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323
■ 1부 황하의 영웅 (323)
제 5권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제 39장 성복(城濮) 전투 (5)
성득신(成得臣)으로부터 결전장이 날아왔다.내용이 그 어느때 보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오만하기까지 했다.청컨대 군후의 병사들과 한바탕 놀이를 하려고 하오.
군후께서는 망루 높은 곳에 올라 싸움 구경을 즐기십시오.
외신 득신(得臣)도 함께 즐기겠습니다.진문공(晉文公)의 기세를 꺾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호언(狐偃)이 재빨리 말했다."전쟁이란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는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일인데,
놀이라고 가벼이 여기니 참으로 버릇없고 교만하구나.
그가 어찌 이번 싸움에 이길 수 있으랴.“진문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난지(欒枝)에게 답서를 쓰게 했다.
나는 아직도 지난날 초성왕(楚成王)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소.
내가 3사(三舍)를 물러나 이곳 성복까지 후퇴한 것도 그에 대한 은혜 갚음인 것을 그대는 아시오?
그런데도 굳이 쫓아와 싸우겠다고 하니, 나 또한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이라.
내일 해가 뜨면 서로 만납시다.만나자는 말은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뜻.
이로써 진(晉)과 초(楚)의 성복전투는 불가피해졌다.폭풍전야.양군 진영은 조용했다.
하지만 황하의 물결이 잔잔하다고 하여 어찌 그 깊은 곳까지 잔잔하랴.
진군 원수 선진(先軫)은 모든 장수를 불러놓고 일일이 임무를 지시하고 있었다.
- 상군 대장 호모와 좌장 호언은 진(秦)나라 장수 건병(蹇丙)과 함께 초나라 좌군을 맡으시오.
- 하군 대장 난지(欒枝)와 좌장 서신(胥臣)은 제나라 장수 최요(崔夭)와 함께 초나라 우군을 맡으시오.
- 나는 극진(郤溱), 기만과 함께 중군을 거느리고 직접 성득신과 겨루겠소이다.
순림보(旬林父)와 선멸에게는 각기 5천 군사를 내주어 형편에 따라 접응하도록 했다.
제나라 장수 국귀보(國歸父)와 진나라 공자 은(憖)에게는 샛길로 빠져나가 초군 배후에 숨어 있다가
초군이 패하는 때를 기다려 급습하게 하였다.
이때 삭탈 관직된 위주(魏犨)는 가슴의 상처가 다 나은 뒤였다.
그는 선진(先軫)이 자신에게 아무런 임무를 맡기지 않자 초조한 듯 앞으로 나섰다.
"원수는 어찌하여 나를 부리지 않는 것입니까?“선진(先軫)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아무 염려 마시오. 장군은 다른 일을 맡아주어야겠소.
이곳 성복 땅에서 남쪽으로 나가면 공상(空桑)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초나라 연곡(連穀)지방과 접경이지요. 장군은 일지군마를 거느리고 그 곳에 매복해 있다가
초나라 패잔병들이 돌아가는 것을 막고 초군 장수들을 모조리 사로잡아오시오."
위주(魏犨)는 자신에게 임무가 떨어지자 기쁜 마음으로 공상(空桑)을 향해 떠나갔다.
마지막으로 선진은 주지교(舟之僑)를 불러 임무를 부여했다.
"그대는 황하 나루터로 가서 배를 모아놓고 기다리시오.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오.“
모든 배치가 끝났을 땐 삼경이 가까운 깊은 밤이었다.
선진(先軫)은 군막을 나와 홀로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하늘에서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그 뒤를 이어 또 하나의 유성이 흘렀다.
유성은 계속 떨어졌다. 모두 세 개였다."아!"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유성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다.
유성이 떨어진 곳은 초군(楚軍)이 진을 치고 있는 군영 한가운데였기 때문이었다.
"사흘 안에 초군을 물리칠 수 있겠구나.“
선진(先軫)은 군막으로 돌아왔으나 아무에게도 유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다.동쪽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던 진문공(晉文公)의 입에서 짧고 강한 명령이 떨어졌다.
"돌격!“거의 동시에 초군도 움직였다.성득신(成得臣)이 직접 지휘하는 초군의 중군은 막강하다.
그 중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세의 흐름을 보아 결정적인 순간에 벼락 같은 공격을
감행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진군을 향해 돌격하는 것은 좌군과 우군뿐이다.
진군(晉軍) 원수 선진(先軫)은 나름대로 적의 전력을 분석해놓았다.
그는 초군의 취약점은 우군이라고 판단했다. 우군은 진(陳), 채(蔡)나라 군사들이 주력을 이루고 있다.
그 두 나라는 예전부터 겁이 많았다.초의 우군을 담당한 진군 장수는 하군 대장 난지(欒枝).
선진(先軫)은 재빨리 북을 쳐 난지에게 신호를 보냈다.둥둥둥둥둥..........!
난지(欒枝)는 이미 전날에 선진으로부터 계책을 받았다. 먼저 진(秦)나라에서 파견 온 건병을 내보냈다.
진(陳)나라 장수 원선(轅選)과 채나라 공자 인(印)이 달려나와 건병을 가로 막았다.
싸움은 건병(蹇丙)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건병과 그 군사들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원선(轅選)과 공자 인(印)은 신명이 나서 건병의 뒤를 추격했다.
한순간 진군(晉軍)의 영문 위에 깃발이 높이 치켜세워졌다. 동시에 포성이 일었다.
그것을 신호로 양 옆 언덕 뒤편에서 진(晉)나라 하군 좌장 서신(胥臣)이 병차 부대를 이끌고
쏜살같이 달려나왔다. 그런데 병차를 모는 말들의 모양새가 이상했다.
한결같이 호피(虎皮)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었다.
"헉!"원선(轅選)과 공자 인(印)은 한순간 그것이 진짜 호랑이인 것으로 착각했다.
병사들도 말들도 모두 기겁하였다. 자신들도 모르게 방향을 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뒤어어 달려오던 초나라 우군 대장 투발(鬪勃)의 후속부대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서로 비켜날 틈이 없었다. 같은 초군 사이에 일대 혼란이 일었다.
하군 좌장 서신(胥臣)은 그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전군을 몰아 초군을 향해 덮쳤다.
마침내 초군은 그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하군대장 난지(欒枝)는 군졸 수십 명을 진(陳), 채(蔡)나라 병사로 가장시켜
초나라 원수 성득신에게 보냈다. 가장병(假裝兵)들은 중군 영채 앞까지 달려가 외쳤다.
"우리 우군이 크게 이겼습니다.
속히 군대를 보내어 적을 섬멸하라는 투발(鬪勃) 장군의 전갈을 받아왔습니다."
성득신(成得臣)은 망루 위로 올라가 전세를 살폈다.과연 전장터 멀리로 누런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그 사이로 한떼의 군사들이 북쪽을 향해 달아나고 있었다.
"과연 진(晉)나라 군대는 달아나기에 여념이 없구나."성득신(成得臣)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좌군 대장 투의신에게 신호를 내어 속히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다.
우군 대장 투발(鬪勃)의 승리 소식을 들은 투의신은 공을 놓칠세라 진나라 좌군을 향해 돌진했다.
달리면서 바라보니 저쪽 들판 한켠에 진(晉)나라 원수기(元帥旗)가 높이 내걸린 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진나라 원수 선진(先軫)이 저 곳에 있구나.
내 선진을 사로잡아 일등 공로를 차지하리라!“
투의신은 방향을 틀어 원수기가 펄럭이고 있는 곳으로 덮쳐들었다.
초군이 원수기 가까이 접근했을 때였다."투의신은 멈추어라. 구범 호언(狐偃)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느닷없이 진나라 좌군 좌장 호언(狐偃)이 달려나와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늙은이는 비켜라!“투의신은 코웃음을 치며 호언을 공격했다.과연 초군은 강했다.
호언(狐偃)과 그 병사들이 원수기를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항했으나
미친 말처럼 덤벼드는 투의신의 기세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언(狐偃)은 즉시 병차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동시에 원수기도 호언을 따라 후퇴했다.
이를 가만히 서서 구경하고 있을 투의신이 아니었다."추격하라!“
투의신과 초군 병사들은 기를 쓰고 원수기를 쫓아갔다. 그렇게 얼마쯤 뒤쫓았을 때였다.
별안간 뒤편에서 북소리가 크게 진동했다.둥둥둥둥..........!
동시에 오른편 언덕 너머에서 한 무리의 진군(晉軍)이 나타나 원수기를 쫓은 초군의 측면을 급습했다.
투의신이 놀라바라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앞에서 쫓기는 줄 알았던 진나라 원수 선진(先軫)이
좌장 극진과 함께 맹렬히 초군의 허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속았구나!“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초군의 행렬은 선진(先軫)의 기습으로 인해 눈 깜짝할 사이 두 동강으로 끊어진 것이었다.
앞서 쫓기어 달아나던 호언(狐偃)도 어느틈에 병차를 돌려 선진과 합세하여 토막난 초군을
두들겨대고 있었다.지금까지 진군을 쫓던 투의신은 오히려 진군(晉軍)에 의해 포위당하고 말았다.
이제는 목숨을 구해 달아나는 것이 급선무였다.그는 죽을힘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겨우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齊)나라 장수 최요(崔夭)가 앞을 막으면서 쳐들어왔다.
투의신은 병차고 말이고 다 버리고 일반 병사들 틈에 섞여 산으로 기어올라 겨우 목숨을 구했다.
초(楚)나라 우군과 좌군은 전멸되다시피 대파(大敗)했다.
32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