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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수원교구 성루카 호스피스
(정기간행물 '동행' 10월호에서 발췌)
"존중과 배려"
† 찬미예수님!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후원회 회원 여러분들과 가정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호스피스 현장에서는 의료진과 사목자, 사회복지사, 상담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환자의 곁을 지키며, 환자가 세상과 이별하는 그 시간까지 동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고 다양한 이들이 환자와 동행하고 있지만 목표는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환자가 좀 더 편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여명을 살 수 있도록 도와 드릴까? … 이 일괄된 물음과 숙고는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인 "존중과 배려'이라는 말로 귀결됩니다. "존중과 배려"는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선행되어야 참된 사랑의 실천이 되고, 상대방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모두가 의미 있고 행복한 결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호스피스 현장에서 많은 실수를 하게 됩니다. 환자의 필요와는 무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환자에게 쏟아 붓는 것입니다. 마치 나는 "갑"당신은 "을"이라는 또는 나는 "주는 사람" 당신은 "받는 사람"이라는 상하구조 속에서, 나만 기쁘고 행복하고 상대방은 불편하고 인격적인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가까운 지인이 교통사고로 양쪽 골반 뼈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간일이 있었습니다. 병실에 들어서니 부러진 뼈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침대에 웅크리고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잠도 웅크리고 자고 휴식도 웅크린 채 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웅크리고 생활을 해야 해서,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겠네"하며 위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일 힘든 것은 '대소변'을 간호사가 받아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0대 중반의 그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이, "자존감"이 무너져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자존감"이 무너지는 마음의 상처는, 뼈가 부러져 아픈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가끔 병실에서 환자가 기력을 다해 화장실을 가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를 부축해서 화장실로 안내해드립니다. 환자에게도 자원봉사자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환자의 "자존감"을 지켜주는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밖에도 때로는 환자가 엉뚱한 것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자원봉사자입장에서는 귀찮고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료적 윤리적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요구를 잘 들어주고 도와드립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환자의 자존감을 지켜 주고, 짧은 여명을 보내는데 기쁨과 행복을 길어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억보다 그 요구는 환자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마지막 부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스피스 현장에서는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제된 사랑의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까닭입니다. "존중과 배려"는 호스피스 현장을 넘어서,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6,31)
2014년 10월 성루카 호스피스 병원 원장 윤동출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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