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사랑하는 구성성당 신자분들께
지난 9년 동안 수십 번 수백번도 넘게 지금, 이 순간이 허락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떠올려봤습니다.
성소에 위기가 찾아오면 혹여나 지금, 이 순간이 허락되지 못할까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단순히 서품받고 신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닌 그동안 받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감사했다고 고마웠다고 인사한 번 제대로 하고 떠나지 못할까 두려웠고, 걱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사랑에 감동 받으시고, 저의 이러한 마음을 조금이나 위로해주고자 하셨는지 다행히 하느님께서 이 자리를 이 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선 이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립니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것이 설레기도 하지만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지난 30년간 학교생활을 제외하고는 이곳 구성을 떠나서 지내본 적도, 살아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천막 성당이 생기기도 전부터 함께 했던 이곳 구성성당, 유치부부터 첫영성체, 견진성사와 청소년 시기, 신학생 시절 전부를 지냈던 이곳 구성성당을 두고 떠나 이제 평생 이방인으로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순히 제가 이곳에서 오래 지내서만이 아닌 저의 모든 것이었던 여러분을 두고 떠나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고, 여러분이 있었기에 그동안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신부님과 다른 형제들이 그곳에서 괜찮냐고, 잘 버티고 있냐고 걱정해줬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했던 대답이 있었습니다. 우리 성당 신자들만큼 순수하고, 사랑 많은 신자들 없다고 그렇기에 그것은 겉으로 보일 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우리 성당 신자들은 내 전부이며 자랑이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은 저의 자랑이었고, 전부였습니다. 물론,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있고, 여러분 사이에 아물지 않은 상처도 있는 것이 마음이 조금 걸리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는 우리 구성성당 신자들이라면 분명 서로 사랑하며 다시 그 예전의 사랑 넘치는 공동체로 돌아갈 것임을 알기에 믿고 맘 편안히 떠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죄송하고 아쉬운 것은 제가 후배를 양성하지 못하고 떠난 것입니다. 비록 얼마 되지 않은 빈자리 일지라도 여러분들이 느끼지 않고, 더욱 행복하고 뿌듯해하실 수 있도록 후배를 더욱 열심히 양성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을 말씀드리자면 내년에 지원반이 되는 아이가 2명이 있고, 별문제 없으면 내년에 수능 본 뒤 신학교를 지원하여 2023년에 입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아이들의 입학이 희망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너무나 훌륭한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면에서 저보다 뛰어나고, 오히려 제가 더 배우게 되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신부가 된다면 분명 여러분에게 더 큰 기쁨을 줄 것이고, 교회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저에게 베풀어주셨던 그 사랑과 관심을 그 아이들에게 베풀어주시기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구성성당 교우 여러분, 저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신 구성성당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저의 부모이며 형제, 가족이시니 제가 못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언제든 찾아오셔서 혼내주시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 친정 온 것처럼 찾아와 투덜거리면 지금까지 그래 주셨듯 너그러운 마음으로 위로해주시고,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여나 제가 지나가다 여러분을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서운해하지 마시고 먼저 인사해주시면 기꺼이 반갑게 인사하며 커피 한 잔이라도 꼭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진짜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진심으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자랑이었듯 저 또한 여러분의 자랑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12월 20일
박상현 요한세례자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