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포천시 영북면 대화산리 ‘비둘기낭’
해마다 추석이면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리워 하게 된다. 할머니가 살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살았던 고향이 이제는 옛날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굽은 길은 쭉쭉 펴졌고, 물장구치고 놀았던 모래강도 자취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유독 추석이나 설날, 명절 때 찾는 고향은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또다시 추억 속으로 사라져야 할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포천시 영북면 대화산리 비둘기낭이다. 한때 마을 주민들의 여름 휴식처이던 이곳도 2012년이면 물에 잠기게 된다. 한탄강 댐이 건설돼 물을 채우면 수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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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낭은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용암이 굳는 과정에서 생긴 동굴에서 관광객이 폭포를 내려다보고 있다. 정지윤기자 | 비둘기낭 가는 길은 이정표도 없고 안내판도 없었다. 철원에 사는 김용빈씨가 길잡이를 했다.
“비둘기낭이 있는 마을 자체가 숨어 있는 곳이에요. 들고 나는 길이 딱 하나밖에 없죠. 말만 들어서는 눈 밝은 사람도 못찾습니다.”
고갯길을 넘어 찾아간 마을 끝자락엔 논밖에 보이지 않았다. 벼가 익어가는 들판 사이 농로를 따라가보니 철조망이 쳐 있었다. 철조망은 사람들의 발길에 눌렸는지 찌그러졌고, 입구의 문짝도 떨어져 나갔다. 그 너머 숲길로 1분쯤 내려가니 비둘기낭이 나타났다. 폭포는 시원스러웠다. 폭포가 내리꽂는 소의 물빛은 마치 열대 산호바다와 비슷한 옥빛이다.
“비둘기 둥지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비둘기가 실제로 알을 낳는다는 말도 있어요.”
협곡은 폭포 아래로 이어졌다. 폭포 위로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또다른 폭포가 있다고 한다. 빽빽한 활엽수들이 하늘을 가린 탓에 계곡은 원시림 같았다. 폭포 옆 동굴 안에서도 물이 쏟아졌고 바위 틈새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습기가 많아서인지 이끼가 낀 돌도 제법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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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소 계곡에서 낚시를 즐기는 촌로. | “폭포 아래서 아이들은 튜브를 띄워놓고 놀았어요. 천혜의 놀이터였죠. 계곡에만 들어오면 더위가 싹 가셨거든요.” 뒤늦게 합류한 이우형 강문화연구소장은 “한동안은 군부대 휴양소가 있던 자리”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길은 외통수여서 군인들이 길을 막고 휴양소를 만들었단다. 한탄강 유역을 따라 실제로 군부대와 초소가 많다. 비둘기낭에도 과거 진지로 보이는 흙구덩이가 있었다. 이후에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휴양지로 비둘기낭을 관리했다.
그러다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한동안 출입이 금지됐다. 지금은 주민들의 식수를 대부분 팔당에서 가져와 취수장 기능이 약화됐다. 포천시는 현재 상수도보호구역 해제 요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드나든 흔적이 많았다. 여름철에 행락객들이 왔다 간 흔적도 남아 있다. 김씨는 여기저기 버려진 고기구이용 석쇠 불판을 주워오며 “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다 이런 것을 버리고 간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비둘기낭은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하다. 한탄강 자체가 30만년 전 화산폭발과 침식과정에 의해 생겨났다. 북한의 평강에 있는 오리산에서 용암이 흘러나왔다. 모두 11차례에 걸친 폭발로 인해 용암과 화산토가 철원과 연천평야를 덮어버렸다. 눈비가 내리면서 굳은 용암지대가 부서지면서 강줄기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한탄강 유역에선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비둘기낭에서도 주상절리의 흔적이 뚜렷했다. 동굴처럼 보이는 천장을 눈여겨보면 각진 돌이 마치 타일처럼 붙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포천시 관인면 중리 가마소 계곡도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수몰지역이다. 낚싯대를 드리운 채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이 평화롭다.
“장마 후에는 물고기가 폭포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어렸을 땐 뜰채를 들고 서 있으면 고기를 한바구니씩 잡을 수 있었어요. 한탄강 물고기는 그래서 힘이 좋고 살이 단단해요. 추워지면 물고기가 다시 하류로 내려가죠.”
이 소장은 가마소 역시 마을사람들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협곡이 나타나는데 거기도 장관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가마소에서 수영을 배웠고, 수심 6m의 강바닥을 뒤지며 놀았다고 했다. 가마소 옆 현무암은 햇살에 데워져 따뜻했다. 이 소장은 “수영 후 현무암에 누우면 젖은 몸이 금세 말랐다”며 “실제로 현무암은 원적외선이 가장 많이 나온다”고 했다. 물줄기가 야위는 겨울철에는 강 트레킹 하기도 좋단다.
이 소장은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이런 지역을 댐건설로 침수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30만년 동안 만들어진 지역을 불과 몇 년 만에 없애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이우형)
“과거처럼 댐을 만드는 기술만 발전해왔지, 그동안 어떻게 물을 이용하고 강을 보호하며 함께 살아가는 철학적인 진전은 없었어요. 그런게 더 안타깝죠.”(김용빈)
댐은 강만 나누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갈라놓기 십상이다. 고향을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사람과 보상이라도 받고 떠나자는 주민이 맞서게 된다.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지냈던 주민들은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갈등을 빚는다고 한다.
한탄강은 국내에서 가장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다. ‘S’자 정도가 아니라 갈 지(之)자로 거칠게 꺾이면서 흘렀다. 그래서 여울도 많았다. 여울 소리는 마치 강이 살아서 움직이는 아우성처럼 들린다. 하지만 댐이 생기면 강들이 우는 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고, 협곡에도 발을 디딜 수 없게 된다. 또 하나 아름다운 계곡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길잡이] 자유로를 타고 문산을 거쳐 37번국도를 타고 전곡까지 간다. 전곡에서 산정호수 방면으로 달리다 진군교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 다시 87번도로를 타고 가다 대회산리 삼거리에서 ‘소회산’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면 된다. 산길을 넘어가면 목장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잔디밭에 축구 골대가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 다시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계속 들어가면 폐교를 리모델링하고 있는 현장이 나타난다. 왼쪽은 문닫은 축사다.
여기서 오솔길을 지나면 다시 논이 나타나고 첫번째 논둑길로 끝까지 달리면 된다. 초보자는 헷갈리기 쉽다. 주민들은 비둘기낭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가마소 계곡은 37번국도를 타고 달리다 철원방면에서 87번국도를 갈아탄다. 관인면 중리 영도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지장산 산울림 펜션이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포천 | 최병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