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건 돈)
지나는 바람을 붙들고서라도 악착
같이 장사를 했기에, 자식 넷을 보
란 듯이 키워 장가보내고 나니,
애써 열심히 할 것도 가꿀 것도
없는 나이가 돼버린 게 조금은
억울 하지만,
사놓은 건물에서 나오는
달세로 여유 있게 살고 있다
는 노부부가 새벽안개 짙게
드리운 거리를 가방 두 개를
끌고 걸어 나오 더니,
고속버스 터미널 대합실 귀퉁이
에 앉아 초조한 눈빛으로 사방을
살핍니다.“여보….큰아들 내로
먼저 갑시다“
멍울진 거리를 달려가는 버스
를 타고 도착한 곳은 큰아들이
있는 대전에 한 아파트 앞 이었
이었 는데요.
"아니. 아버지 어머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 이세요?""물이
나 한잔 다오"
바람길 숭숭 난 가슴을 먼저
열어 보인 건 엄마였는데요,
,“네 아버지 고향 친구 준태
아저씨 너도 알 거다”
“준태 아저씨가 뭐 어쨌다고요?”
“네 아버지가 망한 준태 아저씨
보증을 써주는 바람에 우리 집도
경매로 넘어가 버렸지 뭐냐 "
“그럼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며느리가 차려온 술상에 막걸리
몇모금으로 지친 설움을 적셔
나가던 아버지는 어렵게 입을
엽니다.
“큰애야…. 이 년 전에 병원
넓힌 다고 빌려 간 일억을 돌려
주면 안 되겠니…?“
“그 말씀은 병원 문을 닫으
라는 소리지 그게 말이 된
다고 생각하세요….“
"너네 집에 있기도 그렇고 당장
오갈 데가 없어서 그래““아무튼
그 돈은 지금 갚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아세요“
“그럼 우린 어떡하냐?”“
“그건 처신 잘못한 아버지 문제
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라는 말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문을 닫고
출근을 해 버리는
아들의 뒷모습에 배어든 서러움
을 지우기 위해 남은 술 두어 잔
을 연거푸 들이킨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아내 얼굴
조차 바라보지 못 합니다.
자식 일이라면 빗장 열어 부는
바람이 되어 주고픈 게 부모의
마음이란 걸 몰라주는 큰아들
내외와 목말라가는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 밤,
“그러면 이대로 계속 지내 자는
거예요”“갈 데가 없다는데 난들
어떡해"“시골에서 넓게 사는
둘째 아들 집도 있으니 그쪽으
로 가시는 게 어떠 냐며 당신이
말 좀 해 봐요“
아들과 며느리의 싸우는 듯한
투박한 음성이 들려오고 연이어
문을 노크하라는 소리가 들
려오더니,
"아버지 어머니…. 순천에 있는
형석이네에 가 계시는 건 어때요?"
더 이상 할 말은 눈물이라
침묵으로 하고픈 말을 전한
아버지는 집을 떠나온 그 날과
같은 길을 짙은 어둠을 뚫고
나서고 있었 습니다.
“형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그래 어쩌다가 늘그막에 이런
엄한 꼴을 당하셨데요. ““너희
에게 면목이 없구나”“내 집이라
생각하시고 편히 계세요"
과수원을 하는 아들과 며느리는
살갑게 노부부를 맞이해주는 걸보
며 자식 하난 잘 키웠다며 서로에
게 위로를 건네는 시간도 잠시
농번기 농사일 때문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지쳐버린 노부부는 고단
했는지 늦잠을 자고 있을 때 거실
에서는 아들과 며느리의 소곤거리
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요.
“여보…. 아버님이 큰애 아파트
계약할 때 빌린 돈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하세요"
서로 필요로 하는 가치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가족이라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는 슬픈 현실
을 또 한 번 느끼며
아픔으로 견디다 일어난 다음 날
도 자식에게 좋은 일이 부모에게
도 좋은 일이라며 땀방울 마를 날
없이 일손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일손이 귀한데 김 여사
네는 든든한 일꾼 둘이나 구했으
니 좋겠슈….
“이번 농번기만 끝나면 다른 자식
들한테 가라고 해야죠”며느리가
이웃 사람이랑 주고받는 이야기
를 듣고 있던 노부부는
한 번도가족이었던 적이 없었다
는 느낌을 눈물로 애써 지우고는
다음 날 몸 둘 곳 없는 새벽이슬
을 친구 삼아 달이 적셔놓은 길
을 나섭니다
비틀어진 마음과 마음 사이에 배어
든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살얼
음이 낀 처지를 않는 딸의 아파트
벨을 눌러 대보지만,
(((( 띵 똥….)))
아무리 눌러봐도 열리지 않는 문만
쳐다보다 쓸쓸한 마음으로 뒤돌아
서려는 그때 앞집의 현관문이 열리
더니 '지금 그 집엔 아무도 없는데
왜 그러시죠?“
"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기사는 사람이 제 여식이구
먼요“앞집 여자가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택시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온
곳은 병원이었고 묻고 물어 겨우
찾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
는 노부부는
링거병에 의지해 잠들어 있는 딸을
보고 꼬꾸라지듯 달려드는 허기진
눈에서 떨어지는 까닭 잃은 눈물만
이 그 이유를 묻고 있을 뿐이었
습니다
“아니 이것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
을 했어야지““엄마 아버지 걱정
할까 봐….“ .“우린 그런그런
것도 모르고….“
“저 때문에 두 분께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병원 옥상 공원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은
어문 달을 바라보며 세월에
씻어도 까맣게 묻어나는 아픔을
애달프게 바라만 볼 뿐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한 푼도 보태준 게 없는 네게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면목이 없구나”
“제가 두 분 거처할 곳을 알아
볼 테니까 불편하겠지만 일단
제집에 가서 지내세요“
“말만으로도 고맙구나”
자식들과의 과거의 추억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온 한평생이 그저 원망
스럽기만 했지만 자식은 부모를
가진 적도 없었으니까.
자식이 우릴 버렸다고 생각지 말
자며. 그날 밤 남은 해 끝자락에 걸
린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이야기로
딸과 이별을 한 노부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딸의 집이 아닌
예전에 자신들이 살던 집이
었습니다
“ 자식들 마음 다 알았으니 이제
영감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자식들 속 마음을 알기 위해
길을 나섰던
노부부는 잊힘보다 더 가슴
아픈 게 버려짐 같다며 지는 노을
에 비친 막걸리 한 잔에 해묵은
설움을 토해내더니
자식도 그저 좋은 남일 뿐이라
세상 떠도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가 될 줄을 몰랐다며
“자식 한번 앉은 자리엔 백년
동안 풀도 안 자란다잖아요”
“종점에 와 봐야 알게 되는 게
인생 이라 더니만….“
비가 오면 부엌에 있는 온갖 그릇
다 가져와 떨어지는 빗물을 받쳐가
며 밥술에 반찬 서로 얹어주는 행복
으로 복닥거리며 모여 살던
그 날을 그리워하다 시한부 선고
를 받은 노부부 자식들 속 마음을
알기 위해 길을 나섰던 노부부는
가진 재산 전부를
가장 늦게까지 사랑해 줄 사람
이 부모란 걸 모르는 자식들 대신
가진 재산 전부를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기부 하고….
멀어진 자리에 쉬어가는 바람
이 전하는 말들이 나뒹굴고 있
었습니다.
""피보다 진한 건 돈이었다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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