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힌 백록담!
2012년 첫 산행!
몇년 전 시도했다가 엄청난 눈으로 정상 바로 밑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요번에는 기필코 겨울 백록담을 눈속에 넣고 오겠다고 다짐하며, 등산장비를 꾸리고 내려왔다.
물론 첫번째 목적은 어머님 제사를 모시러 왔지만 내심 한라산에 대한 욕심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하여, 11일 저녁 제주공항에서 집으로 가지 않고 성판악에서 가까운 한라산cc 골프텔에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내일 아침을 기다리며.....
언제 : 2012년 1월 12일(목)
누구랑 : 나홀로
코스 : 성판악 ---> 진달래밭 ---> 정상 ---> 용진각 ---> 탐라계곡 ---> 관음사
산행시간 : 8시간 20분(약 19km)

새벽 7시, 아직도 어둠 속에 둥근달이 떠있고, 하얀 눈이 깔려 있어서 랜턴을 켜지 않고도
충분히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40여분이 지났을까 동녁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나무 사이로 일출이 시작된다.

울창한 삼나무 숲을 지나며 호젓한 산길의 아름다움에 혼이 나간 듯.....

성판악 기점 4.1km, 첫번째 대피소에 다달았다. 나무가지에 맺힌 상고대가 아침햇살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도 눈속에 파뭍혀 손으로 파헤쳐야 얼굴을 볼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눈길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목표는 하나지만 다투지 않습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지요.

두시간 반만에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12시 이후부터는 여기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상을 목표로 한다면 12시 이전까지 여기에 도착해야 합니다.

진달래밭을 출발하여 40여분, 올라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분화구가 아마 사라오름인 것 같습니다.

1,800고지에서 서귀포를 조망했습니다. 저 구름들이 내 발 아래 떠있군요.

1,900고지를 지나 마지막 정상을 향하여 온 힘을 쏟아붙습니다. 낑~낑~

4시간만에 드디어 정상입니다. 아~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산을 오릅니다.
인증샷을 위하여 주변 산객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백록담과 한라산 남쪽 정상---엣날에는 저쪽에도 갔었는데.....

백록담과 서북벽 방향---매서운 칼바람에 눈을 뜨기 조차 어렵습니다.

정상 정복의 기쁨도 잠시, 춥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서둘러 관음사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다시 사라오름쪽을 조망하니 한폭의 그림이군요.

눈과 바람에 시달리는 불쌍한 구상나무들!

이 추위에 까마귀 한마리가 무엇을 주시하는 듯...

성판악 코스보다 관음사 코스가 훨씬 눈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20 여년 간 등로가 폐쇄되어 있는 서북능선---저 길을 한번 걸어봐야 하는데.....

바람이 빚어낸 눈조각이 태양의 후광을 받아 더욱 아름답습니다.

구상나무가 눈지붕을 만들었군요. 이 밑을 지날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합니다.

가슴까지 차오른 눈길을 헤치며...

혼자 입을 떡~ 벌린채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눈으로 확인합니다.

눈, 숲, 구름, 하늘, 그리고 한 사람...

엣날에는 여기에 용진각 대피소가 있었는데 팻말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연인인가? 부부인가? 까마귀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용진각에서 삼각봉 쪽을 조망했습니다.

대피소가 없어져버려 할 수 없이 눈밭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때웁니다.

오늘따라 왕관바위가 진짜 왕관 같이 보입니다.

고2 때인가? 여름철 등산을 왔다가 장대비를 만나 계곡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이틀 동안이나 대피소 신세를 진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다리를 놓았으니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군요.

한폭의 수체화 같은 느낌입니다.

삼각봉 허리를 돌아 개미등으로 향합니다.

아~니, 이게 뭡니까? 눈밭에서 개 떨듯이 떨면서 점심을 먹었는데,
삼각봉 밑에 호텔식 대피소를 지었네요. 아이구~ 억울해라!!

서북능선쪽으로 하얀 운해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마음이 설렙니다.
운해가 올라오면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멋지게 맺히니까 그걸 기대하는거죠.

삼각봉을 뒤로 하고 개미등능선을 내려갑니다. 이곳만 오면 늘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이곳에서 볼래(보리수 열매) 따먹는데 정신팔려서 갖고 간 카메라를 잊어버렸던 기억 ㅎㅎ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상고대가 달렸군요.

가지에 매달린 상고대가 마치 벗꽃이 만발한 것 같이 보이는군요.
나는 하산할 생각도 잠시 잊고 여기 두리번 저기 두리번 대자연과의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개미등에서 탐라계곡 위까지 이어지는 적송지대는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눈인가요? 꽃인가요? 아~~ 눈꽃이군요!!!

화려했던 가을을 보내고 을시년스러워진 탐라계곡의 모습

날머리인 관음사 코스입구---하산시간을 3시간 반으로 잡았는데, 설경에 취해 휘청거리다
무려 4시간 20분이나 허비(?)했다.
와~ 오늘의 설경은 한참 동안 내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첫댓글 와~~무슨 복을 타고 나셨습니까?? 구름한점 없는 하늘에...아주 그냥 죽여 주네요...시간이 깨나 걸릴만 합니다,...
눈과 상고대 한번에 다 보고 오셨네요.
새해 복 받으셨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를 빙자한 한라산 산행이구만 ..


돈네코 코스 타려고 갔다가 폭설바람에 둘레길만 타고 왔는데 송박사는 토박이 답게
감하네.. 그런데 왜 혼자 오르셨는지
덕분에 까마귀에게 의심은 안 당했겠구마.. 

재작년 영실
좋은 날을 잘 선택하셨네 아주 오래 전인 2004년인가 이 코스를 한번 탄적이 있었는데 그땐 초봄이라 이런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없었다네 덕분에 아름다운 화첩
좋은날 복받으셨습니다,
옛기억을 되살리면서 추억에 푹 젖고 오셨겠습니다.즐감 합니다,^^
어머님께서 허락을 하셨나봅니다...
이렇게 멋진날 한라산을 만나신걸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