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 밑에서 송이가 솟을 때 참나무 숲에선 버섯의 제왕인 능이가 솟아 오른다. 경북 울진의 응봉산 자락을 오른 마을 주민이 능이를 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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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 밑에서 송이가 솟을 때 참나무 숲에선 버섯의 제왕인 능이가 솟아 오른다. 경북 울진의 응봉산 자락을 오른 마을 주민이 능이를 캐고 있다. | | |
해마다 요맘때면 송이 취재를 떠났다.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 송이를 따고 능선의 산막에서 간단한 송이 요리를 맛볼 때마다 듣는 소리는 "1능이 2표고 3송이 혹은 1능이 2송이 3표고"였다. 예부터 내려오는, 맛으로 평가한 버섯의 순위다.
'산중의 보석'이라는 귀한 송이보다도 더 맛좋은 능이는 도대체 어떤 버섯일까. 송이와 표고가 2,3위를 다툴 때도 언제나 1등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능이란 놈의 정체가 궁금했다.
경북 울진의 북면 구수곡자연휴양림 인근의 야산을 올랐다. 응봉산 자락 상당리에 사는 이곳 토박이 진준식(55)씨가 앞장섰다. 송이는 소나무 밑에서 자라고, 능이는 참나무 밑에서 자란다. 능이를 찾아 들어간 곳은 바로 그 참나무숲. 송이가 날 때 능이도 같이 난다.
산에는 온통 금줄이 둘러쳐졌다. 8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울진의 금강송 쭉쭉 뻗은 산들은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송이 도둑을 막기 위해서다. 울진군청 산림녹지과 김진업 계장은 "송이철엔 등산로에서도 등산객은 앞만 보고 가야지 주변을 돌아봤다가는 경을 친다"고 했다. 송이가 산촌 주민들에겐 1년을 기다려 만나는 소중한 돈줄이기 때문이다.
참나무들 사이 지난해 떨어진 낙엽들을 뒤적이는데 진씨가 이게 능이 버섯이라고 하나를 가리킨다. 낙엽 속에 파묻힌 버섯은 그 색이 낙엽과 같아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바닥 두 개를 펼쳐 놓은 크기의 갓이 펑퍼짐하게 퍼졌다. 송이가 뾰족한데 반해 능이는 옆으로 넓었다.
진씨와 김 계장의 설명으론 예전엔 송이나 능이를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진씨는 "그냥 먹을 수 있는 버섯 중 하나로만 여겼고, 산나물을 캐듯 따 와 찬거리로 먹었던 것이 송이고 능이었다"고 했다.
70년대 후반 송이를 유독 좋아하는 일본으로 수출길이 뚫리며 송이 값은 크게 올랐고 '산의 보물, 산신이 빚은 별미'란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한창때는 A등급 1kg에 70만원 이상을 호가했다. 당시 송아지 값은 50만원이었다. 송이 한 소쿠리 캐 와서는 송아지 한 마리 끌고 가던 호시절이었다.
송이가 그런 귀한 대접을 받는 동안 능이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울진군에선 송이가 전량 수매돼 유통되지만 능이는 캔 이들이 찬으로 먹는 것 말고는 인근 식당 등에 알음알음으로만 판매되고 있다.
최근 그 맛과 향이 소문나기 시작해 찾는 이들이 늘었고 일부 유통상들이 판매를 하고 있지만, 아직 그 가격은 송이의 7,8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산에선 캔 능이를 들고 마을로 내려갔다. 진씨는 소쿠리채 아내(안이분ㆍ49)에게 건네며 "호박 넣고 푹 끓여 달라"고 했다. 한참 동안 버섯을 다듬은 안씨는 "송이는 벌레가 거의 없어 생으로도 잘 먹는데, 갓이 넓은 능이는 벌레가 잘 파고들어 푹 끓여 먹는게 좋다"고 했다.
쭉쭉 찢은 버섯을 물에 잘 씻어내선 채 썬 호박과 함께 끓이기 시작했다. 재료는 달랑 2가지.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한참 후 안씨가 음식을 차려 냈다. 국만 나올 줄 알았는데 언제 또 준비했는지 돼지고기와 함께 요리한 능이볶음도 같이 차려졌다. 밥상을 둘러싼 울진 토박이들은 모두 송이나 능이나 버섯 향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음식은 애호박과 끓인 국이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까맣게 우러난 국물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는데 올리브 기름을 뿌려 놓은 듯 혀끝이 부드럽다. 김 계장은 "능이만큼 기름이 진득하게 배어나오는 버섯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송이보다 진한 그 향에 다들 "어제 먹은 술이 다 풀렸다"며 감탄했고, 졸깃한 육질에 엄지손가락을 펴 들었다.
볶은 능이로도 젓가락질이 빨라졌다. 함께 볶은 돼지고기보다 능이가 더 졸깃거렸다. 능이가 주가 되고 고기는 양념으로 전락하는 성찬이다. 송이와 달리 능이 향은 눅진했다. 송이향이 나풀거리는 실크 스카프를 닮았다면 능이 향은 부드러운 캐시미어 숄의 느낌이다.
울진군은 10일부터 송이 수매를 시작했다. 현지의 최근 시세는 등급에 따라 7만~30만원에 거래된다. 서울의 백화점에선 이보다 70~80% 비싼 가격에 팔린다.
울진군은 26~28일 울진엑스포공원을 주무대로 '2008 울진 금강송 송이 축제'를 연다. 인근 송이산에서의 송이 채취 체험, 송이 무료 시식회, 송이 요리 체험, 송이 경매전, 송이 생태 관찰, 송이 품평회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펼쳐진다. 울진군 산림녹지과 (054)789-6820~3
송이철이 되면 울진 읍내는 온통 송이 판매장으로 변신한다. 간혹 값싼 중국산이나 북한산 송이가 섞여 들어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울진읍 시외터미널 인근의 해송상사(054-781-0880) 등이 믿을만하다. 택배도 가능하고 능이도 함께 취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