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입장 표명 어렵다”, 시민단체 “잘 모르겠다”
의협 “한의사 사용은 불법”, 약사회 “입장 표명 곤란”
복지부 “결정된 바 없다”, 식약청 “향후 검토하겠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최근 전국이사회를 개최하여 선종욱 전남지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천연물 유래 의약품 관련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데 이어 양의사의 불법 한약사용 처방은 당연히 금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한약제제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천연물신약’에 대한 양의사들의 사용 제한과 양방 건강보험의 급여 적용 취소를 촉구했다.
물론 한의사협회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의사협회 또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의사협회는 지난 5월 보건복지부에 한의사의 천연물신약 처방 적법성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한 바 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천연물신약과 관련한 의협의 입장은 한방대책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서대로다”고 말했다. 한방대책특별위의 성명서에서는 “천연물신약은 말 그대로 자연의 식물, 광물 등 천연물에서 약효 성분을 취해 만든 약물로서 소위 음양오행 같은 한방이론에 따라 지었다는 한약과는 완전히 다른 약물”이라며, 한의사의 천연물신약 사용은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또한 약사회 관계자는 “여러 단체와 관계가 있는 것이어서 그 부분(천연물신약)에 대해 입장을 내기 곤란하다. 약사회쪽에서 풀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앞으로 제도적 부분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특별히 의견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느 한쪽 편들면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이처럼 천연물신약의 사용권 주체를 놓고 한·양방간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실제 이같은 천연물신약을 개발한 제약사측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답은 ‘글쎄요’다. 명확히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본지에서는 1~7호 천연물신약을 개발한 6개 제약회사와 복지부, 식약청, 의협, 약사회, 시민단체 등의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천연물신약에 대한 각각의 입장을 물었다.
현재 천연물신약은 △아피톡신(구주제약) △조인스정(SK케미칼) △스티렌정(동아제약) △신바로캡슐(녹십자) △시네츄라시럽(안국약품) △모티리톤정(동아제약) △레일라정(한국피엠지제약) 등 7개 품목이 출시돼 있다.
천연물신약 제1호인 ‘아피톡신주’는 꿀벌의 독을 이용해 만든 골관절염 치료제로 구주제약에서 개발했다. 구주제약 관계자는 “현행 제도 아래서는 한방쪽에 비즈니스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한방시장이 어떤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연물신약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가 솔직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또 다른 천연물신약 개발을 위해 임상시험 대기 중인 것이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공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위령선, 괄루근, 하고초 등 한약재 추출 성분을 근간으로 출시된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정’. 이를 개발한 SK케미칼 관계자는 “천연물신약에 대해선 코멘트하기 힘들다. 한의사들이 사용해서 시장이 커질 수도 있다고는 보지만 입장을 밝히기가 어렵다. 정책적인 부분도 있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해관계에 둘러싸여져 있다 보니, 어느 한쪽 편을 들게 되면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정확히 알지 못해 의견 제시 어렵다
그는 또 “현재 임상시험 중인 천연물신약 후보는 4개 품목(천식, 치매, 위염, 대장증후군 치료제 관련 약물)이고, 임상 대기 중인 것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동아제약은 ‘스티렌정’과 ‘모티리톤정’을 개발했다. 국내 제약사로는 유일하게 두 개의 천연물신약을 갖고 있다. 애엽이 주성분인 ‘스티렌정’은 위염 치료제다. 현호색, 견우자 등을 주성분으로 한 ‘모티리톤’은 소화불량 치료제다. 2017년까지 연매출 500억원을 기대케 하는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천연물신약 문제는 민감한 질문이라서 따로 언급해 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의사가 사용하면 시장 확대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일단은 그렇게 따지면 그럴 수도 있지만,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후속 연구개발에 나선 천연물신약은 있지만 현재 공개할 단계는 아니며, 스티렌정의 2010년 매출액은 880억원이고, 모티리톤의 올 매출 목표는 130억원이다.
자생한방병원의 관절 강화 및 치료 처방인 ‘청파전’을 소재로 개발한 ‘신바로캡슐’. 이를 개발한 녹십자측은 올 매출액을 100억원대로 예상하고 있다.
녹십자 관계자는 “한의사와 의사간 논란이 되고 있는 천연물신약에 대해 딱히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다만, 우리 제약사 입장은 많은 매출을 올리는 게 중요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신바로캡슐을 잇는 후속 천연물신약으로 소화기계 분야를 연구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임상시험에 돌입하지 못했다.
황련과 아이비엽의 유효성분으로 조성된 기관지염 치료제 ‘시네츄라시럽’은 안국약품이 개발했다. 안국약품 관계자 또한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현재 연구개발 중인 또 다른 천연물신약은 두 건 정도다. 하나는 신장염을 적응증으로 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치주질환 치료제다.
한국피엠지제약이 만든 제7호 천연물신약 ‘레일라정’. 당귀, 방풍, 오가피 등을 주성분으로 한 관절염 치료제다. 한국피엠지제약 관계자 역시 “천연물신약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노코멘트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제약사들은 천연물신약 논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나타내 보이길 꺼려했다.
그렇다면 골 깊은 사회적 갈등에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시민단체들의 입장은 어떨까. 그들 또한 ‘아직은 잘 모르겠소’로 일관한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천연물신약 논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인지하고 못하고 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의견을 제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도 “천연물신약에 대해 왜 논란이 일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천연물신약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
그렇다면 이같은 갈등을 종식시킬 책임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어떤 입장일까. 그곳 또한 ‘결정된 바 없다’라는 의례적 답변 뿐이다. 의사협회가 천연물신약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는데 언제, 어떻게 답변할 것이냐는 질문과 관련,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현 단계에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한약이 생뚱맞게 생약으로 둔갑되고, 한약제제가 천연물신약으로 포장되는데 따른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식약청의 입장은 어떨까. 그곳 역시 ‘검토하겠다’는 뻔한 대답 뿐이다.
생약제제과 관계자는 “제 개인적으로 천연물신약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순 없다. 다만, 한의협에서 천연물신약과 관련한 공문을 접수시켰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앞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답답하리만치 시원한 답변과는 거리가 멀었던 천연물신약. 그 천연물신약의 현재가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미래는 아직도 여전히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