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은 구주 예수님부터 해서 하나님 아버지까지 이어지는 메시야의 계보를 잘 보여주고 명료하게 증거하고 있는 말씀들 중 일부로 특히 우리 인생들 중에는 아담이 모든 처음인 것을 알 수 있고, 그러한 사실은 아담이 어떤 식으로든 구원에 참예케 된 자임을 방증하는 것으로 실상 구원에 참예하지 못한 자가 메시야에 계보에 든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조금만 따지고 봐도 모순 중에 모순이 아닐 수 없는 측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사실상 그 어떠한 인생들에 있어서도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구원에 참예케 됨이 불가하고, 참으로 구원이라는 개념을 논할 수 있는 자체조차도 안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기 전의 아담이, 게다가 태초의 인생인 아담이 어떻게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었던 것이고, 뿐만 아니라 아래 본문에서 증거된 것과 같이 메시야의 계보에 있어 많이 중요한 비중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느냐가 의문이고 난제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에 있어서는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증거된 말씀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이며, 당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담과 하와와 뱀이 다 함께 하는 상황에서 뱀으로 형상화, 상징화된 사탄을 책망하고 정죄하는 과정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구주 예수님에 대해 계시하신 것이고, 한편으로는 약속하신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오늘날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진정 그렇게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이 아닌 것이라면 믿음의 선배나 권속들, 믿음으로 인한 역사들 자체가 불가했을 것이고 말이 안 되는 것인데..
그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되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희생 제사와 희생 제물, 성막과 성전, 특히 유월절 어린 양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제자장과 선지자 등과 같이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준비하시고 나타내시며 실제로 맛보게 하시고 경험할 수 있게 하신 것이며, 사실 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이자 가장 먼저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 때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아담은 바로 그러한 오실 메시야에 대한 계시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과 근본적으로는 결코 다를 수 없는 구원과 산 신앙, 곧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이고 죄악이 아닌 말씀의 살아 있는 믿음도 어느 정도는 될 수 있었던 것이며 심지어는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메시야의 계보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도 들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누군가는 그러한 이치와 원리와 해석이 많이 상식적이지 않아 보이고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며 심히 미약해 보이고 말이 안 될 정도로 실제성이 빈약해 보이며 시간과 공간적으로도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인간적, 세상적, 이성적, 논리적, 상식적으로는 거의 모두 말이 안 되는 일들인 것이고 하나하나 현실적으로 많이 미약해 보이며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불가능인 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한계와 불가능들, 문제와 의심들보다 더 크신 분이 아니실 수 없는 분이며, 모든 이성과 상식들, 시간과 공간들, 제한과 불가들을 완전히 뛰어 넘으시는 분인 것이고, 실상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들보다 더욱 더 크신 분인 것으로..
만일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세상에 그 누구라도 구원에 참예케 됨이 힘들었을 것이고 전적으로 합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아예 믿음으로 인한 구원이라는 개념과 실제 자체가 불가했을 것이고, 다른 그 누구보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대략 20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부터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실제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온갖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을 누리는 것도, 또한 범하게 되는 크고 작은 죄악들에서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 등을 실제로 누리게 되는 것도 불가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도 불가이거나 추상에 머물거나 아예 현실성이 없게 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러나 그게 아닌 것이고, 사실은 그러한 모든 일들 하나하나에 있어서 그 이상으로 가능하게 하시고 상상 이상으로 실제가 되게 하실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말로 표현도 다 못할 정도로 살아 역사하시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고, 그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은혜와 역사들, 섭리와 누림들은 측량 못할 정도로 생생하고 강력하며 초월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반 은총이든 특별 은총이든 간에 그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역사들을 위해,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을 위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일들도,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다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들도, 더 나아가 근원적으로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역사들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이성과 상식과 과학과 한계와 불가능들을 완전히 뛰어 넘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참으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생생하고 강력하며 초월적인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누가복음3:38)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9월 2일(토)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