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사거리역'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해,
1967년 '백양사역'으로 개명해 인근의 백양사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1987년 현재의 역사를 새로 신축하고 복선화를 완료하였으며,
2003년 전철화를 마무리하였고, KTX 개통 때 무궁화호 전열차 정차를 이끌어냈다.
백양사(사거리)역이 개업한지 벌써 9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의 백양사역의 세월의 흔적이 녹록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쭉쭉 곧게 뻗은 복선 선로, 길게 늘어진 멋드러진 승강장, 웅장하고 거대한 전차선이 전부였다.
백양사, 장성댐과의 관광연계가 되고 노령 고개를 넘어서 나오는 전남 지역 첫번째 마을, 사거리.
순전히 관광 연계 덕분에 다른 곳보다 큰 규모의 마을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백양사역도 '면'에 소재한 역임에도 모든 무궁화호가 필수적으로 정차하는 주요역으로 발돋움했다.
큰 역들이 살아남고 작은 역들이 죽어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장 심각한 호남선에서,
주요역의 이름에 당당히 세 글자를 입력시킨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전남의 관문이자 백양사 등 관광지로 이어지는 입구 역할을 하는 곳.
처음에는 동등한 입장에서 출발했던 주변 역들에 비해 월등히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백양사역을 '가치있는 기차역'으로서 유지할 수 있었다.
아예 폐역처리된 신흥리, 옥정.
그리고 여객열차가 서지 않는 노령.
화물의 메카로 육성하려다가 실패한 안평.
여객, 화물 모두 영업중지 위기를 맞고 있는 천원역,
무궁화호 전 열차가 정차하는 백양사역.
처음엔 모두 같은 위치에서 시작한 역들이지만, 현재의 입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정읍역과 장성역이라는 두 거대역 사이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유일한 역.
'간이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넓다란 광장을 갖추고 있다.
오히려 광장 자체로만 보자면 지역 중심역 '장성역'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넓디넓은 광장 너머로는 덩쿨 이불을 덮고 있는 조그만 휴식처가 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잠시 열기를 식히면서 아픈 다리를 주무를 수 있는 '안식처'와도 같은 공간.
정말 큰 역에서도, 정말 작은 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백양사역만의 유물이다.

백양사역 건물 규모는 천원역, 노령역, 옛 신흥리역, 옛 옥정역과 비슷하다.
구내 또한 마찬가지로, 호남선 익산 이남 간이역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공간은 좁지만, 갖가지 화초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고 예전 호남선의 사진까지 걸려있을 정도로,
역 내부가 아기자기하고 예쁘장하게 잘 꾸며져 있다.
이렇게 단장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인 역무원 분들이 놀랍다.
KTX가 수시로 지나가는 역이기에 신호업무 관리를 하기도 빠듯할텐데 말이다.

표 사는 곳은 한산한 편이지만, 좁은 역 규모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
비둘기호가 갓 퇴역했을 시절 나온 100주년 기념 역 도장도 이 곳에서 찍을 수 있다.
왠만큼 큰 역에서도 찾기 힘들다는 도장까지 구비되어 있는 것은,
이미 호남선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으로 성장해 버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워낙에 공간이 좁고 협소하기 때문에 이렇게 건물 바깥에 조그맣게 틈을 내어 맞이방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역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매표소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TV와 책들이 놓여진 아기자기한 맞이방이 나오게 된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 손에 꼽히는 천원, 노령역보다도 건물 공간이 좁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이방 공간을 따로 마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건물 규모는 좁더라도, 백양사역은 인근의 관광지와의 연계 역할 뿐 아니라 장성 북부의 거점역 역할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읍과 광주로 넘어가는 길목이기에, 수많은 열차들을 관리하는 신호업무의 비중도 아주 크다.
그 때문에 백양사역 역무원 분들은 굉장히 친절하시지만,
열차에 관련된 업무에 있어서는 상당히 엄격하고 민감하다.
굳이 역무원 분들 뿐만 아니라 백양사역 본인에게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일 것이다.

뻥 뚫린 하늘, 쭉 뻗은 선로...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호남선의 정겨운 풍경이지만,
바로 앞에 산이 가로막고 있는 풍경은 호남선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백양사역만의 특별한 선물이다.
다른 호남선 역들과는 달리 산악철도의 분위기가 살짝 풍겨 더욱 이색적이다.

호남선은 KTX까지 운행할 정도로 열차 운행 횟수가 잦은 주요 간선이지만,
KTX가 정차하는 '지역 중심역'을 제외하면 아직 시설이 열약한 편이다.
물론 2001년에 개량한 송정리~목포 구간의 경우야 전 역에 지하도가 설치되어 있지만,
70~80년대에 개량을 끝낸 송정리 이북에서는 좀처럼 입체화가 된 역을 찾기가 어렵다.
이미 주요역으로 자리잡은 백양사역도 예외는 아니라서, 열차를 타려면 항상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한다.
더군다나 중앙선의 일개 신호장에도 설치된 차단기마저 여기선 찾을 수 없다.
속도에만 신경쓸 동안 안전에는 전혀 무관심했던 철도시설공단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특별한 광경.
역 너머에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바로 붙어있다.
호남고속도로 톨게이트마저 이 지역 지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백양사'이다.
'백양사'라는 절이, 사찰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백양사역만의 명물이기도 한 특별한 광경이지만,
호남고속도로 직선화가 진행중이기에 직선화가 완료되면 이런 광경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속도를 깎아먹는 간이역은 살 길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특히 고속열차와 일반열차가 한 데 어우려 다녀야하는 호남선에서는 더욱 그렇다.
홍길동 벽화가 인상적이었던 예쁜 간이역, '신흥리'역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날지라도 이름만이라도 남겨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조그마한 간이역들이 줄줄이 폐역된 이유는 주변 역의 덩치 때문에 입지를 잃었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직 속도만을 추구하는, 시간 중심적인 현대 사회의 추세에,
배후수요가 적었던 간이역들이 시대의 흐름에 쫒아가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일개 간이역에서 "호남선"의 주요역으로 발돋움한 백양사역의 입지는 더욱 돋보인다.

정동진역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간이역이 어디 있을까.
관광지가 그렇게 가까웠던 것도 아니고, 주변에 큼직한 역을 양 옆으로 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안 좋은 여건들 속에서도 주변의 동료들처럼 처참한 최후를 맞지 않고 아직까지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이 대견하기만 하다.

승강장도 정말 길다. 새마을호가 정차하는 역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길 수가 있을까.
이 정도면 복합새마을을 넘어 18량짜리 KTX마저 설 수 있을 정도다.
그 정도로 백양사역의 승강장 길이는 어마어마하게 길다.
도데체, 무엇 때문에 백양사역 승강장 길이를 이렇게 길게 해놓았을까.
군부대가 주변에 있다던지 하는 특수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백양사역의 끝을 알리는 역명판이 승강장보다 좀 더 앞서나가 선로 한가운데에 불쑥 머리를 내놓고 있다.
역앞 톨게이트와 마찬가지로 다른 곳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광경이다.
관광지와의 연계에 의해 살아남은 역이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뚜렷하게 가꿀 줄 안다.
멀리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백양사역인 것이다.

마침 무궁화호 열차가 험한 노령고개를 넘어 백양사역을 향해 유유히 들어오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차선의 터널 속에서도 뿌연 매연을 내뿜는다.
속도와의 경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백양사역,
전철화가 완료된 선로에서 아직도 디젤기관차로 운행하는 열차.
묘하게 대비되는 듯 하면서도, 또한 묘하게 닮았다.
속도의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격렬해져가는 현실이지만,
백양사역은 그런 것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참신함을 무기로 삼아 속도의 경쟁과 상관없이 살아남았기 때문일까.
치열한 격전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주변 간이역들과는 달리,
백양사역은 오늘도 자기 자신을 무기로 삼고
속도라는 거대한 폭풍 아래 꼿꼿이 고개를 치켜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