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분단됐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세계 만방에 알린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은 엉성한 진행으로 입길에 올랐다. 셀린 디옹이 에펠탑 위에 올라가 파리의 낭만을 살리려 애썼지만, 올림픽기를 거꾸로 게양하는 해프닝도 있었고, 장내 아나운서가 대한민국을 북한으로 잘못 소개하는, 우리로선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한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여태껏 70년 넘도록 통일을 이루지 못한 현실을 모두가 깨닫게 해줬다.
그런데 4시간 가까이 진행된 26일(현지시간) 개회식 도중 이런 뜨악한 장면도 있었다. 한 국내 언론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로마 신화의 바쿠스)가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전했는데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디오니소스의 뒷배경이 됐던 '최후의 만찬' 장면에 논란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도저히 그냥 웃어 넘길 수 없는 장면이기도 했다.
다음날 야후 스포츠 기사는 "매혹적인 삼각관계(ménage à trois), 노래하는 잘린 머리, 그리고 나체에 가까운 파란색 신 디오니소스까지 등장해 아주 뜨거운 만찬이었다"고 전하며 기독교 신도들 사이에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앞의 삼각관계는 남성과 여성, 성소수자로 구성된 3명의 결혼 행진 장면이며, 잘린 머리는 이날 파리 시내 유명 극장에서 진행된 공연 가운데 프랑스 혁명 당시 감옥으로 사용된 콩시에르주리에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한 장면이었다. 단두대에서 처형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로 분장한 한 합창단이 참수된 자신의 머리를 들고 앙투아네트가 투옥됐던 콩시에르주리 건물의 핏빛 창문에서 혁명가들의 유명한 노래 '아, 괜찮을 거야(Ah, ça ira)' 가사를 읊조린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이다. 드래그(여장 남자) 퀸들과 공연수들로 이뤄진 무리는 누가 봐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명화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하는 무대를 꾸렸다. 그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 디오니소스가 떡하니 만찬 테이블 위에 올라간 장면이었다. 지상의 모든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잔치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것 같았다.
파리 루브르에 있지 않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다 빈치의 명화는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예수가 열두 사제와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신성한 순간을 담은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이 보기에도 뜨악한 인물들이 무대를 꾸몄고, 더욱이 흘러나온 노래도 기독교인의 믿음을 담은 노래가 아니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은 엑스(X, 옛 트위터)에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올리며 이탈리아어로 “전 세계 수십억명의 기독교인들을 모독함으로써 올림픽을 개막하는 것은 아주 나쁜 시작이었다. 프랑스인들이여, 언짢다(Seedy)”고 적었다.
미국프로풋볼(NFL) 캔자스시티 칩스의 키커 해리슨 버트커는 연초에 신앙과 가정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견해를 대변해 눈길을 끌었는데 성경 갈라디아서 6장 7절과 8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했다.
당연히 파리올림픽 관리들은 반기독교 공연이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직위원회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보낸 성명을 통해 “분명히 어떤 종교 집단이나 믿음을 향해 존중하지 않음을 보여줄 의도가 결코 없었다”면서 “반대로 파리 2024 개회식에서의 회화(tableaux) 하나하나는 공동체와 관용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의도됐다”고 밝혔다. 나아가 팝 컬처, 예를 들어 TV 시리즈 '심슨네 가족' '소프라노스' 등에서도 몇 세기는 아니고 몇 십년 동안 다 빈치의 명화를 패러디해 왔다고 주장했다.
야후 스포츠는 이번 대회의 정치사회적 논란이 처음도 아니듯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유일한 것은 올림피안들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이 올림픽에 대한 의견들이라고 비꼬았다.
디오니소스는 레드 카펫 위 음식 덮개가 열리자 다채로운 꽃 위에 온몸을 파랗게 분장하고 옆으로 몸을 기댄 채로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마이크를 쥔 남성은 '벌거벗은'(Nu)이란 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사람들이 태어났을 때처럼 벌거벗은 채 살았다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부자와 가난뱅이도 없을 것이며, 날씬하든 뚱뚱하든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노래에 맞춰 느릿느릿 춤을 췄다.
올림픽 공식 계정은 "그리스 신 디오니소스는 인간 사이의 폭력의 부조리를 깨닫게 한다"고 해당 공연을 해설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로 등장한 남성은 프랑스 배우 겸 가수인 필립 카테린느(55)였다. 1991년 보사노바풍의 노래를 만들며 데뷔한 카테린느는 유머 섞인 노래를 만들고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 여론은 둘로 갈라졌다. 프랑스의 천재적 면모를 보여준다는 칭찬도 나왔지만, 일부는 당황했다. 누리꾼들은 "누가 파파 스머프를 올려뒀나",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아바타가 스머프 리메이크 버전을 만난 것 같다", "이건 프랑스가 아니다", "프랑스어로 노래하며 나를 쫓아오는 푸른 알몸의 남성이 오늘밤 꿈에 나올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