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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고종 ‘을사늑약 저지’ 美에 친서…121년만에 워싱턴서 발견
조종엽 기자
2026. 5. 6
고종황제가 을사늑약 체결 한 달 전인
1905년 10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사진)가
121년 만에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발견됐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고종이 을사늑약 저지를 위해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를 통해 보냈던 친서 원본을 최근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친서는
‘大韓國大皇帝敬問(대한국의 대황제가 삼가 묻습니다)’로 시작해 총 506자가 담겼다.
고종이 국권 수호에 필요한 친서 및 위임장에 썼던 비밀 인장 ‘皇帝御璽(황제어새)’가 찍혀 있다.
해당 친서는 헐버트 박사 회고록 등을 통해 내용은 알려졌으나
실물이 드러난 건 처음이다.
고종 연구의 권위자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친서 작성자(고종)와 작성일(10월 16일),
장소(경운궁)가 명확히 드러난 중요한 발견”이라고 평했다.
“日 막아달라” 고종 친서 원본, 美도서관서 발견… 비밀옥새 선명
행동 노출 막으려 비밀옥새 찍어
헐버트 박사의 영역본 함께 발견
日 감시 피해 호텔방서 작성 추정
김동진 회장 30년 원본 추적 결실
고종 황제가 1905년 10월 을사늑약 체결을 막기 위해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실물.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마지막 부분엔 고종의 이름 경(㷩)과 국권수호 외교문서에 쓰였던 도장 ‘황제어새(皇帝御璽)’가 선명하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가
최근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실물을 확인한 고종 친서는
1882년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의거해
미국이 일본의 ‘보호조약’ 체결 압박을 저지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은 우리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으려 할뿐더러 병취(幷取·병합)하려고 합니다.
이는 만국공법이 단연코 허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도 적혀 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당시 고종은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로부터
이듬해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초청을 받은 상황이었다.
고종은 이 회의의 공동 주관자로 알려진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에게
대한제국의 상황을 미리 전할 필요성을 느끼고 친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친서는 내용도 원문으로는 알려진 바가 없고,
1993년 김기석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발견한 ‘헐버트 문서’에서
헐버트 박사가 영역한 내용이 파악됐을 뿐이었다.
이 교수는 “고종이 활발한 외교를 펼쳤음에도
외국 원수에게 보낸 친서 실물은 발견된 게 10종이 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국권수호에 썼던 ‘황제어새’ 선명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왼쪽)이 지난달 21일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고종황제의 친서 및 헐버트 박사의 영역본 실물을 확인하고 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김 회장이 5일 동아일보에 공개한 사진 속 친서 2장은
오얏꽃과 이파리 문양 테두리 등 양식이 기존에 확인된 다른 고종의 친서와 일치한다.
실물을 확인한 김 회장에 따르면 친서에 쓰인 종이는 가로 42cm, 세로 30cm 크기다.
특히 주목되는 건 끝부분에 선명하게 찍힌 인장 ‘皇帝御璽(황제어새)’다.
황제어새는
고종의 다른 인장과는 달리 제작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비밀 어새’로 알려져 있다.
대한국새(大韓國璽) 등 다른 국새나 어새는 내대신(內大臣)의 관리 아래 있어,
날인 과정에서 외부에 행동이 노출되고 압박이 개입될 위험이 있었다.
고종은 이를 피하려고 황제어새를 따로 만들어 직접 소장하다가 국권수호 친서 등에 썼다.
국립고궁박물관의 2009년 관련 전시 도록에 따르면
황제어새는 2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1형’은 2008년 재미교포로부터 실물이 환수됐지만 ‘2형’은 여전히 행방을 모른다.
인영(印影)을 보면 이번 친서에 쓰인 어새는 ‘2형’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어새는 1905년 10월 10일 고종이 국명 미상의 황제에게
대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힘써 달라고 보낸 친서(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유리원판 사진) 등에도 사용됐다.
● 현지서 친서 영역한 헐버트 손글씨
호머 헐버트 박사가 고종의 친서를 영역한 노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비밀리에 특사로 선정돼 친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가
친서를 영문으로 번역해 손으로 적은 노트 6장도 미 의회도서관에서 함께 발견됐다.
헐버트 박사는 회고록에서
‘일본의 감시가 심해 고종으로부터 특사 신임장을 받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박사는 주한미국공사관의 외교행랑 편에 보내진 친서를 워싱턴에서 확보한 뒤
한 호텔 방에서 노트 용지에 번역문을 작성했을 것”이라며
“헐버트 박사가 임무 수행에 얼마나 열정을 쏟았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헐버트 박사는 1905년 11월 중순 워싱턴에 도착했지만 백악관과 국무부의 냉대를 받았다.
일본이 밀사 파견 사실을 미리 알고 ‘만나주지 말라’며 미 정부에 사전 작업을 한 탓이다.
박사는 을사늑약 체결(11월 17일) 뒤인 11월 25일에야
국무장관과 면담하며 친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이미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지원한 상황에서 고종의 대미 친서 외교는 무모한 것이었을까.
이 교수는 “1895년 1월 청일전쟁 당시
일본이 보호국 안을 제시하자
고종은 미국 정부에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 정신에 근거해 저지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며
“이를 수용한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친서를 보내 ‘보호국’ 안을 철회시킨 전례가 있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30여 년 동안 헐버트의 후손과 협력해 친서 원본의 행방을 쫓아 왔다.
올해 3월 중순 기념사업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앨리스 김 씨(미 다트머스대)가
미 의회도서관에 고종 친서가 있다는 정보를 파악했다.
김 회장은 도서관의 ‘루스벨트 문서’ 담당자인 크롤 박사를 통해
고종의 친서와 손글씨로 된 영역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21일 미국에서 실물을 촬영했다.
“헐버트 박사, 위험 무릅쓰고 고종 밀사로 최선”
김동진 기념사업회장 활약 소개
“공적심사 제대로 다시 했으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에서 만난 김동진 회장은
“박사는 공적 심사도 제대로 없이 서훈이 이뤄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호머 헐버트 박사는 고종의 밀사로서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한제국의 충실한 신하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기념사업회에서
“헐버트 박사는 한국을 잘 알면서 일본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있었고,
특히 고종 황제를 비롯한 대한제국의 관리들이 크게 신뢰하는 인물이었기에
밀사로 최적의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을사늑약에 서명한 적이 없으니 무효’라는 고종의 전보를 받고,
이를 뉴욕타임스(NYT) 등을 통해 공개하며 일본의 부당함을 폭로한 것도 그였다는 것.
김 회장은 “오늘날의 한글 전용 역시 헐버트의 주장이 관철된 결과”라며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당대 독립운동을 한 지식인 가운데
박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고 덧붙였다.
박사는 별세 이듬해인 1950년 외국인에게 주는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받았고,
태극장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일괄 변경됐다.
독립장은 건국훈장 5등급 가운데 대한민국장과 대통령장에 이어 세 번째다.
김 회장은 “1950년 당시 헐버트에 대해 공적 조사를 못 했을 것이 확실하다”며
“훈격을 억지로 올려 달라는 게 아니다.
국가보훈부는 심사라도 제대로 다시 해 박사의 삶을 실상대로 평가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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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애끊는 유언… 한일강제병합 증거
동아일보 이새샘 기자
2010.8.10
“지난날 병합 인준은 日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날 유폐하고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
동북아역사재단, 국회서 자료전시회
(위)1926년 7월 8일자 신한민보에 실린 순종 황제의 유언.
(아래)1910년 8월 23일자 일본 도쿄아사히 신문.
곧 조약이 공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사진 제공 동북아역사재단
“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强隣·일본을 가리킴)이
역신(逆臣)의 무리(이완용 등을 가리킴)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요…
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제(脅制)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1926년 7월 8일 미국 교민들이 발행하는 신한민보에 보도된 순종의 유언이다.
유언이 작성된 것은 붕어 직전인 4월 26일.
한일강제병합이 강압으로 이뤄졌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일강제병합 100년 조약자료 전시회’를 마련한다.
사진자료 74점을 통해 한일강제병합이
불법적, 강제적으로 체결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1910년 8월 23일자 일본 도쿄아사히(東京朝日)신문 기사.
고종이 한일강제병합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허위사실과 함께
22일 일본 임시추밀원회의가 열려
조만간 한일강제병합조약 체결 사실을 공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조선 통감이었던 데라우치는
사후 기밀 보고서에서 22일 오전까지 순종 황제 동의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런데도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은
조약 체결 자체가 이미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점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일본 측 한일강제병합조약 재가 문건과 한국 측 칙유문도 나란히 전시된다.
한국 측 문건에는 순종 황제의 서명이 빠져 있고
문건의 이름 역시 ‘조칙’ ‘조서’가 아니라 ‘칙유(勅諭)’로 바뀌어 있다.
일왕의 서명과 어새 날인을 모두 갖춘 일본 측 문건과 대비된다.
한국에서의 조약 체결이 강제적,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02-2012-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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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은 진실이겠지만,
중요한건 한반도에서 을사늑약 체결.한일합병이 이루어진것이 아님.
프리메이슨에 포섭당한 매국노 을사오적이
대조선 미국에서 자신들 도장을 찍는 불법 을사늑약을 체결.
고종은 끝까지 사인 안함.,,고로 무효.
이후 한일합병도 본문처럼 불법 ㅡ 국제법으로 무효.
이런데 골수 친일파나 가짜역사를 배운 가짜보수들은 고종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왜곡?
가짜역사 세뇌교육은 참 무서운것?
1930년대 대조선(중국)과 진짜일본미국(한자로 잡혼=앵글로색슨=유대)의 합병이 진짜 한일합병.
그래서 지금도 미 합중국이라고 부르는것.
1918년 미국에서 국적을 일본으로 기재하고,
1925년 대한민국을 미국에 위탁하여 통치하자고 주장하다,
미국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한 매국노 이승만이,
해방후 가짜일본놈들 못가게 잡고,
자금까지 지원해주어,
한국인으로 개명한 토착왜구가 130만명.
지금 몇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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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으로 불을때며 운항하는 증기선.
이런배를 타고 1887년 에디슨이 미국에서 서울와서 경복궁에 전구를 설치할수있나요?
그리고 한반도에서 에디슨이 전구 발명한거 어떻게 알고 경복궁에 전구설치를 요청하나?
코넬데 소장 경복궁 근정전
1887년 에디슨이 전구를 설치한 미국의 진짜 경복궁.
연합뉴스 보도
1893년 시카코 박람회
중앙에 대조선이 있고
양쪽에 태극기 성조기 계양?
청일전쟁 당시 야자수가 있는 대동강은 어디나?
1904년 미국 신문에 보도된 명성황후 무덤.
남양주 조선 고종과 명성왕후 홍릉 능 정측면
남양주에 위치한 홍릉 능의 정측면 모습이다. 1991년 촬영.
미디어ID
b6b73ee5
저작권
한국학중앙연구원·김지용
촬영지
-
주제어
능/고종/명성황후
사진크기
2114x1389px (1200d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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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위 1904년 미국 신문에 보도된 흑백 원본 사진에는 산이 있는데,
1991년 남양주 홍릉 칼라 사진 배경에는 왜 산이없나? ㅡ 짝퉁증거?
왼쪽이 미국 명성황후 능.
오른쪽은 한반도 짝퉁.
귀모습과 팔모습 하반신 모습도 다르다.
미국 명성황후 능.
1904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딸 앨리스와,
가쓰라 테프터(진짜왜놈=앵글로색슨=유대), 오른쪽은 앨리스 신랑.
손에 들고있는것은 폴라로이드 카메라.
예의를 배운적이 없는 서양놈들이라 왕릉에 가서 석상에 타고있음.
진짜일본놈이 청일전쟁 일으키고 명성황후 살해.
청국은 조선군부(대원군이 국왕)
1904년 미국신문에 보도된 홍릉 장군상?
이때 뉴욕에서 돛을달고 석탄떄는 증기선 타고,
32.000 km 떨어진 한반도까지 올수도 없는데 미국 신문이 어떻게 보도했을까?
경복궁은 어디에 있었는지 증거?
왼쪽은 남양주 가짜홍릉 장군상..오른쪽은 미국의 홍릉 장군상
1907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어떻게 고종 사진을 찍어 보관하나?
조선본토는 어디??
1905년 을사늑약 친서는
‘大韓國大皇帝敬問 (대한국의 대황제가 삼가 묻습니다)’로 시작해 총 506자가 담겼다. ㅡ 본문
왕조실록에 나오는 조선의 위치는 위 한자 4글자.
서쪽에 넒은 대륙이 펼쳐있나? ㅡ 한반도 서쪽은 바다?
북쪽에 숭산이 있나? ㅡ소림사가 있는 숭산은 중공??
한반도 지도에 맞쳐보면 안맞음ㅡ 고로 한반도는 조선이 아님?
플로리다주 = 한반도
일본 = 쿠바
바하마 = 대마도 ...근처 섬이 진짜 하와이
1941년 진짜일본 쿠바가 위의 진짜 하와이를 공격한것.
북미대륙은 바다가 아니고 태평양국.
남미대륙은 대서양국.
멕시코만= 지중해
중공은 눈이 안오는 나라인가?
안중근이 이토를 암살한 만주는 위 지도.
남산 정상의 연못에서 2번쨰 사람이 빠져죽었다고
1921년 8월 16일 동아일보가 보도
남산정상에 연못이 있나요?
이 남산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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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본토는 미국이라는 증거는 아래
1910년 야구단 창단 붐이일기시작?
조선 전역에 13개 야구팀 창단? ㅡ 이게 한반도에서 가능한 일인가?
1920년 5월 19일
조선대학 운동장에서
조선대학 야구단과 시카코 대학 야구단이 경기를 했다?
경성제국대학(서울대)을 1924년 개교했다고 하는데,
이때는 미국에서 일본까지 오는 배가 없었음.
이것은 위에 나오는 조선대학을 서울로 이식하여 경성제국대학으로 역사세탁?
고로 1930년대 미국 조선대를 서울로 이식해서 경성제국대학으로 개교했다고 봄.
이화여대 연세대도 1925년 개교라는데 이것도 미국에서 1930년대 이식했다고 봄.
1871년 대원군이 동부 13개주를 인정하여 미국이 탄생.
국제적인 경기라는 말은 미국의 조선과 신생국 미국의 경기라는 의미 같음.
1922년 미국 프로야구단이 남대문 도착열차로 경성에 와서 야구경기를 했다?
1871년 대원군이 동부 13개주를 인정하여 주식회사 미국이(진짜일본) 탄생.
이후 조선왕조실록에 미국이 등장?
이 기사는 대원군이 미국으로 인정해준 동부 13개주의 대표인지,
아님 13개주 중에 1개 주 프로야구단이 열차를 타고,
경성인 남대문역에 도착했다는 기사같음.
미국에서 기차타고 남대문역에 올수있나요?
그래서 내가 미일은 120년 원수라고 하는것.
가짜 일본은 미국의 51번째 계열사.
남조선은 52번째 계열사?
지금은 중공 식민지 겸용?
트럼프한테 늙다리 미친영감이라고 큰 소리치며 사는 나라는 누구?
묵셔가=멕시코
한반도가 조선이라는데 어떻게 브라질 인구를 알수가 있나?
1896년 조선같이 인구가 많은 나라는 없다고 독립신문이 보도? ㅡ 한반도가 조선인가??
1909년 한반도에서 가능한 일이나?
동학혁명 당시
1894년 동학혁명때
전라도 진안 마이산에서 죽은사람을,
왜 평양 한참위의 의주 통군정옆에 매장하고 비를 세우나?
고로 한반도 지도와 안맞다.
의주 = 미국 캔사스시티
한민족이 황제훤원 자손을 먹여살렸다고 나옴?
신흥무관학교 교가
백두산애서 부산까지 만리가 되나?
신흥무관학교 교가에 나오는 조선은 아래?
함경도에서 부산까지 2500리?
캘리포니아가 황해도 해주.
옆이 평안도
정약용의 경세유표 내용.
성 1개가 한반도 비슷하거나 더 크다.
그런데 경기도 서쪽에 이런 성이 3개가 있다고 기록?
정약용의 경세유표 내용으로 지역표시
1924년 조선일보가 한반도에서 권총 장총을 판다고 광고할수있나요?
1933년 동광 잡지에 권총 장총 판다고 광고.
조선 본토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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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때 지도 천하전여총도에
한반도와 중공은 1910년대 까지 고려.
열도는 왜노 ㅡ 전부 색상이 같음.
그래서 지금도 왕실 제사때 경상도 사투리로 지낸다고 봄.
열도 가짜 일본(국호가 왜노)이,
1920년대 한반도로 건너와서 10년간 토지조사후 1930년대 완전장악 짐작.
진짜일본 (한자로 잡혼=앵글로색슨=유대=현재 미국)은
1940년대 까지 한민족 2억명 이상 학살하고,
우리땅 미국을 빼앗은 120년 원수..악의축?
이후 따라와서 전범 왜노대신 38선으로 분단시킨후
북미에서 태어나서 프리메이슨에 포섭당해 1918년 국적을 일본으로 기재한 이승만을 임명후,
3000회 북침으로 남침 유도하여 6.25 일으켜 630만명 이상 학살하고
남침으로 조작하여 역사세탁한 놈들이 진짜일본 미국..
가짜일본도 1938년부터 부모나라 한반도 고려 백성 840만명을 끌고가서
20만명 이상 성노예로 부리고 100만명 학살하고,
720만명을 강제노동과 전쟁에 투입한 패륜아가 일왕과 하수인들..골수 친일파들?
유대인 모택동도 1910년대 까지 우리땅인 고려에 1949년 중공 건국후
1950년대부터 76년까지 한민족 1억 7000만명 학살한 원수.
북조선이 한번도 먼저 도발한적 없음?
큰사건 범인은 진짜일본 미국과 하수인 양당..
북침으로 남침 유도한것은 ㅡ 참조

첫댓글 1897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게 아니고,
대한국으로 변경한거 본문이 증거.
그런데 이것을 조작해서 대한제국으로 변경했다고 가르침?
우리들이 배운 역사 99.9%는 조작?
이성계때 나라이름이 조선이 아니고 고려라고 나옴.
언제 조선으로 바꾸었을까?
삼국시대 고려 조선본토는 어디인가?
진짜 일본은 누구일까?
1863년 이토 히로부미가 영국에 유학.
1902년 영일동맹.
이때 열도 섬에서 유럽 섬에 나라가 있는줄 어떻게 알아 동맹을 맺나?
이때는 가까워야 동맹을 체결가능 상식.
진짜 일본은 쿠바..영국은 남미에 있어 영일동맹을 체결한것.
그럼 조선도 본문 지도처럼 북미 아님 남미에 있어야 맞는거 아닌가?
물론 중국도 조선과 가까이 있어야 역사가 이루어지는건 당연.
가짜일본은 왕실 제사때 경상도 사투리로 지낸다고 함.
열도 가짜 일본(국호가 왜노)이,
1920년대 한반도로 건너와서 10년간 토지조사후 1930년대 완전장악 짐작.
진짜일본 (한자로 잡혼=앵글로색슨=유대=현재 미국)은
1940년대 까지 한민족 2억명 이상 학살하고,
우리땅 미국을 빼앗은 120년 원수..악의축?
이후 따라와서 전범 왜노대신 38선으로 분단시킨후
북미에서 태어나서 프리메이슨에 포섭당해 1918년 국적을 일본으로 기재한 이승만을 임명후,
3000회 북침으로 남침 유도하여 6.25 일으켜 630만명 이상 학살하고
남침으로 조작하여 역사세탁한 놈들이 진짜일본 미국..
가짜일본도 1938년부터 부모나라 한반도 고려 백성 840만명을 끌고가서
20만명 이상 성노예로 부리고 100만명 학살하고,
720만명을 강제노동과 전쟁에 투입한 패륜이가 일왕과 하수인들..골수 친일파들?
유대인 모택동도 1910년대 까지 우리땅인 고려에 1949년 중공 건국후
1950년대부터 76년까지 한민족 1억 7000만명 학살한 원수
큰사건 범인은 진짜일본 미국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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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이 어떻게 환웅시대 치우천황을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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