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부터 쏟아지던 비가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더니 조금씩 그쳐간다. 아침을 먹으로 갔던 취사장에서 중산리에서 올라오신다는 두 분의 아저씨를 만났다. 산행 통제된 것을 모르고 올라오셨다는 아저씨들. 확인 차 안내소에, 한 분이 가셨던 모양이다. 공단직원이라는 사람이 뭔가를 가지고 오더니 다짜고자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확인하려고 한다. 말이 안나온다. 지들이 게으르고 통제 확인 못해서 위험하게 올라온 분들에게 도리어 통제중에 입산하시면 어쩌냐며 화를 내면서 짜증을 낸다.
새벽에 안내소에 있는 통제간판을 누가 제대로 보고 올라오겠는가 말이다. 당연히 통제라면 자신들이 안내소에서 입산통제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이런.. xx넘들이... 슬슬 일행들도 화가 나가 시작했나보다.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두 분을 거들고 있었다. 조금 잦아든 공단직원. 역시 한국 공무원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 저두 교원공무원하려고 하지만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들 편할대로만 행동하는 저 무식한넘들.. )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취사장에서 아침을 해결한 장터목 일행은 거사(?)를 도모했다. 무턱대고 넘어갔다가는 싸움나기 딱인 상황이고 하니, 종주일행 모두가 같이 치밭목을 통해 대원사쪽으로 내려가자는 것이 안건이었다.
그러나 실패다. 보내주지 못한다면서.. 백무동쪽으로 하산한다면 보내준다는 것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 창으로 햇볕이 스며들고 있다. 창 너머로 멀리 중산리와 백무동이 선명하게 들어났다. 그래도 이 넘들은 보내주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법이 있는가? 어제도 그렇더니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에는 보내주지 않고 비내리면 다시 보내려고 그러는가?.. 지들이 여기서 근무하는 돈을 누가 내는데.. 개xx들이... 여기저기서 욕이 나오고 있다.
더 웃긴건.. 사진사 아저씨들은 아침을 일찌감치 드시고 천왕봉쪽으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런 우라질.. 쌓여간다.. 우~쒸~~~
허탈한 마음으로 산장안으로 들어갔는데 중산리에서 오신 두분이 점잖게 술을 권하고 계셨다. 에공(참고로 산장 안에서는 어떠한 식품도 조리 및 드실 수 없습니다. 금연, 금주의 공간입니다 : 징크스의 마무리.. 술먹었다. 모두.. 알딸딸 할 정도로.. 이궁..ㅡㅡ;;)
말도 안나온다. 통제라면서 책임 각서를 쓰고 가서 뒤지든 말든 그 뒤는 상관 않겠다는 투다. 저런 xxx같은 넘들에게 돈 바칠려구 세금내나 싶다. 성질대로면 그대로 한판하겠는데 그나만 어디냐며 모두 빨리 밥묵고 가버리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개xx들이.........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서둘러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우린 뒤도 안돌아 보고 제석봉을 향해 종주를 다시 시작하였다. 잘만하면 치밭목을 지나 대원사 쪽으로 내려갈 수 있겠다고 하셨다. 천왕봉을 넘어가는 것은 처음이라서 좀 걱정이 되긴 했다. 더구나 나 때문에 여기까지온 형님부부가 걱정이 되고 더 걱정이 되는 것은 형수님의 다리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는 것과 똑같은 증상이 어제 우리보다 앞서 갔던 두 분중에 젊은 분의 다리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걱정이다.
제석봉의 기운은 여전히 맑다.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몇 그루 안보이는 고사목이 좀 흉물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멋있는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에 이르러 드디어 하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정한 기운이 있는 사람은 넘어서지 못한다는 통천문.. 기념촬영 ..^0^..
거의 기다시피하는 두사람을 뒤에서 부추기며 오른 천왕봉은 여전했다. 옷을 파고들며 불어오는 바람과 그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안개(구름인지 안개인지 정말 헷갈린다)를 온 몸으로 맞으며 1915m..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은 땅에 발을 디뎠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하다.”(이것이 맞는 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사진이 나오질 않아서)
한양형님이 준비해왔다던 정상주(태어나서 먹어본 가장 초라한 술이었지만 가장 달고 맛있었던 술이었다, 아마 평생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한잔 씩을 마시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형님부부가 너무 좋아하셔서 여기까지 모시고 온게 그리 후회되지는 않았다. 김한장에 1회용 술잔에 한모금 술이었지만 세상 어느 고귀한 술보다도 더 운치있었고, 맛났었다. *^0^*
렌턴은 4개. 한양형님, 두 아저씨, 그리고 나 이렇게 4개. 날이 저물더라도 치밭목을 지나 대원사까지는 갈 수 있겠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그런데..ㅠㅠ
다리가 아프신 젊은 아저씨가 속도를 못내고 있었다. 강제로 뺏다시피 그 아저씨의 배낭을 뺏어 들고 맨 뒤에 있던 내가 맨 앞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하산하는데는 배낭무게가 있어서 천왕봉을 오를 때와는 다를 것이다. 괴산 형님과 둘이서 배낭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내려가는데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치밭목에서 키우는 개라고 한다. 멍멍 산을 울리는 소리가 너무 반갑다.
5시.. 어떻하든 치밭목에는 도착했다. 에공.. 잠깐 한숨을...
처음 와보는 치밭목 산장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전기도 없구, 특별하게 공간 구분이 되어있지않은 구조였다. 진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약간 괴기스러운 산장이었다. 지금까지의 산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치밭목에서 다리가 위험수위에 달한 아저씨 한 분은 잔류하기로 했다. 랜턴은 3개.
치밭목을 뒤로하고 계곡물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외나무다리가 나왔다. 이정표도 할겸 폰사진을 한 장 남겼다. 그리고 배낭에서 랜턴을 꺼내었다. 이럴수가.. 어제 장터목까지 땡기고 저녁에 왔다 갔다 하느라고 랜턴이 방전된 모양이다. 이럴수가.. 빛이 아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서둘러 앞서 간 일행을 잡았다. 그리고 사죄하며 랜턴이 방전됐다고 알렸다. 아저씨가 랜턴있다면서 빨리 내려가자고 하신다. 이제 랜턴2개.
여기서 잠깐.
산에 오르기 전에 항상 1차 장비 점검을 해야 하구요, 산행에서 어떤 장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미리 장비의 상태를 파악하고 산행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산은 여러분이 전문가인지, 초보자인지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그나마 랜턴이 2개이니까 하나는 앞서가고 하나는 뒤에서 비치면서 따라오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는 사람을 믿어야 하지만 무턱대고 믿었다가는 저희와 같은 꼴을 당합니다.) 그나마 다행이지..두개는 무사하니까..
대원사와 새재의 갈림길이 나왔다. 일단 형수님의 다리상태가 심히 걱정이되어 코스는 새재쪽으로 잡고 마지막 간식을 나누었다. 그리고 무작정 출발.. 날이 어두어지고 있었다.
계곡의 밤은 산 정상의 밤보다 빠르게 온다. 능선에 비치는 빛은 반사되는 빛이니 한 번 방향을 잡으면 등대역할을 한다. 야간 산행시 랜턴이 없거나 사용하지 못할 경우 일단 눈을 어둠에 맞추어라. 그러면 길이 입체적으로 명암이 깔린다. 물론 조금. .... 군대에 있으면서 민통선 야간 수색, 정찰을 여러차례 다니고 야간 행군을 여러차례 했던 경험이 이럴 때 쓸모가 있을줄은.. 군대 갔다온게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적도 별로 없었는데... 씁........
(민통선-민간인통제선 ;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38선과는 다르다. 흔히 알고있는 휴전선은 38도선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지금의 휴전선은 조그만 팻말이 있을 뿐이다. 그 팻말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1킬로미터에서 2킬로미터 떨어져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이 있다. 이 남방한계선이 우리가 매체를 통해서 흔히 볼 수 있는, 또 그렇게 알 고 있는 휴전선이다. 그리고 이 남방한계선부터 어느 정도의 군사지역이 유지되는데 이곳이 민통선이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느냐고? 본 익산아미타는 육군 상승 열쇠부대 - 5사단 ; 철책부대 - 보병 출신입니다......흔히들 쇳대 부대라고도 하지요...)
날이 어두어졌다. 능선은 아직 푸른기가 남아있지만 계곡은 이미 새카맣다. 그런데 이무슨 청천날벼락이... 아저씨가 랜턴이 안들어오신단다.. 이런...ㅠㅠ........ 아까 확인할 때 확인이라도 하시지..ㅠㅠ.. 나도 문제지만.. 에구에구..뭐됐당....
간신히 랜턴하나로 밤길을 잡는다는 것은 거의 무식한 짓이다. 죽을려고 배 들이밀고 들어가는 형국밖에 안된다. 그것도 5사람이...ㅠㅠ.... 죄송해라...
산넘어 산이라고 형수님이 긴장하신게 뒤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형수님은 어두운 것을 싫어하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형님 없는 밤에는 온 집안 불이란 불은 다 켜놓구 주무신다고..그런분이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길을 헤쳐간다구 생각해보라.. 아..죄송시러워라.... 맨 앞을 한양형님이 랜턴을 켜고가시고(랜턴이 전구가 여러개이다. 요즘은 저런게 추세라나..?)그 뒤를 형님, 형수님, 아저씨, 나 이렇게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악~~~ 하는 비명소리가들렸다.
길을 찾으며 앞서 길을 가던 한양형님이 계곡물앞에서 뒤를 비쳐주시다 발을 헛디뎌서 계곡으로 넘어가신것이었다. 앞에서 형님과 아저씨가 뛰어갔고 난 바들바들 떨면서 울고계시는 형수님과 함께 뒤따라 천천히 갔다. 다행이 한양형님은 계곡으로 떨어지지 않으시고 바위를 끌어안는 것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런데 상처는 심했다. 오른쪽 다리를 크게 휘두르는 바람에 바위를 끌어안기는 했지만 무릎밑으로 길게 찢어진 상처가 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일단 응급으로 대일밴드를 이용해서 붙이기는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제 가장 시급한 것은 빨리 이 계곡길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바램을 지리산 신령님이 듣기라도 하신걸까? 조그만 밭이 보였다. 그렇다면 민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한양형님과 아저씨, 그리고 괴산 형님은 앞으로 나가셨고 뒤에 나와 형수님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아저씨의 랜턴하나에 의지해 따라가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나무숲 사이로 불어온다. 너무 신경을 썻던 탓에 조그만 움직임에도 민감해진다.. 형님에게는 죄송하지만 형수님의 손을 꼭 잡고 실로암을 부르며 천천히 뒤따라 간다.
“어두운 밤에 깜깜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멀리 가로등이 보인다... 휴........ 살았다..
인간세상에서 가로등은 그다지 크게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가로등은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보는 선장의 기쁨이랄까? 아니면, 사막의 오하시스를 만난 기분이랄까.. 하여간 감동의 불빛이었다. 그리고 그 불빛이 신기루가 아닌 진짜 집이 나타나자 드디어 지리산 종주를 완성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온몸에 팽팽하게 감싸고 있던 긴장감을 녹여버렸다. 조금씩 추워지고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조금 무리해서인지 조금씩 쑤셔오고 있었다.
드디어 지리산 3번째 종주를 완성했다. 그것도 실질적인 종주코스라는 화엄사~치밭목코스를..................너무 기뻤다. 무엇보다 지리산이 처음 이라는 형님과 형수님이 크게 다치시지 않아서 너무 기뻣다. 특히 기쁜건 한양형님의 상처가 꿰멜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한것이었다. 치밭목에 남겨진 젊은 아저씨가 조금 염려스럽기는 했지만.. 무사히 내려오시겠지.... 이제 신경은 그만쓰고 싶다. 자고싶다.. 점점 더 추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