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된 나
제가 울산남구지역자활센터에 배정되어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복무를 시작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수행했던 업무가 ‘사랑의 도시락 배달’입니다. 저와 제 후임, 이 곳에서 근무하는 두 명의 사회복무요원이 저소득층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신 임대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60여 가구에 매일 점심 도시락을 배달합니다. 집집마다 오늘 만든 따뜻한 도시락을 가져다주면서 어제의 빈 도시락 통을 수거해 오는 방식입니다.
보통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11시 30분쯤에 마무리되는, 이 간단해 보이는 일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제가 질색하던 것이었습니다. 임대 아파트는 제가 경험했던 어떤 주거 공간보다도 불결하게 느껴졌고, 어깨에 맨 채 배달 하던 도시락 주머니는 종종 넘쳐흐른 국물에 푹 젖어 있기도 했습니다. 무엇 보다 꺼렸던 것은 노인 분들과의 마주침이었습니다. 낮 시간에도 할 일이 없어서 단지 내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들은 배달하러 돌아다니는 제가 지나가면 하시던 말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고는 했습니다. 저는 그 시선에 왠지 기분이 찝찝했습니다. 제가 지금 어울리지 않는, 낯선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멀리서 볼 때 몰랐던 것들
하루는 어떤 할머니께서 혼자 계시는 집에 도시락을 갖다 드리려는데 불쑥 짜증이 솟구쳤습니다. 보통 도시락을 받는 집에서는 빈 도시락을 밖의 문고리에 내걸거나 가까운 현관에 두는데, 이 집에서는 어두운 거실 안쪽까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도시락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누워 계시던 할머니께 살짝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앞으로 빈 도시락을 현관 쪽에 놓아주실래요?” 그 말을 듣고 할머니는 천천히 일어나셔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리가 불편해서 멀리 움직이기 힘들다. 미안하다. 총각.”
저는 그제야 일어나 앉아계신 할머니를 살펴봤는데,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한 게 아니라 왼쪽 다리가 없으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공장에서 기계 가까이에서 일하다가 큰일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멀리서 누워계신 모습만 볼 때에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 부끄러워져서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습니다.
그 날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멀쩡하신 분들이라도 노인 분들보다는 젊고 빠른 제가 훨씬 쉽게 움직일 수 있는데, 그 빤한 사실은 뒤로 젖혀둔 채 생각 없이 제 편함만 쫓은 것입니다. 배달을 얼른 끝내서 제가 싫어하는 이 아파트 단지를 빨리 떠나기 위해 할머니께 부탁을 드렸는데, 그 분은 이 아파트 단지에서 불편한 몸으로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계속 그 장면을 곱씹어 보니, 저 자신이 정말로 철없고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은 제게 있어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곳에 계시는 노인 분들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낄 때마다 저는 스스로를 질책했고, 누구에게나 열린 12 ** 2015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집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조금 전환하니, 그 전에는 볼 수 없었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항상 쉰 목소리로 희미하게 말씀 하셔서 제가 심각한 흡연자로만 여겼던 어떤 할아버지는 사실 만성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분과 짧게 대화를 나누면서 당신은 담배를 전혀 피우시지 않지만 예전에 십년 넘게 열악한 작업장에서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용접 일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집에는 한쪽 팔이 없어서 의수를 착용하신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앞의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분은 가끔씩 제게 요구르트나 사탕 같은 먹을거리들을 주시는데, 그럴 때면 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 같은 젊은 총각이 항상 수고해줘서 당신이 맛있는 밥을 드신다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기계적으로 빈 도시락을 새 도시락으로 바꾸어 가기만 하던 제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 그것은 이 곳에 사는 가난한 노인 분들이 제 선입견처럼 마냥 어둡 거나 피해의식에 차 있는 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분들은 당신의 삶에서 조금의 불운이 있었을 뿐, 조금의 관심에도 힘을 얻고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 에게 감사할 줄 아는 따뜻한 분들이셨습니다. 언제나 약간 이기적이고 성격이 급한 저는 그 분들을 보면서 지금 제가 혹시 자신의 삶에만 너무 빠져있는 것이 아닌지, 주변의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면서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게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날마다 저는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면서 더 가치 있는 반성을 얻어 가고 있습니다.
반전의 문제 가구
보통은 하루의 도시락 배달이 아무 탈 없이 끝나지만, 도시락을 받는 분들과의 만남에서 문제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루는 새로 도시락이 들어가는 집에 처음 배달을 갔습니다. 아파트에는 귀가 어두운 노인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큰 소리로 배달을 알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날도 별 생각 없이 도시락을 닫힌 문고리에 걸고 크게 외쳤습니다. “식사 배달 왔습니다!” 한동안 대답이 없어서 돌아서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덩치가 큰 남자가 나왔습니 다. 그 남자는 제게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신데 왜 시끄럽게 하냐’ 면서 화를 냈 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욕을 들어야 할 상황은 아니었고, 그 남자도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인상이 제법 우락부락했고 저도 굳이 말썽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일단은 죄송하다며 물러났습니다. 그 날 도시락 사회적 기업(배달 신청을 받고 저희에게 배달을 지시하는)에서 살짝 알려주기를, 그 집은 저 이전에 배달하던 분들과도 마찰이 생겨서 몇 번이나 도시락 배달을 취소했다가 다시 신청한 소위‘문제 가구’라는 겁니다.
그 후로 그 집에는 절대 배달 왔다고 알리지 않고 도시락도 문고리에 살짝 걸어놓고만 다녔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다니다가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그 남자와 마주쳤습니다. 이미 한번 호되게 당한 터라 살짝 긴장해 있는데, 그 분이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는 저를 보고는 갑자기 웃으며 악수를 청하며 말을 걸었습니다.
“아이구, 수고하십니다. 도시락 잘 먹고 있습니다. 저번에 화낸 거는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저는 긴장이 풀리고 허탈해서 맥없이 대답하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고 웃음이 자꾸 나왔습니다. 제가 도시락 배달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줄로 오해했던 그 사람은 사실 화냈던 사실을 기억했을 뿐 아니라, 제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했습니다.
비록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의 화해(?) 이후로 그 분과는 도시락을 배달 받는 분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습 니다. 꽤 자주 마주치면서 인사를 주고받고 있으며, 가끔씩은 가방이 무거워 보이니 들어 주겠다고도 하십니다. 한번은 그 분이 모시고 있는 할머니에게 잠시 시간을 내어 인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사람 간의 막연한 오해와 불편함은 그저 그 사람을 피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먼저 용기를 내어 화해를 시도하고 손을 내밀어준 그 분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내가 바로 젊은 산타클로스
작년 12월은 제가 사회복무요원이 되고 처음 맞이한 겨울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도시락 배달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 날 오후 다시 한 번 배달을 나가야 한다는 통보가 있었습니다. 어르신들 겨울나기에 필요한 김치를 배달한 다는데, 양 손으로 받쳐야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크고 무거운 김치통을 보고 서는 전의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냥 도시락 가방을 들어도 배달을 마치고 나면 살짝 땀이 나고 피곤한데, 그것보다 몇 배는 무거운 김치통을 들고 넓은 단지를 돌아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오후에 장갑을 끼고 김치통을 트럭에 한가득 싣고, 김치통을 운반하는 데 쓰일 카트도 챙기고는 익숙한 그 아파트 단지로 출발했습니다. 매일 도시락을 받던 분들에게 김치 한 통씩을 나누어 드렸는데, 모두들 정말 좋아하셔서 놀랐습니다. 평소에 도시락을 가져다 드려도 반응이 시큰둥하던 분들도 커다란 김치통을 드리니 박수를 치며 기뻐하셨습니다.
“진짜로 고맙네. 두고두고 잘 먹을게.” “올해 김장할 때를 놓쳐서 김치 없이 밥 먹어야 하나 싶었는데 잘됐다!” “우리 아들들보다 낫네.” 확실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었지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할 때보다 훨씬 뿌듯한 마음이 컸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12월 22일, 성탄절이 낀 주의 월요일이었습니다. TV나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 특유의 발랄하고 달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분위기에 휩싸여 들떠 있을 때, 저는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난 이 곳에서 잠시나마 산타클로스가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닌, 외롭고 가난하신 어르신들에게 김치를 나눠주는 젊은 산타클로스였습니다. 제가 김치를 가져다 드렸던 모든 분들은 문을 열고 세상의 어떤 아이들보다 환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서로 모르던 사람끼리 어떠한 계산도 없이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어르신들은 제게 도시락이나 김치보다 큰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도시락을 배달할 때에도 종종 고맙다는 말씀을 듣게 되면 딱 하루 산타클로스가 되었던 그 겨울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제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 대단치 않은 일로 보일지도 모르겠 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이 일이 귀찮고 힘들게 느껴지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시락을 갖다드릴 때마다 그 보답으로 미소를 지어주시고, 고마워하시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언제라도 힘이 나면서 걸음이 빨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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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춘예찬 원문보기 글쓴이: 굳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