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전 경찰종합학교 교장 박종환
월간 판전(板殿) 2009년 4월호 정용일 기자

바야흐로 '경찰수난시대'다. 용산진압 참사사건에서부터 택시기사 폭행치사, 오락실 강도사건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 잇달았다. 게다가 최근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한 수사에서도 눈치보기 등 경찰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러한 때 봉은사 지도위원인 박종환 전 경찰종합하교 교장을 만나 일선 경찰의 고뇌와 바람직한 경찰사에 대해 격정에 찬 토로를 들어 보았다.
그의 별명은 '박 감독'이다.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과 이름이 같아서이기도 하지만 강인한 인상과 의지력을 보면 그런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여겨진다.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평범한 일상인으로 돌아온 그에게 요즘 근황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퇴임은 했지만 전국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와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지역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에 후배들의 권유로 중하위직 경찰공무원들의 모임인 '무궁화클럽' 고문을 맡기도 했구요. 어떤 의미에선 다시 사회초년생이 된 건데, 사회를 배우기 위해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경찰에 투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원래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정말 우연히 경찰간부 특채시험을 보게 됐는데, 합격이 된 거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특채였어요. 그렇게 해서 30년 경찰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특별히 중하위직 경찰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계급은 벼슬이 아니라 역할 분담에 불과하다고 봐요.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있잖아요? 지휘관이 되면서 은혜를 베푼 조직과 직원들에게 갚아야 할 부채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무엇보다 하위직의 애환을 알아 줘야 합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리한 수사의 전형인 송파경찰서 김종구 사건에 매달린 것도, 경찰에서 4조2교대를 처음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경찰관도 집에 가야 하지 않겠어요? 물론 현실적 여건 때문에 늘 지키기는 어렵겠지만 근로기준법의 정신에 맞게 근무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용산진압? 한마디로 실패한 작전입니다"
요즘 경찰을 둘러싼 여론이 분분합니다. 한마디로 '난맥상'이라고 해야 할 정도인데요. 특히 용산참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한마디로 '실패한 작전'입니다. 법을 집행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경찰의 임무상 진압은 해야겠죠. 하지만 어떻게 막느냐가 중요합니다. 진압의 목적과 방법, 예측 가능성, 최소 침해의 원칙 등 4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농성 장소에 위험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이 소진되지 않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비책도 없이 진압에 들어가는 건 무모한 일이예요. 저는 최소한 열흘 정도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 진압에 들어갔더군요. 외부의 압력이 있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상규에 어긋나는 진압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공권력 행사의 원칙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무엇보다 균형 잡힌 사고가 중요합니다. 국민의 기본권은 헌법 이전의 권리이자 가치입니다. 법집행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관철돼야 합니다. 또한 소수자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경찰편의주의도 척결돼야 하구요."
참여정부 시절 경찰의 수사권독립 문제가 의제로 올랐다가 요즘은 잠잠해졌습니다만. "관계기관대책회의란 게 있어요. 막기는 경찰이 막는데 지시는 법무부 장관에게 합니다. 만약 대책회의가 필요하다면 주무 부서가 주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책회의적 사고가 문제입니다. 경찰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권인숙 성고문사건 등 엄청난 실패의 경험과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어떠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들이 독립성을 가지고 판단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입각해 봐도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필요합니다."
"법제화 이전이라도 경찰의 자율적 판단과 결정은 가능합니다"
수사권 독립 문제에 대해 타 기관에서는 자질 문제 등을 들며 시기상조라고 주장합니다만. "요즘 경찰이 어떤지 모르고 하는 얘긴데, 자질 문제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자정 능력, 신뢰의 문제인데, 역설적으로 이게 독립성과 관련이 있어요. 경찰 내부적으로도 담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사권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 기득권 세력의 방해도 있었지만, 경찰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법적ㆍ제도적 장치 없이도 경찰권의 독립은 가능하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현행 법률 하에서도 자율적 판단과 결정이 가능합니다. 제가 제주지방경찰청장으로 있을 때 FTA반대 시위가 있었어요. 그때 시위진압을 위한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는데 전 가지 않았어요. 반대로 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단체를 만나러 다녔죠. 하루에 점심만 세 끼를 먹은 적도 있어요. 그들에게 이렇게 설득했죠. '시위의 자유를 인정한다. 단 불법폭력시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룰을 지키면서 하자. 그러면 우리도 무리한 진압을 하지 않겠다"라구요. 결국 큰 충돌 없이 시위는 마무리 됐어요. 이런 경험에 비춰 보면 법제화 되지 않더라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경찰권의 독립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박 감독은 경찰종합학교 교장 시절 연간 2만 4000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전체 경찰인력의 25%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과연 그의 이런 주장을 경찰 내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중하위직 일선 경찰들이 좋아하지요. 하지만 윗선에서는 불편해 합디다. 그런데 경찰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 정도의 다양성도 인정 못하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봉은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요. "2005년 본청 감사관으로 있을 때 경찰사상 처음으로 '시민감시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때 함세웅 신부님께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그 자리에서 명진스님을 추천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스님께서 일본에서 귀국하시는 날 바로 조계사로 찾아갔죠. 그런데 인연이란 게 참... 명진스님과의 만남은 제게 '충격' 이었어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었나' 하는 느낌이었죠. 어느 것에도 구애됨이 없고, 막힘도 없는 그럼 분이었어요. 그때부터 스님을 쫓아다니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 겁니다."
평소 신행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전 원래는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함세웅 신부님께 부탁을 드린건데... 그만 명진스님을 만나면서 인생이 확 바뀐거죠(웃음). 저는 물음을 허용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불교가 비교할 수 없이 수준 높은 종교라고 생각해요. 특별히 신행생활이라고 할 것은 없고 시간 날 때마다 스님을 찾아 부처님의 말씀도 배우고 스스로를 돌이켜보곤 합니다."
노래가사처럼 살아온 한 평생 'My way'
-전화를 하면서 보니까 컬러링이 'My way'던데,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인가요. 'My way'는 대학 다닐 때 처음 배웠다가 그 후로 좀 멀어졌죠. 그러다 최근 2~3년 동안 많이 부르게 됐어요. 친구들 말에 의하면 '이제는 연륜이 좀 묻어난다'는데(웃음)..., 오히려 퇴임 후에는 부를 기회가 없었어요."
이제 얼마 후면 부처님 오신날 입니다. 이 날을 맞으면서 바람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명진스님의 천일기도를 통해 봉은사와 한국불교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영원한 경찰인의 한 사람으로서 법 집행과 관련한 공권력 행사에서 균형 잡힌 사고와 사회통합 정신이 전제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 봅니다."
'박 감독'과 인터뷰하는 동안 기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애창곡 ''My way'의 한 구절이었다. 한 인간의 삶을 그대로 담은 노래도 흔치 않지만, 노래가사처럼 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가사의 한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함께 나눈 이야기의 나머지를 대신한다.
사나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이고 가진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체성, 독립성이 없다면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거지 비겁한 사람들이 하는 비굴한 말이 아닌 자신이 진실로 느끼는 것을 당당히 말하는 게 진정한 남자가 아니겠나.
* '월간 판전(板殿)'은 봉은사 발행하는 미디어입니다. 봉은사 http://www.bongeun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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