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사리 마을 축제
황 영 순
우리나라는 축제가 참 많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한 계절도 축제가 없을 때가 없다. 계절마다 피는 꽃을 테마로 하는 꽃 축제, 지역마다 특산물을 내세운 특산물 축제,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축제, 그 뿐만 아니라 요즘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축제를 만들기도 한다. 지역에 특산물이 없거나 내세울 역사이야기가 없을 경우에 만든 축제들도 많다. 함평의 나비축제나 불빛축제, 국화축제 같은 축제들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축제가 열리는 곳을 방문하는 것이 무료한 일상에 작은 설렘과 활력을 충전해 주기도 하여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가 보려고 한다. 지난주에는 가까운 곳에서 구절초 축제가 있다고 하여 주말에 잠시 다녀왔다. 괴산 덕사리 주민들이 여는 마을 축제라고 하여 큰 기대 없이 가볍게 다녀올 참이었다. 이런 곳에도 마을이 있을까 싶은 산골길을 지나니 마을이 나왔고, 도착하니 큰 축제장의 시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소박한 주차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입장료 6,000원을 받았지만 그 중 2,000원은 특산물 구입이나 음식, 음료로 교환이 된다고 하였다. 마을로 들어서니 마을 곳곳에 구절초, 코스모스를 비롯한 많은 가을꽃들이 골목을 따라 피어 있었고, 집 마당에도 꽃들을 가득 심어 누구나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주민 한 분이 괜찮다고 마음껏 들어가서 보시라고 권해서 부담 없이 들어가 보았다. 골목, 마당, 뒤뜰 할 것 없이 그야말로 꽃밭이었다. 골목을 따라 심은 구절초, 코스모스, 장독대를 둘러싸고 핀 맨드라미, 백일홍,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도랑을 따라 심은 연꽃과 여러 가지 꽃들이 가을에 피는 꽃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앞동산에 꽤 넓은 잔디로 조성된 곳이 있어 올라가 보니 누군가의 산소로 그 곳 둘레도 온통 꽃이 만발해 있었는데 산소가 정답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앞동산을 돌아 마을 뒤편에 좀 높아 보이는 산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넓은 코스모스 정원, 목화밭이 있었고, 더 올라가니 구절초 정원이 만들어져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마을도 크지 않은데 누가 이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마을이 아기자기하면서 예뻐 마음이 따뜻해졌다. 궁금한 마음에 축제를 진행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옛날부터 구절초가 많기로 유명했던 마을에 농업법인(이랑)이 20여 년 전부터 13만 평 정도의 땅에 주민들과 함께 구절초와 각종 꽃들로 정원을 조성하여 금년에 두 번째 축제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구절초로 구절초청, 고추장양념장 만들기 등 체험행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렇게 예쁜 경관을 가진 마을이 되었다고 하니 이 축제가 너무 가치 있어 보였고,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시간 도시에서 살았지만 태어난 곳이 농촌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농촌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허투루 보이지 않았고, 관심이 갔다. 또한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 분들이 거의 고령이기 때문에 그 세대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게 되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수입농산물에 의존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지며 우리의 농업은 쇠락의 길을 면치 못할 것이다.
농촌이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만이 아니라 농작물을 이용해 시대에 맞는 식품 개발과 관광산업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살아볼 만한 곳이 될 것도 같다. 1차 산업인 농사만 하던 농촌이 농업, 제조, 관광업까지 6차 산업을 하는 복합산업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로 이주해 살면서도 각박한 도시보다 농촌으로 돌아가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았다. 농촌에서도 도시에서 하는 노력만큼 열심히 한다면 도시 못지않은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도시에서만 살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치열한 경쟁과 직장으로의 출퇴근을 반복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삶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한다. 농업에 종사해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당연히 있지만, 농촌에서의 삶이 도시의 삶보다는 사람이 갖고 있는 본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고, 몸은 힘들어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의 바램은 부모가 농촌에 발을 한 발 들여 놓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은 도시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그러다가 피로를 느끼게 될 때 농촌에서의 삶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막연하게 생각만 갖고 있었던 귀촌이 마을축제를 경험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시기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몸은 좀 고달플 수도 있겠지만 내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를 가능하면 내 손으로 키우며 살 수 있는 농촌에서의 삶을 살아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