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암사자 사살… 이웃도 사육 몰랐다
경북 고령 민간목장서 키우던 사자
70분만에 인근 숲서 발견돼 사살
재난문자로 탈출 알려 대피 소동
2급 멸종위기종 허술 관리 논란
14일 오전 경북 고령군의 한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한 마리가 인근 숲속에서 발견됐다. 이 사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 고령군 소속 엽사들에게 탈출한 지 1시간 10분 만인 오전 8시 37분경 사살됐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북 고령군의 한 민간 목장에서 키우던 암사자가 탈출했다가 약 70분 만에 사살됐다. 이 암사자는 국제멸종위기종 2급인 ‘판테라 레오’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웃 주민들조차 사육 사실을 알지 못해 멸종위기 동물 관리가 허술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경북소방본부, 고령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24분경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의 한 민간 목장에서 기르던 암사자 한 마리가 우리에서 탈출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목장 주인은 신고 전화에서 “관리인이 아침에 사자 우리에 갔더니 뒤편 문이 열려 있었고, 어제 저녁까지 있었던 사자가 사라졌다”고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 고령군 소속 엽사들은 오전 8시 34분경 목장에서 약 20m 떨어진 숲에서 암사자를 발견하고 인명 피해 우려 때문에 현장에서 사살했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사자의 나이는 스무 살로 고령이고, 최근 암 질환에 걸린 상태”라고 말했다. 암사자는 관리인이 청소하러 들어간 사이에 통로를 통해 열린 문으로 우리를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자가 우리를 탈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근 마을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고령군과 성주군은 사건 접수 약 20분 후 재난안전문자를 통해 “암사자가 탈출했다. 안전 관리에 유의하고 발견 즉시 119에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암사자가 달아난 방향으로 추정됐던 북두산에는 입산 금지 명령도 내려졌다. 해당 목장에서 약 700m 떨어진 캠핑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캠핑장 이용객 약 70명은 오전 7시 50분경 캠핑장 주인의 안내에 따라 차량 5분 거리인 면사무소로 대피했다.
고령군 관계자는 “국제멸종위기종(CITES)인 암사자를 2008년부터 대구환경청 신고 및 허가를 받고 합법적 절차를 거쳐 사육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장과 인근 마을 주민 등은 사자 사육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목장주는 지난해 8월 전 주인으로부터 목장을 인계받으면서 처음 사자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주인은 “소를 키우려고 했는데, 와 보니 사자 2마리가 있었고 인수 직전 수사자가 죽었다”며 “남은 암사자를 동물원 등에 기부 또는 대여하길 요청했지만 다들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경남 김해시의 부경동물원에서도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갈비 사자’가 발견되면서 멸종위기종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에선 동물원과 사육시설 등록제를 ‘허가제’로 강화하는 내용의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기존 시설에는 기준에 맞게 시설을 정비할 수 있도록 5년의 유예 기간을 주기로 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희귀 동물은 개체와 종마다 요구되는 동물 복지 기준이나 관리 기준이 굉장히 높은데 현재 우리나라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 12월부터 개정된 법이 시행되면 동물들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시설인지, 전문 인력은 있는지 등 촘촘한 기준을 적용하며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령=장영훈 기자, 최미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