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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썸산] 원나라 마지막 황제가 1년 넘게 눈물로 머문 섬
월간산 기사 입력일 : 2022.10.14.
글 : 신준범
수만 년 풍화의 작품 같은 서해안 지질공원에서 1박2일
원나라 마지막 황제의 눈물이 깃든 섬이다. 원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었다. 동서양을 공포에 떨게 했던 칭기즈 칸이 세운 광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이 작은 섬에서 1년 넘도록 살았다. 전설이 아닌 <고려사>, <동국여지승람>과 중국 문헌에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순제順帝의 유년 시절이 깃든 섬, 대청도로 간다.
아버지 명종은 즉위 8개월 만에 독살 당했다. 어린아이였던 장남 순제는 대청도로 쫓겨났고 작은아버지인 문종이 황제에 올랐다. 문종은 평생 친형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문종 역시 실권자였던 중서우승상 엘테무르의 꼭두각시였다. 문종이 의문의 병으로 죽고, 엘테무르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문종은 유언으로 자신의 아들이 아닌, 형의 아들 순제를 황제로 추대하라고 했다.
혼란스런 시국에 아들이 황제가 되어도 목숨을 오래 보전하긴 어렵다고 본 것. 엘테무르는 장남인 순제보다 어린 둘째가 조종하기 더 쉽다고 판단해 영종寧宗을 황제로 앉혔다. 6세에 불과했던 황제는 즉위 2개월 만에 죽고, 마지막 원나라 황제가 된 이가 순제다. 그의 나이 14세였다.
심각한 뇌졸중 등산으로 이겨내다!
배에서 내리자 산이 다가와 있었다. 푸른 능선이 물결치는 것이, 바다에 솟은 산 자체였다. 망망대해를 여러 날 울렁거리며 선진포에 닿았을, 태어나서 가장 먼 항해를 했을 12세 태자의 눈에 이국 땅 대청도는 얼마나 낯설었을까.
인사를 건네듯 빗방울이 쏟아졌다.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군인들이 사라지자 선착장은 금세 쓸쓸해졌다. 비를 맞으며 산줄기의 리듬을 눈으로 좇는데, 비상 깜빡이를 켠 승용차가 선다. 대청도 관광의 산 증인이자 대청도 최초의 여행사인 엘림여행사 장윤주 사장이다.
인천에서 뱃길로 200km 정도 떨어진 먼 섬이라, 편의상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이 훨씬 가까운 외딴 섬에 온 게 실감난다. 엘림펜션에 짐을 풀고, 산행 채비를 한다. 경남 김해에서 온 황희진(@HwangZin2)씨와 부산에서 온 김보민(@glapicc)씨가 함께다. 등산을 즐기는 건강 미인으로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황희진씨는 인간승리의 주역으로 SNS에서 유명하다. 4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큰 위기를 맞았으나, 극복하고 재활에 성공했다. 2개월 만에 의식을 찾았을 정도로 생사를 오가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의식을 찾은 뒤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3개월이 걸렸고, 자연스럽게 걷는 데 2년이 걸렸다. 꾸준한 병원 치료와 숱하게 눈물 섞인 재활의 터널을 지나서였다. 담당 의사는 “평생 휠체어에서 못 일어날 줄 알았다”며 지금 모습을 놀라워한다.
재활 차원에서 걷기길부터 시작해 산행에 입문한 그는 지금은 최소 주2회는 전국의 명산을 누비는 등산 마니아가 되었다. 그녀는 “불에 살이 타는 것 같은 원인 불명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파른 오르막에선 시상통을 잊을 수 있었고, 시원한 경치에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한다.
우중산행은 원치 않았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일 나가는 배 시간을 맞추려면 대청도 최고봉 삼각산(343m)을 오늘 올라야 한다. 여행사에서 렌트한 차량을 몰아 매바위전망대로 간다. 순제의 호의일까. 차에서 내리자 비가 그친다.
원나라 황제가 머물렀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하는 삼각산은 능선이 복잡하게 뻗어 있어, 단번에 산세가 잡히지 않는다. ‘삼각산’은 우리말 ‘셔블’, ‘세부리’를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름으로 으뜸도시의 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고개 전망대에 닿자 멋있는 매 조각 너머로 터지는 산과 바다. 굽이굽이 뻗은 지능선과 손바닥만큼 드러난 모래울해변이 700년 전처럼 무심히 차분하다.
수풀이 높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기우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등산로가 성실히 산행을 이끈다. 매바위전망대의 고도가 144m, 해발 200m만 높이면 된다. 얼마 안 가 경치 좋은 미니 전망데크를 지나 능선이 물결친다.
숲 향기 가득하나 과하지 않고, 수풀 무성하나 사람 한 명 걸을 공간은 열어 놓았다. 숨 가쁠 쯤이면 무신경한 듯 배려하는 섬 사내처럼 툭툭 터지는 경치,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짧은 산행이라 생각해서인지 1.8km가 멀다. 2km는 온 것 같은데 정상은 아직이다.
철탑이 있는 주능선에 닿자 몰아세우던 성질 급한 오르막도 이별이다. 산에서 마주치는 곳곳의 안내판에도 순제의 사연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터에서 고국을 그리워했으며, 억울한 모략으로 대청도에 유배되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순제는 부친 명종이 친부가 아니라는 설과, 모친이 계모라 아들을 모함해 대청도로 보냈다는 설이 있다. 나라를 망하게 한 방탕한 황제라 평가 받는 순제의 유년은 애정 결핍, 죽음의 공포, 불안이 따라다녔다.
정상은 삼세판이다. ‘정상인가?’ 착각했던 잔잔한 봉우리를 지나자, 너른 전망데크가 기다린다. 정상다운 너른 경치가 드러난다. 즉흥적인 리듬으로 불쑥 솟은 것 같은 지능선 줄기 너머 희미한 세상. 바다와 하늘이 섞여 구분이 모호하다. 조각조각 드러난 파랑이 맑은 허공의 세력을 넓힌다. “저기 빛 좀 봐요!” 무대 조명처럼 구름 사이로 햇살이 직선으로 뻗어 내린다. 눈부신 단 한 곳의 물결, 저 바다에 가면 엑스트라로 살아온 자도 주인공으로 빛날 것 같다.
저 노을은 마지막 황제의 행렬일까?
일행은 능선을 따라 진행하고, 홀로 되돌아가 차량을 회수해 광난두정자로 갔다. 정자에 서니 수평선 끝에서 마지막 황제의 행렬인양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노을이 보였다. 오후 6시를 지나고 있었으나 노을을 이렇게 흘려보내긴 아까웠다. 하산한 일행을 태워 해넘이 명소인 농여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해변까지 길은 나 있으나, 찾기 어렵게 숨겨둔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더 어울렸다. 은밀한 임도 끝에서 만나는 해변엔 착한 파도와 순둥이 바람, 부드러운 모래가 모여 있었다. 모래밭이 되었다가 바다가 되어 잠기길 반복하는 풀등이, 신기루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해변 끝에선 바위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국가지질공원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섬세한 물결일 줄은 몰랐다. 1만 년 세월이 빚은 10m 조각은 노랑, 빨강, 검정, 갈색, 회색을 띤 채, 1만 년마다 나이테를 바꾼 듯 오묘한 모양으로 치솟아 있었다. ‘나이테바위’란 이름의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미켈란젤로가 곁에 있다면 신의 솜씨에 감탄해 몇 시간이고 우두커니 바위만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황제의 행렬은 농여해변을 지나고 있었다. 서울에서 몇 백km 떨어져서일까. 북반구 어딘가 낯선 공항처럼 시야가 맑다. 노을은 원래 이런 것이었나. 설명할 수 없는 빛깔로 하늘이 꿈틀댄다. 춤인 듯 선율인 듯 눈을 뗄 수 없다. 명작이란 이런 것. 슬픈 눈빛의 사내아이가 황금빛 두루마기를 걸치고선 멀어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서도 노을이 잊히지 않았다. 몇 번씩 결항되어 일정이 무산되고, 새벽 일찍 일어나 3시간 넘게 배를 타고 온 고행도 행운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은 온통 파랑이다. 늘 떠나는 날, 날씨가 좋다는 게 우리의 징크스다. 다시 광난두정자를 찾았다.
대청도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서풍받이 트레킹에 나선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서풍을 받아 침식되어 생긴, 천혜의 절벽 해안선을 보러가는 길이다. 어제와 달리 산길이 부산하다. 등산화, 운동화, 심지어 구두 신은 단체 관광객이 줄지어 걷는다.
의외로 오르내림이 심해 구두 신은 신사 분은 고생깨나 할 것 같다. 산행에 가까운 코스이지만, 경치가 쉽게 툭툭 터지는 통에 걸음이 가볍다. ‘해병 할머니 무덤’ 안내판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황해도가 고향이었던 할머니는 14세에 대청도로 시집와 낮에는 엿장사와 고물상을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고 살았다. 지금도 섬 인구의 절반 이상은 군인들인데, 할머니는 보이는 해병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먹이고 군복을 수선해 주었다. 또 모든 부대원에게 손수 속옷을 만들어 입혔다. 군인들은 할머니 집을 고쳐주고 ‘해병 할머니집’이라는 간판을 달아주었다. 할머니는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 손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서풍받이 부근에 묻히게 되었다.
낙타 등 같은 해안선을 넘고 또 넘자, 탁 트인 곳에 걸맞은 전망데크가 반갑다. 바닷바람이 땀을 말리는 데 10초, 서풍받이 절벽이 마음을 사로잡는 데 3초 걸린다. 이제야 드러나는 흰 절벽,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싶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처럼 부드럽고 빠른 선율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며 해안선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여기서 온 길을 되돌아간다. 나머지 순환 코스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길이 묵었고, 마주치는 이도 없어 고요가 촉감 좋은 가운처럼 들러붙어 동행했다. 소설 ‘시인의 별’ 주인공 대청도 역참 관리 안현이 “시세時世가 나를 용납하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며 숲 속에서 나올 것만 같은, 느긋한 시간이었다. 배 시간이 다가오자, 대부분 여행객이 포구로 이동해 섬 전체가 빈 듯 차분해졌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순제는 대청도의 집에 불상을 만들어 놓고, 매일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빌었다고 한다. 대청도를 떠나던 날도, 중국 광서로 지역만 옮기는 유배길이었다. 이후 내륙에서 살다 죽었음을 감안하면, 대청도는 그의 마지막 바다였다.
대청도 가이드
섬 최고봉인 삼각산 정상이 BAC 인증지점이다. 정상 데크 옆 2.5m 높이의 대형 표지석이 인증 사진 촬영 장소다. 산행은 해발 144m 고개인 매바위전망대에서 시작해 정상을 거쳐 광난두정자로 내려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바위전망대에서 정상까지 1.8km이며 1시간 정도 걸린다. 광난두정자까지 3.5km이며 2시간 정도 걸린다. 정상에 닿은 후 온 길을 조금 되돌아가면 광난두정자 방면 갈림길이 있다. 도로가 지나는 광난두정자에서 서풍받이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서풍받이 트레킹은 원점회귀 코스이며, 해안선 끄트머리의 마당바위까지 다녀올 경우 2.8km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핵심 경관만 본다면 광난두정자에서 900m 거리의 조각바위전망대에서 하늘전망대와 마당바위는 생략하고, 곧장 아랫길인 갈대원 방면을 거쳐 돌아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삼각산 산행과 서풍받이를 한 번에 갈 경우 6.3km이며 4시간 정도 걸린다. 삼각산은 고도 200m를 올렸다가 고도 270m를 내려야 한다. 만만히 보면 어려울 수도 있다.
하루 8회 운행하는 버스가 있으나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다.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면 배편·숙박·식사·섬 내 차편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문의 엘림여행사(032-836-8367 ellimtour.co.kr)
BAC 인증지점
삼각산 정상 표지석 N37 48.925, E124 41.973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인천 썸산] 12년 전부터 홍어의 고향은 인천 대청도
월간산 기사 입력일 : 2022.10.14.
글 : 신준범
[대청도 플러스 가이드] 아침 배편, 맛집, 1박2일 일정 가이드
오전 7시 50분 출발인가? 8시 30분 출발인가? 사소한 선택에서 대청도 여행이 시작된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오전 7시 50분 출항하는 에이치해운의 하모니플라워호는 배 길이만 70m에 이르는 2,100톤급 쾌속선으로 여객 540명과 차량을 실을 수 있다. 3시간 20분 걸리며 편도요금 6만6,300원. 8시 30분 출항하는 고려고속훼리의 코리아프라이드는 556명이 탑승할 수 있는 1,680톤급이다. 4시간 정도 걸리며 편도요금 6만3,200원.
오전 7시 50분 배를 타면 대청도에 11시 10분쯤 도착하게 되므로, 8시 30분 출발 배(12시30분 도착)에 비해 1시간 20분 정도 섬을 더 둘러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박2일 일정이라면 첫째 날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곧장 삼각산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오후 1시쯤 매바위전망대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오후 5~6시쯤 서풍받이 트레킹까지 마칠 수 있다. 서풍받이에서 노을을 감상한다면 시간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선착장에서 들머리인 매바위전망대까지 4.5km 떨어져 있고, 날머리가 광난두정자임을 감안하면 여행사 혹은 숙소의 차량 지원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째 날은 출항 시간에 맞춰 일정을 짜야 한다. 오후 1시 10분이 하모니플라워호 출항 시간이므로 점심 식사를 감안하면 오전 11시 30분에는 일정을 마쳐야 한다. 농여해변과 미아동해변을 잇는 짧은 해안선 트레킹과 옥죽동 모래사막을 둘러보는 일정이 알맞다. 답동해안 산책길은 낙석으로 폐쇄되었다. 2박3일 일정이라면 소청도를 비롯 더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하다.
명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홍어다. 대청도는 서해 어업 전초기지로 일제강점기 일본 동안포경 주식회사가 있어 매년 고래를 30~40마리씩 잡았다. 2010년부터 참홍어 어획량 1위에 올라, 흑산도를 넘어서는 홍어의 고향이 되었다. 선착장의 바다식당(032-836-2476)에서는 홍어 코스 요리(1인 3만 원)를 맛 볼 수 있다. 삭히지 않은 생홍어회, 홍어튀김, 홍어무침, 홍어매운탕이 차례로 나온다.
섬중화요리(836-2121)는 중식과 한식을 조리하며 9가지 반찬과 국, 제육볶음이 나오는 백반(8,000원)이 가성비 메뉴로 꼽힌다. 돼지가든(010-9076-5982)은 해산물과 고기류를 모두 맛깔스럽게 만들어낸다. 돼지왕갈비(1만3,000원), 홍어애탕(1인분 2만 원), 갑오징어볶음(1인분 2만 원), 김치찌개(9,000원).
대청도 최초의 여행사인 엘림여행사(032-836-8367)는 펜션과 여행가이드, 관광버스 제공, 승용차 및 스타렉스 렌트, 식사, 배표 예약까지 가능하다. 합리적인 가격에 복잡한 여정을 해결할 수 있어, 일일이 검색해 예약하는 것에 비해 효율적이다.
국가지질공원 대청도·소청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 소청도에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의 대청도와 소청도는 인천 내륙에서 뱃길로 200여 km 떨어져 있으나, 북한 땅 황해도와는 불과 12km 떨어진 최전방 섬이다. 특히 10억 년 전 바다에서 퇴적되어 생긴 기암괴석과 해식절벽은 독보적인 지질학적 가치가 있어, 2019년 우리나라의 11번째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 10억~7억 년 전 신원생대 암석들의 보고로 유명하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스트로마톨라이트(조류에 의해 만들어진 화석)를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서해 한복판에 솟은 위치적인 특성으로 인해 철새들의 휴식처이자, 점박이 물범 서식처이다.
대표적인 지질명소로 농여해안의 나이테바위, 미아동해변의 연흔바위, 옥죽동 사구, 답동해안, 서풍받이 해식절벽이 있다. ‘한국의 사하라’라고 불리는 옥죽동 사구는 언덕 전체에 모래가 사막처럼 드넓게 펼쳐진다. 사구는 가로 1km 세로 500m에 달했으나 인접한 주민들이 모래로 인해 생활에 불편이 커 민원을 제기함에 따라 소나무 200여 그루의 방풍림을 조성했다.
소청도는 분바위와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살아 있는 화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백색 대리암으로 이루어진 분바위는 분칠을 한 것처럼 하얗다고 하여 유래한다. 달빛이 비추는 밤, 바다에서 바라보면 하얀 띠가 둘러싸고 있다 하여 ‘월띠’라고도 불리며,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과거 지구의 따뜻한 바다에서 번식한 생물들이 쌓여 만들어진 대리암이다.
분바위의 특정 부분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산출되는데, 원시 지구에서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공급한 박테리아의 화석이다. 주민들은 ‘굴딱지 돌’이라고 불렀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천연기념물 508호로 지정되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10억 년의 나이를 가진 국가지질공원 대청도
여행스케치 기사 승인일 : 2022.05.17.
조용식 기자
[여행스케치=대청도] 해발 343m의 삼각산을 중심으로 완만하게 펼쳐진 능선 덕분에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한 대청도. 대청도는 백령도로 가는 길목에 소청도와 함께 있다. 풀등(모래섬)과 해안사구, 그리고 노을이 아름다운 대청도는 백령도·소청도와 함께 지난 2019년 국내에서 11번째로 국가지질공원(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정받은 곳이다.
대청도 농여해변의 모래사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물결무늬가 마치 한편의 예술작품이 전시된 것처럼 느껴진다. 사방을 휘감아 놓은 듯한 모래가 일률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면, 끝없는 사막길을 펼쳐 놓은 물결무늬도 있다. 조개무덤이 펼쳐진 모랫길을 따라 해변으로 향하는 발자국도, 소금기가 말라 모래 위를 하얗게 백발로 만든 물결무늬도 이색적이다.
국내 최대의 풀등을 감상할 수 있는 농여해변
3~4명이 걸어도 옅은 발자국만 남아 있을 정도로 단단한 농여해변의 모래사장은 바다가 흐르는 방향으로 백령도가 보이고, 뒤로는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무늬와 색을 이룬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조철수 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 해설사는 “농여해변과 미아해변은 썰물 때 이어지는 해변으로 광활한 백사장과 드넓은 바다의 풍경을 보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며 “농여해변 입구의 나이테 바위(고목바위)에서 백령도 방향으로 바라보면 국내 최대의 풀등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농여해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나이테 바위는 얇은 지층이 다양한 색으로 반복되어 마치 고목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층이 강한 변형 작용을 받아서 수직으로 선 후, 풍화와 침식으로 현재의 모양이 되었다. 나이테 바위 앞으로 펼쳐진 광활한 광장은 모래톱이 쌓이는 곳으로 풀등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농여해변의 풀등이 점점 길어져 백령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대청도 농여해변과 바로 이웃한 미아해변에서는 일몰 감상을 즐기는 것이 좋다. 노을 시간이면 해안가 주변으로 날아든 철새들이 바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통해 더욱 감성적인 노을 감상을 즐길 수 있다. 노을이 떨어지고 나면 농여해변은 해안 경계근무를 위해 장병들이 배치된다. 대청도 해안가는 해가 지는 시간부터 해가 뜨는 시간까지는 ‘군사작전 지역’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농여해변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주차시설이다. 농여해변 주차장은 대형 버스 2대와 승용차 3~4대를 주차하고 나면, 더 이상 주차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협소하다. 이 때문에 조개 채취를 하는 마을 주민과 관광객 차량이 한꺼번에 올 경우에는 교통이 마비될 정도다. 마을주민들은 농여해변 주차장 주변에 군 시설이 없기 때문에 주차 공간을 넓혀 달라고 군(軍)과 군(郡)에 민원을 넣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INFO 풀등
통상 큰 하천의 하구에 모래톱이 길게 쌓이는 것을 ‘등’이라고 한다. 수면 위로 노출 기간이 길어지면 풀이나는 경우도 있어 ‘풀등’이라고 한다.
우거진 해송과 고운 백사장길, 모래울 해변
모래울 해변은 울창한 해송 길을 걸으며, 잔잔히 물결치는 바다와 해변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해송이 만들어 준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의 즐거움과 주변의 나무와 해송이 만들어낸 하트 모양을 발견하는 순간순간이 행복하게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해송 길을 내려와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모래울 해변을 걷는다. 트레킹을 위해 데크가 조성되어 있으며, 밑으로는 해안 경계 근무자들의 순찰로와 경계 근무지인 벙커도 보인다.
모래울 해변은 길이 1km. 넓이 500m의 넓은 모래사장으로 덮여 있으며, 수면 위로 얼굴 형상을 한 대갑죽도를 볼 수가 있다. 대갑죽도는 예로부터 하늘을 향해 매일 매일 어민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섬으로 알려진 곳이다. 대청도는 옥죽동 해안사구도 유명하다. 국내에 존재하는 해안사구 중 그 규모가 매우 큰 편에 속하는 해안사구로, 현재는 방품림 조성으로 규모가 줄었지만 예전에는 축구장 60개 규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대청도는 예로부터 “옥죽동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다. 모래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80년대 후반부터 해안가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자 모래로 인한 피해는 줄었지만, 아쉽게도 사구를 형성하는 사막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옥죽동 해안사구에는 사막의 교통수단 중 하나인 낙타가 조형물로 세워져 있다. 낙타는 혹의 개수에 따라 1개만 있는 단봉낙타와 2개가 있는 쌍봉낙타가 있는데, 옥죽동 해안사구에는 쌍봉낙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해안사구를 따라 걷다보면, 데크가 보이는 전망대가 보인다. 최근에 조성한 이 전망대는 ‘하늘 숲길’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데크로 만 이어진 하늘 숲길에는 두 개의 포토존이 있어 잠시 쉬면서 추억을 남기기 좋은 곳이다.
거대한 절벽을 이루는 곳, 서풍받이
대청도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서풍받이 트레킹 코스는 광난두 정자각에서 시작된다. 서풍받이는 중국에서 서해를 거쳐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주는 바위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이곳은 해안절벽이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돌출해안과 웅장한 절벽의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기도 한다.
서풍받이 트레킹은 7.3km로 광난두 정자각, 서풍받이, 마당바위, 광난두 정자각으로 회귀하는 코스이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중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들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면 위로 사람의 옆 모습 형상을 한 대갑죽도가 있으며, 해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찰나에 볼 수 있다는 사자웃음바위도 있다.
서해의 파도와 바람을 막고 있으며 깎아지른 웅장한 수직 절벽이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어 더욱 눈길이 가는 서풍받이는 해발고도 80m에 이르는 거대한 절벽으로 하얀 규암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서풍받이 전망대에서 마당바위 방향으로 올라가면 하늘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마당바위는 서풍받이 끝자락 절벽에 자리 잡은 넓은 마당처럼 펼쳐져 있는 곳. 마당바위에 올라서면 푸른 바다가 한눈에 펼쳐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재작년 여름 태풍으로 광난두 정자각 매표소와 함께 마당바위 주변의 안전시설이 모두 파손된 상태이다. 옹진군에서는 마당바위 안전시설은 올 하반기에나 완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철수 지질해설사는 “지난 태풍으로 큰 마당바위로 내려갈 수 있는 펜스가 다 날아갔다. 큰 마당바위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안전시설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곳으로 내려가는 여행자들이 종종 있는데, 안전시설이 확보 될 때까지는 마당바위로 내려가지 말고, 서풍받이에서 바로 내려가는 것을 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청도에서 10년째 엘림여행사를 운영하는 장윤주 대표는 “대청도에는 관광안내센터, 농여해변, 서풍받이 지질명소 등에 지질해설사가 상시 배치되어 있다”라며 “지질해설사와 동행하며 대청도 지질명소에 대한 설명과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며 여행한다면, 더욱 값진 여행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INFO 대청도
대청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멀리서 바라보면 울창한 것이 마치 눈썹을 그리는 검푸른 먹과 같다하여 고려인이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푸른 섬이라는 한글 음을 한자로 풀어 포을도(包乙島)라고도 하고 한자화한 명칭으로 청도(靑島)라고도 한다. 모두 푸른 섬을 뜻한다.
백령·대청 지질공원
지난 2019년 11번째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백령·대청 지질공원은 백령도 5개소, 대청도 4개소, 소청도 1개소 총 10개소의 지질 유산을 지질명소로 지정했다. 백령도는 두무진, 콩돌해안, 사곶해변, 진촌리 현무암, 용트림 바위와 남포리 습곡이며, 대청도는 농여해변과 미아해변, 옥죽동 해안사구, 서풍받이, 검은낭이며, 소청도는 스토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 월띠다.
바람이 깎고 파도가 빚은 절경
한경 기사 입력일 : 2021.11.25.
대청도=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유배지에서 걷기 좋은 여행지로 변신한 대청도
바짝 마른 모래가 이룬 해안사구
예부터 집안에 하도 모래가 많아
"모래 서말 먹어야 시집간다" 이야기도
삼각산 내려오면 보이는 서풍받이
수직으로 이뤄진 바위절벽
날개 펼친 매와 닮기도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섬을 다룬 수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김훈의 첫 문장만큼 아름다운 표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청도를 바라본 느낌은 딱 그랬습니다.
겨울 초입의 쓸쓸한 풍경 속에서도 마치 꽃이 피듯 화사한 풍경이 피어납니다. 한반도의 서쪽 끝 대청도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지만 막상 섬에 발을 디디면 황홀한 풍경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벌써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쓸쓸하다면 섬으로 향해보세요. 따스한 위로가 여러분과 함께할 겁니다.
해안사구가 이룬 한국의 ‘사하라 사막’
바다는 쉽사리 섬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청도로 향하는 배는 쉴 새 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뱃길을 따라 4시간을 가니 쪽빛처럼 파란 바다가 마중을 나왔다.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202㎞나 떨어진 외로운 섬 대청도(大靑島)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예로부터 권력에 밀려난 이들을 품어온 유배의 섬이기도 했다. 대청도는 옛 원나라의 유배지이기도 했는데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고려 출신 공녀를 황후(기황후)로 삼았던 혜종(토곤테무르)이 황태자 시절 2년가량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다고 한다.
대청도 여행의 시작점은 선진포선착장에서 3.5㎞ 떨어진 옥죽포 모래사막이다. 밀물에 밀려와 썰물 때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가 이룬 해안사구가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해 한국의 ‘사하라 사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옥죽포 해안사구는 인근 옥죽동 농여해변에서 날아온 모래가 수만 년에 걸쳐 쌓여 이뤄진 신의 걸작이다. 과거에는 모래사장의 규모가 컸으나 30여 년 전 소나무 방풍림이 조성되면서부터 모래사장 규모가 5분의 1로 줄어들었다.
화성 풍경처럼 이색적인 농여해변
대청도에는 굳이 옥죽포 모래사막이 아니어도 모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 널려 있다. 과거 대청도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나 혼기가 차면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로 동네 어른들이 놀리곤 했다고 한다. 집안에 하도 모래가 많아 빨래할 때, 밥 지을 때, 반찬 만들 때마다 모래가 섞여 들어가 알게 모르게 먹었기 때문이다.
모래와 관련된 또 다른 곳은 대청 4리에 있는 사탄동(沙灘洞)이다. 한자를 풀면 ‘모래 여울마을’이지만 악마를 뜻하는 ‘사탄’으로 들리는 게 싫어서 주민들이 옹진군에 모래여울마을로 바꿔달라고 청원했다고 한다.
대청도 해안가로 내려오면 농여해변에서 백령도까지 이어지는 모래풀등을 만날 수 있다. 모래풀등은 간조 때 바닷속에서 하루 두 번 드러나는 모래섬이다. 풀등을 품은 농여해변은 대청도의 8개 해변 중 가장 아름답고 이색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해변에 줄지어 선 기암괴석이 그중 하나다. 풍화작용으로 표면이 나무의 나이테 질감을 지닌 ‘나무테 바위’는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다. 수심이 얕아지는 썰물 때에는 미아동 해변까지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멋진 자연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밤이 되면 농여해변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뭇사람을 감성적 존재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 해가 지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면 ‘별이 쏟아지는’ 해변을 감상할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이 저녁해를 받아 붉게 물드는 장관을 넋 놓고 바라봤다. 지구가 10억 년 세월을 들여 지켜온 풍경은 마치 영화에서나 봤던 화성의 모습과 닮았다.
삼각산서 서풍받이까지 명품 트레킹 길
대청도는 걷기여행지로도 최적이다. 매바위 전망대를 출발해 삼각산 정상을 찍고 광난두로 내려와 서풍받이를 돌아 나오는 7㎞ 코스를 삼각산의 ‘삼’, 서풍받이의 ‘서’를 따서 ‘삼서 트레킹’이라고 부른다. 대청도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걷기 길이다. 매바위 전망대에 오르면 남서쪽으로 모래울 해변과 독바위 해변, 대청도의 보물 서풍받이(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수직 바위 절벽)를 조망할 수 있다. 매바위 전망대에서 삼각산 정상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삼각산 능선에서 모래울해변과 서풍받이로 이어지는 대청도 서쪽 해안의 모습을 내려다보니 영락없이 날개를 펼친 매의 형상이다. 서해의 거센 바람을 막아 준다는 서풍받이가 매의 머리라면 광난두해안이 왼쪽 날개, 모래울 뒤편 울창한 송림이 오른쪽 날개가 되는 셈이다. 서풍받이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서쪽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는 기암절벽이다. 대청도 서쪽 끝에 있다. 깎아지른 해안절벽은 대청도 제1경으로 꼽힌다.
4시간 만에 10억년 시간여행···한국의 숨겨진 '지구의 속살'
중앙일보 기사 입력일 : 2021.10.28.
손민호 기자
인천 섬 여행⑤ 대청도, 소청도
서해5도는 서해 먼바다의 다섯 개 섬을 이른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지리적 개념이라지만, 서해5도는 군사적 맥락에서 더 자주 인용된다. 남한 본토보다 북한 본토가 더 가까운 군사 요충지여서다. 멀리도 있거니와 군사적 이유로 더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섬. 육지 사람에게 서해5도는 물리적 거리보다 한참 더 먼 섬이다.
대청도와 소청도를 갔다 왔다. 형제처럼 두 섬은 지척에 있었다. 두 섬에서 북한은 북쪽에 있지 않았다. 동쪽에 있었다. 동쪽 수평선을 따라 길게 누운 땅이 죄 북한이라고 했다. 북한 땅에서 해가 뜨는 섬이라니. 대청도와 소청도가 얼마나 북쪽 깊숙이 올라가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낯선 일상
대청도와 소청도는 먼 섬이다. 멀어서 낯선데, 오랜 시간 육지와 단절돼 더 낯설게 된 섬이다. 대청도와 소청도에는 군인이 많이 산다. 두 섬에 거주하는 민간인 숫자와 군인 숫자가 얼추 비슷하다. 섬에서는 민간인과 군인이 마을 식당 옆자리에 앉아 홍합칼국수를 먹고, 대청도에 하나뿐이라는 카페에서 나란히 아이스 커피를 주문한다. 여기엔 어떠한 위화감이나 어색함도 없다.
섬에서 겪은 낯선 일상은 외려 여행의 재미를 자극했다. 대청도 농여 해변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였다. 마침 물이 빠져 풀등이 훤히 드러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이 붉게 물드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군인 두 명이 다가와 엄포를 놨다. “일몰 뒤에는 해변에서 나가셔야 합니다.” 농여 해변과 붙은 미아동 해변은 군사 보호구역이어서 해가 지면 출입할 수 없단다. 시간에 쫓겨서인지, 떨어지는 해가 더 아쉬웠다. 하여 일몰 직후 잠깐 펼쳐지는 이내의 장관을 놓치고 말았다.
섬의 소소한 풍경도 기억에 생생하다. 소청도에 마을은 단 두 곳이었다. 150명 정도 사는데, 평균 연령이 74세다. 포구에 묶인 어선 대부분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배였다. 바다가 잔잔하면 스티로폼 배에 모터를 달고 나가 미역을 줍거나 홍합을 딴다고 했다. 대청도에선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대청 중·고등학교가 잊히지 않는다. 엘림여행사 장윤주(50) 대표가 “학생 수가 50명인데 선생님은 20명”이라고 말해줬다.
대청도가 홍어의 고장이란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청도는 흑산도보다 홍어 어획량이 더 많은 섬이다. 대청도 홍어가 목포로 팔려 나가 목포에서 삭힌 뒤 ‘국내산 홍어’란 이름으로 서울의 남도 음식점에서 팔린다. 대청도에선 홍어를 삭히지 않는다. 생홍어회를 먹거나 말린 뒤 쪄 먹는다. 대청도 ‘돼지식당’ 서응택(59) 대표가 “생홍어회는 볼살이 제일 맛있다”고 알려줬다. 대청도에선 빨래보다 홍어 말리는 풍경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10억 년 전 지구
대청도와 소청도는 10억 년 전 지형이 보전된 땅이다. 고립과 단절이라는 조건이 낳은 뜻밖의 결과일 테다. 두 섬에는 국가지질 명소 다섯 곳이 있다. 대청도에 앞서 소개한 농여 해변과 미아동 해변,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서풍받이 등 4개가, 소청도에 분바위와 월띠 한 곳이 있다.
분바위는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얬다. 이름은 바위지만, 하얀 바위가 해안을 따라 700m가량 이어진다. ‘월띠’란 이름은 달빛에서 나왔다. 바다에 나가면 달빛 받은 분바위가 섬에 하얀 띠를 두른 것처럼 보인단다. 산호 같은 생물이 쌓여 석회암을 이뤘고 10억 년의 시간을 거치며 대리암이 됐다. 일제 강점기 마구 파헤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분바위 옆에 박테리아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다. 소청도에선 ‘굴딱지 돌’이라 한다는데, 정말 돌에서 굴딱지 흔적이 보였다. 돌 이전의 돌이라고 할까. 정말 10억 년 전 지구를 탐험하는 것 같았다.
분바위 아래는 온통 홍합 밭이었다. 노진호 지질공원해설사가 “물이 빠진 시간에만 드러나는 비경”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홍합은 생전 처음 봤다. 홍합은 1년에 6㎜ 정도씩 크는데, 8㎝가 안 되는 홍합은 못 잡는다고 한다. 섬에서 홍합은 홍어만큼 흔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농여 해변에 펼쳐진 풀등이었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모래톱을 풀등이라 하는데, 대청도 풀등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다고 한다. 일부러 물 빠진 때를 기다려 풀등으로 나갔다. 해안에서 모래톱이 장장 2㎞나 이어졌다. 바다 건너 백령도가 코앞에 보일 때까지 걸어 들어갔다. 지금 밟는 이 모래가 몇 시간 전엔 바다였다는 사실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이 넓은 세상이 전부 내 것인 양 바다 한가운데 모래밭에서 반나절을 활보했다. 생경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바닷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콸콸콸콸,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몰려왔다. 밀물은 소리로 먼저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행정보
인천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두 번 백령도 들어가는 배가 뜬다. 인천에서 3시간 10분쯤 달리면 소청도고, 3시간 40분 달리면 대청도고, 4시간쯤 달리면 백령도다. 여행사들은 보통 2박3일 여정으로 백령도와 대청도 여행상품을 만든다. 백령도는 빼고 대청도와 소청도만 들어가려면 다음의 여정이 제일 알차다. 오전 7시 50분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소청도에 들어갔다가 반나절 소청도를 돌아본 뒤 오후 5시 배를 타고 대청도에 들어가 2박을 하고 사흘째 되는 날 오후 1시 배를 타고 대청도를 나온다. 소청도는 민박도, 식당도 부족하다.
대청도 관광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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