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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지죄(餘桃之罪)
(먹다) 남은 복숭아의 죄란 뜻으로, 애증(愛憎)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지나친 총애가 도리어 큰 죄의 원인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이다.
餘 : 남을 여(飠/8)
桃 : 복숭아 도(木/6)
之 : 갈 지(丿/3)
罪 : 허물 죄(罒/8)
(유의어)
망국지음(亡國之音)
여도담군(餘桃啗君)
애증지변(愛憎之變)
출전 : 회남자(淮南子) 세난(說難)
같은 행동이라도 사랑을 받을 때와 미움을 받을 때가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여도담군(餘桃啗君)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 전국(戰國)시대의 인물 한비자(韓非子)가 쓴 유세(遊說) 지침서 세난(說難)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곁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영공의 총애를 받았는데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고 젊고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미자하를 찾아와 그의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알려주었다. 미자하는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달려 가고자 영공의 수레를 허락도 없이 타고 나갔다. 당시 위나라 국법은 왕의 수레를 훔쳐 타는 자에게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가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벌을 내리기는커녕 미자하를 칭찬했다. "효자로다. 어머니를 위해 죄 짓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하루는 또 미자하가 영공을 따라 과수원에 갔다. 미자하는 복숭아 하나를 따서는 한 입 베어 그 맛을 봤다. 달기가 그지 없었다. 그제서야 곁에 있던 왕이 생각난 미자하는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건네며 맛 보기를 권했다.
영공은 무엄하다고 생각지 않고 또 한 번 미자하를 두둔했다. "참으로 나를 위하는구나.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내게 주다니."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아졌고 미자하에 대한 영공의 총애 또한 식었다. 이 때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 영공 앞에 서게 됐다.
미자하는 다시 한 번 왕의 너그러움을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영공은 "저 놈은 본디 고약하다. 한 번은 내 수레를 훔쳐 타지 않나, 또 한 번은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내게 권하지 않나" 하며 크게 꾸짖었다.
여기서 먹다 남은 복숭아를 바친 죄라는 뜻의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말이 나왔다.
왕을 대하는 미자하의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던 데 반해 미자하를 대하는 왕의 태도가 딴판으로 변한 게 화근이었다. 태도가 변한 왕이 문제인가, 아니면 변한 왕을 살피지 못한 미자하가 문제인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왕을 탓해야 소용 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변한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미자하의 어리석음이 더 큰 문제라 하겠다.
중국에서만 부는 줄 알았던 반부패 사정 바람이 최근 우리 사회도 강타하고 있다. 사정당국을 탓할 게 아니라 그런 사정 바람을 몰고 온 환경 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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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지죄(餘桃之罪)
애증(愛憎)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교훈이다.
법(法)은 드러내야 하고, 술(術)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한비자(韓非子)가 기원전 약 280~233년에 외친 이 말이다.
한비자는 왕과 미자하의 사랑 이야기를 전한 뒤에 애증이 바뀌었기 때문에 앞에 칭찬받았던 일이 나중에 질책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촌평을 달았던 것이다.
사랑할 때의 잣대와 그렇지 못할 때의 잣대 기준은 이처럼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것. 이 진리를 깨닫는 자만이 훗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사랑할 때는 코를 풀어 전봇대에 문질러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차분한 마음으로 바라보라. 과연 길거리에 코를 풀어 전봇대에 문지르는 모습이 아름다운가를.
정치인들이여!
뇌물을 바치고 손바닥 비비며 접근할 때는 한없이 좋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뇌물로 인해 지옥으로 가고 있는 자들을 생각해 보라.
명심하라 이 말, 여도지죄(餘桃之罪)를!
가슴에 새겨라 이 말. 여도담군(餘桃啗君)을!
⏹ 여도지죄(餘桃之罪)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미자하(彌子瑕)는 미동(美童; 예쁜 소년)으로 위(衛)나라 영공(衛靈公)의 총애(寵愛)를 받았다.
당시 위나라 국법에 따르면 임금의 수레를 허락 없이 타는 사람은 월형(刖刑;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에 미자하는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급한 나머지 왕명이라 속이고 왕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이 말을 들은 왕은 "과연 미자하는 어질구나.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생각한 나머지 월형을 범한다는 것조차 잊었구나"고 칭찬하여 말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미자하는 왕과 함께 과수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먹어 보니 아주 달아 다 먹지 않고 반을 남겨 왕에게 드시라고 바쳤다.
왕이 말했다.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 맛있는 복숭아를 나를 생각해서 다 먹지 않고 나에게 바치는구나."
그 후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자태가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어느 날 미자하가 왕에게 아주 작은 죄(罪)를 짓자 왕이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또 한 번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매우 버릇없는 놈이다"고 하였다.
미자하의 행동에는 처음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예뻐 보일 때는 어질다는 소리를 들었고, 미워 보일 때는 죄를 얻었던 까닭은,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에게 총애(寵愛)를 받을 때는 지혜를 내는 것마다 왕의 마음에 들고 친애(親愛)도 더하지만, 왕에게 미움을 받게 되면 지혜를 짜내어도 왕의 마음에 들지 않고 죄가 되며 더욱 멀어지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언(諫言)을 하거나 논의(論議)를 하려는 선비는 군주의 좋아하고 싫어함을 미리 살핀 후에 직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임금을 대하는 미자하의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던 데 반해 미자하를 대하는 왕의 태도가 반대로 변(變)한 게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변한 왕이 문제인가?, 아니면 변한 왕을 살피지 못한 미자하가 문제인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왕을 탓해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변한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한 미자하의 어리석음이 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前)정권의 모든 사업을 잘못된 정책으로 보고 일단 부패(腐敗)로 몰아붙여 사정없이 단죄로 다스리고 있다.
마치 취모멱자(吹毛覓疵; 털을 불어서까지 하면서 허물을 찾다)를 연상하게 하는 대대적인 숙청행사를 치루는 듯하다.
곧 몇 년 후에는 자기도 똑 같은 경우를 당할 것인데 마치 자기네는 영원토록 완전한 사람인 듯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도지죄(餘桃之罪), 애증(愛憎)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교훈이다. 법(法)은 드러내야 하고, 술(術)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한비자(韓非子)의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
곧 사랑할 때의 잣대와 미워할 때의 잣대 기준은 이처럼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것. 바로 이 진리를 깨닫는 자만이 훗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사랑할 때는 상대방이 다소 혐오스럽고 이상한 짓을 해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결혼 후 사랑이 점차 식어지면 좋은 충고를 하고, 또 아름답게 치장을 해도 오히려 기분을 해치는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정치인들이여!
뇌물을 바치고 손바닥 비비며 접근할 때는 자기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뒤를 챙겨주는 선배정치인들이 그가 죄나 다른 잘못으로 감옥에 가면 챙겨주기는 커녕 자기와는 인연이 전혀 없는 무 인연으로 취급하는 냉정한 현실을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이 말, 여도지죄(餘桃之罪)!
인간이 사물을 대할 때 서로 상반된 견해가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가령 컵에 물이 반쯤 있을 때 A(긍정)라는 사람은 "어!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하며, B(부정)라는 사람은 "에이! 물이 반밖에 없어"라고 말한다.
채근담(菜根譚)의 교훈이다.
性燥心粗者一事無成
心和氣平者百福自集
성격이 조급(躁急)하고 마음이 거칠은 자는 한 가지 일도 이룰 수 없고, 마음이 화평(和平)하고 기운(氣運)이 평안(平安)한 자는 모든 복이 저절로 모인다."
이는 조급함보다 마음의 화평에 우선함을 이르는 교훈이다. 멀리보고, 관대해 보자.
진리를 깨달으면 여도지죄의 난관에서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것이고, 여도지죄의 변을 빨리 깨닫는 자만이 사지(死地)를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좀 더 멀리보고, 남에게 관대해 보자.
▶️ 餘(남을 여)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余(여)가 합(合)한 글자이며 먹을 것이 남아 돌다에서 '남다, 나머지'의 뜻으로 나중에 약자(略字)로서 余(여)를 쓴다. ❷형성문자로 餘자는 ‘남다’나 ‘나머지’, ‘여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餘자는 食(밥 식)자와 余(나 여)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余자는 나무 위의 오두막을 그린 것으로 ‘나’나 ‘남다’, ‘여분’이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余자에 있는 ‘남다’나 ‘여분’이라는 뜻은 지금의 余자가 餘자의 속자(俗字)로 쓰이기 때문이고 본래의 의미는 ‘나’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쓰인 余자는 발음요소일 뿐이다. 餘자는 ‘음식이 남다’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食자가 의미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餘자는 단순한 의미에서 ‘여분’이나 ‘남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余자는 餘자의 속자로 쓰인다. 그래서 실제 쓰임에서는 余자와 餘자가 혼용되는 예가 많다. 그래서 餘(여)는 (1)일정한 수를 나타내는 수사(數詞) 위에 붙어, 그 수 이상(以上)이라는 뜻을 나타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남다 ②남기다 ③나머지 ④나머지 시간(時間) ⑤여가 ⑥여분 ⑦정식 이외의 ⑧다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남을 잉(剩), 두터울 후(厚), 도타울 돈(敦), 짙을 농(濃), 풍년 풍(豊)이다. 용례로는 넉넉하고 남음이 있음을 여유(餘裕), 남은 땅을 여지(餘地), 큰 물결이 지나간 뒤에 남는 잔물결을 여파(餘波), 남은 시간을 여가(餘暇),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년(餘年), 나머지의 것을 여개(餘個),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로 하는 기술이나 재간을 여기(餘技), 주된 일을 하고 아직 남아 있는 힘을 여력(餘力), 종이 따위의 글자나 그림이 있는 이외의 빈 부분을 여백(餘白), 나머지 다른 것을 여타(餘他), 본디부터 소용되는 것 밖에 남거나 남긴 물건 또는 일을 여건(餘件), 일정하게 정해진 때까지 앞으로 남은 날을 여일(餘日), 한 가지의 질병에 곁들여 일어나는 다른 질병을 여병(餘病), 병이 나은 뒤의 남아 있는 증세를 여증(餘症), 다른 생각을 여념(餘念), 남아 있는 운치나 울림을 여운(餘韻), 쓰고 남은 것을 모아 둠 또는 그 물건을 여축(餘蓄), 어떤 양에 차고도 남는 부분이나 채 차지 못한 부분을 여분(餘分), 넉넉하게 갖춤을 여비(餘備), 한 번 실패하였으나 아직 남아 있는 희망을 여망(餘望), 쓰고 난 뒤에 남아 있는 돈이나 물건을 여존(餘存),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명(餘命), 앞으로 남은 생애를 여생(餘生), 주되는 죄 밖의 다른 죄를 여죄(餘罪), 어떤 일을 겪은 다음의 그 나머지 세력이나 기세를 여세(餘勢), 다 쓰고 난 나머지를 잉여(剩餘), 그 나머지나 그 이외를 기여(其餘), 남아 있는 것을 잔여(殘餘), 넉넉하여 저절로 남음을 자여(自餘), 쓰고 난 뒤에 남아 있는 돈이나 물건을 영여(零餘), 여유가 가득함을 일컫는 말을 여유만만(餘裕滿滿),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먹인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좋게 보여 사랑 받던 것이 나중에는 도리어 화근이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담군(餘桃啗君),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한다는 뜻으로 편지 끝에 쓰는 말을 여불비례(餘不備禮), 대체가 이미 결정 되었으므로 나머지는 의논할 여지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무가론(餘無可論), 같은 행동이라도 사랑을 받을 때와 미움을 받을 때가 각기 다르게 받아 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여도지죄(餘桃之罪), 이미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다른 나머지도 다 이와 같음을 일컫는 말을 여개방차(餘皆倣此), 나머지는 볼 만한 값어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여무족관(餘無足觀), 필요하지 아니하여 생각에 두지 아니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여사풍경(餘事風景), 빠듯하지 않고 아주 넉넉함을 이르는 말을 여유작작(餘裕綽綽),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를 일컫는 말을 우여곡절(迂餘曲折), 막다른 골목에서 그 국면을 타개하려고 생각다 못해 짜낸 꾀를 일컫는 말을 궁여지책(窮餘之策), 독서를 하기에 적당한 세 여가로 즉 겨울 밤 비올 때라는 독서삼여(讀書三餘) 등에 쓰인다.
▶️ 桃(복숭아 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兆(조, 도)로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桃자는 ‘복숭아’나 ‘복숭아나무’를 뜻하는 글자이다. 桃자는 木(나무 목)자와 兆(조짐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兆자는 거북의 배딱지(復甲)에 나타난 점괘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조→도’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복숭아에 대한 고대인들의 인식은 매우 극단적이었다. 설화에서는 장수의 상징인 천도(天桃)복숭아 이야기가 전해져오지만, 도화살(桃花煞)이 있는 여자는 한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민간신앙도 있다. 복숭아는 귀신을 내쫓기 때문에 제사상에는 물론 집안에도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桃자에 쓰인 兆자는 발음역할 외에도 복숭아가 신(神)적인 것과 연관된 과일임을 뜻하기 위해 쓰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桃(도)는 ①복숭아 ②복숭아나무 ③복숭아(열매) ④대나무의 한 가지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복숭아와 자두를 도리(桃李), 복숭아 나무 숲을 도림(桃林), 복숭아의 털을 도모(桃毛), 복숭아나무의 열매를 도실(桃實), 복숭아 밭을 도원(桃園), 복숭아씨의 알맹이를 도인(桃仁), 복숭아 나무 가지를 도지(桃枝), 복숭아 껍질을 도피(桃皮), 나무에 달린 채 겨울을 나서 저절로 마른 복숭아를 도효(桃梟), 복숭아 빛깔과 같은 빛깔을 도색(桃色), 복숭아 꽃을 도화(桃花), 복숭아 나무의 잎을 도엽(桃葉), 신선 나라에 있다는 복숭아를 선도(仙桃), 선가에서 하늘 위에 있다고 하는 복숭아를 천도(天桃),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선도를 반도(蟠桃), 흰 빛깔의 복숭아를 백도(白桃), 복숭아와 오얏이 천하에 가득하다는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복사꽃이 아름답게 피는 때라는 도요시절(桃夭時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도원결의(桃園結義), 속계를 떠난 별천지를 도원경(桃源境), 이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라는 도원향(桃園鄕), 도화원이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라는 도화원(桃花源)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罪(허물 죄)는 ❶회의문자로 그릇된(非) 일을 하여 법망 또는 그물망머리(罒=网, 罓; 그물)部에 걸려 들었다는 데서 죄를 뜻한다. 범죄의 뜻으로 쓰는 글자 辠(죄)가 皇(황)에 가까우므로 진시황(秦始皇)이 이를 피하여 음(音)이 같은 罪(죄)자를 빌어 쓴데서 유래한다. ❷회의문자로 罪자는 '허물'이나 '죄', '잘못'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罪자는 网(그물 망)자와 非(아닐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본래 '허물'이나 '죄'라는 뜻은 辠(허물 죄)자가 쓰였었다. 辠자는 自(스스로 자)자와 辛(매울 신)자가 결합한 것으로 고대에는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의 코를 잘라 처벌한다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소전에서의 辠자가 '황제'를 뜻하는 皇(임금 황)자와 비슷하여 진시황 때는 이를 피해 새로이 만든 글자가 바로 罪자이다. 罪자는 '아니다'나 '나쁘다'라는 뜻을 가진 非자에 网자를 결합한 것으로 '잘못(非)을 저지른 사람을 잡는다(网)'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罪(죄)는 (1)사회적으로나 또는 도의(道義)에 벗어난 행위나 생각 (2)교법(敎法)을 어긴 무자비(無慈悲)한 행위 죄업(罪業) (3)법률(法律)에 어그러져 처벌(處罰)을 면치 못하는 불법(不法) 행위 범죄(犯罪) 죄범 (4)하나님의 계명(誡命)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命令)을 감수(甘受)하지 않는 인간의 행위 등의 뜻으로 ①허물, 죄 ②잘못, 과실(過失) ③죄인(罪人) ④재앙(災殃), 온갖 불행한 일 ⑤그물 ⑥허물을 탓하다, 떠넘기다 ⑦죄를 주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허물 구(咎), 허물 건(愆), 허물 하(瑕), 허물 자(疵), 벌할 벌(罰), 허물 고(辜)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공 공(功)이다. 용례로는 죄스럽고 송구스러움을 죄송(罪悚), 죄가 될 행위를 죄악(罪惡), 교도소에 수감된 죄인을 죄수(罪囚), 죄를 지은 사람을 죄인(罪人), 죄의 결과에 대한 갚음을 죄업(罪業), 그릇된 허물을 죄과(罪過), 죄를 저지른 형편과 상태를 죄상(罪狀), 범죄의 명목을 죄명(罪名), 범죄 행위의 명목을 죄목(罪目), 범죄의 성질을 죄질(罪質), 죄와 허물을 죄건(罪愆), 죄를 지음을 죄부(罪負), 죄를 지은 사람 중의 우두머리를 죄수(罪首), 죄송스러움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죄앙(罪仰),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상중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이르는 말 중생(罪生), 죄를 저지름을 범죄(犯罪), 저지른 죄나 잘못에 대하여 상대편에게 용서를 빎을 사죄(謝罪), 죄를 처단함을 단죄(斷罪),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허물이 없음을 무죄(無罪), 공을 세워 지은 죄를 비겨 없앰을 속죄(贖罪), 개인이 사사로운 일로 저지른 죄를 사죄(私罪), 죄를 용서하여 죄인을 놓아주는 것을 사죄(赦罪), 죄를 면해 줌을 면죄(免罪), 죄인이 처벌을 기다림을 대죄(待罪), 주되는 죄 밖의 다른 죄를 여죄(餘罪), 죄의 성립이나 무겁고 가벼움을 논함을 논죄(論罪), 죄가 너무나 커서 사형에 처해지더라도 죄가를 다 치를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죄불용사(罪不容死), 형기가 끝나기 전에 거듭 죄를 저지름을 일컫는 말을 죄중우범(罪中又犯), 죄상이 분명하지 않아 경중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가볍게 처리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죄의유경(罪疑惟輕), 범죄 행위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일컫는 말을 죄지경중(罪之輕重), 더할 수 없이 죄송함을 일컫는 말을 죄송만만(罪悚萬萬), 범죄 사실의 있고 없음을 일컫는 말을 죄지유무(罪之有無), 죄는 그 처자에게 까지 미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죄불급노(罪不及孥), 죄가 무거워서 죽어도 아깝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죄사무석(罪死無惜), 죄가 있는 사람이 또 죄를 범함을 일컫는 말을 죄상첨죄(罪上添罪), 죄는 크고 무거운 데 비하여 형벌은 가볍다는 뜻으로 형벌이 불공정함을 이르는 말을 죄중벌경(罪重罰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