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를 사이에 두고
박서우
간밤 유리창에는 서릿발이 꽃을 피웠다
밖을 뿌옇게 흐려놓으며 그러모은 꽃잎들,
입김을 불자 물방울이 서렸다가
다시 두꺼워졌다
막 피어난 꽃의 이마를 부비면 는개가 자욱했다
한 사람을 자우룩이 감싼 기운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었으나
한낮이 되면 얼음꽃은 힘없이 녹아 흩어졌고
그때 내 안의 꽃송이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자
남은 건 한 줌 재뿐이었다는 듯
바닥에서 먼지가 일었다
한 줌 재로 남기 위해 한 시절을 불태운 것인지
한 시절을 흐리기 위해 그 많은 눈물을 흘린 것인지
꽃이 남긴 눈물이 유리창에 엉겨 있었다
세상은 온통
안과 밖에서 차이를 가져오는 중이었으므로
한때 너의 온도에서 사라진 것이 꽃인지 얼음인지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창문에 대고
입김을 불어
오늘의 소각
사랑한다는 것을 잠잔다고 말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
이건 불에 관한 이야기야
잠과 사랑이 한동안의 일이듯
불도 언젠가는 그만두려 한다는 것이지
내게 꿈은 굴뚝 청소와 같지
쌓인 피곤과 그을린 감정을 제거해
내일이 잘 전달되도록
어떤 심리학자는 불을 재의 족속이라고 하지
타오르던 불이 꺼지면
정갈하게 정돈된 잿더미에 불의 흔적이 남아있을 테니까
늦은 저녁 침대에 눕기 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오늘의 소각을 미루고자 해
하지만 꿈은 불면으로 진화될 순 없지
이제 굴뚝 청소를 나갈 시간이야
간밤에 어떤 불이 순식간에 타올랐는지
해가 중천인데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어
그때 창밖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어
마치 망울이 봄의 화재라도 되는 양
삐뚤어진 나뭇가지의 불길을 바로잡기 위해 분주했지
새를 버리고 불을 꿈꾸는 봄이 위험한 건
불의 무의식에 사건이 숨어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지
사나운 불의 습격은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야
아지랑이를 몰고 와 꽃불로 활활 타오르니까
잠잤다고 해서 사랑 중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
불은 몸 안으로 휜다는 것
치명적인 불씨가 방향을 갖기 시작한 거니까
내 그을린 꿈속에서
굴뚝 청소를 하면서 알게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