소망
이루시고 영면하소서. 두손모아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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