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천, 수원, 대전, 청주, 전주 등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보면,
광주광역시를 거치기 직전 꼭 들리는 지역이 있다.
그 곳이 바로 노령 산줄기를 끼고 있는 장성군.
전남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실상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한산하다.
그나마 장성읍내와 외지를 연결해주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철도인지라,
장성에서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이용한다.
2004년 4월 이후 KTX 열차가 일부 정차함으로서 장성역은 크게 성장했다.
상당수의 장성 주민들이 광주까지 내려가서 버스나 열차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순수하게 장성에서 이용하는 사람들로만 치면 장성터미널은 절대로 장성역에게 명함도 내밀 수 없다.
이웃 시멘트 공장에서 나오는 화물 덕택에 화물수요도 굉장히 좋은 역.
운명은 이름대로 따라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긴 성 역 장성역(長城驛)은 그야말로 장성(長成)하고 있다.
장성역은 무궁화, 새마을호가 전열차 정차하고, 일부 KTX마저 정차하는 꽤 규모있는 역이다.
인근에서 나오는 시멘트 수입도 굉장히 짭짤하여, 장성역은 호남선 내에서도 굉장히 비중이 크다.
하지만 정작 역사는 일반 지방도시의 읍내 역과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생각 외로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편이다.
장성역에서는 광장 따위란 찾아볼 수 없다.
역 바로 앞 삼거리에서 이리저리 뒤엉킨 각종 자가용과 택시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곳보다 규모가 작은 백양사역도 광장 하나만큼은 훌륭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무려 KTX까지 정차하는 역 치고는 상당히 외관이 초라한 셈이다.
장성역 건물 자체의 규모가 작은 만큼, 역 내부도 굉장히 협소하다.
역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이렇게 개찰구가 적나라하게 보일 정도다.
왼쪽의 맞이방에서는 매표소가 위치하고, 오른쪽에는 TV를 볼 수 있는 맞이방이 있다.
대략 온양온천역의 축소판에 개찰구가 설치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광주광역시가 장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성은 광주 생활권에 완벽하게 편입해있다.
물론 호남선 열차도 운행하고 호남고속도로가 근방으로 지나기 때문에 담양, 화순보다 영향력은 약한 편이지만,
광주의 파급력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동네다.
그 때문인지, 전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장성역 안내판에도 이렇게 광주지하철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제는 왠만큼 큰 역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승차권자동발매기.
하지만, 구형이라서 현금으로 결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것도 머지않아 개조되거나 교체될 듯 싶다.
역 공간이 워낙에 협소해, 입구 오른편의 맞이방에 열차 안내 전광판이 걸려있다.
덕분에 즐겁게 TV를 보면서도 고개만 획 돌리면 바로 오는 열차를 확인할 수 있다.
주요역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KTX가 통과하는 덕에 열차 운행편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편도 기준으로 기껏해야 한시간에 1~2대 정도.
정차하는 열차가 그렇게까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장성역에서는 열차가 정말 '수시로' 지나간다.
그래서 승객 나름대로 자신의 안전 문제에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깔끔하고 세련하지만 KTX가 정차하는 역 치고는 공간이 비좁은 장성역 매표소.
호남선에서 KTX가 서는 주요역 중 계룡역과 더불어 '유이(有二)'하게 도장이 없는 역이다.
없어서는 안 될 중요역이긴 하지만, 다른 역에 비하면 살짝 비중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KTX의 호남선 투입이 결정되면서부터 호남선 전 구간은 대대적인 개량화에 돌입했다.
그로 인해 호남선 대부분의 역들은 정형화된 딱딱한 풍경으로 통일되어 버렸다.
예전의 개성있던 독특한 정취는 모두다 사라져버리고,
빨간 승강장에 위압감이 느껴지는 전차선, 그리고 쭉 뻗은 직선만이 남았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을 살려보기위해 아담하게 꾸며놓았지만,
이렇게 큼직한 역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장성역이 아담한 간이역 수준이라면 이 것들 하나하나가 굉장히 돋보일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이 곳이 어떤 역인지 도저히 감을 잡기가 힘들 것이다.
그만큼 호남선의 주요역들은 전부 정형적인 분위기로 획일화 되어버렸다.
한 가지 색으로만 물을 들이지 말고, 좀 더 다양한 색으로 물을 들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장성역도 다른 여느 역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간이역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한 '큰 역'이다.
그 때문에 백양사 방면으로는 신흥리역이, 송정리 방면으로는 옥정역이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 백양사 방면으로는 안평역이, 송정리 방면으로는 임곡역과 하남역이 남아있는데도
여객열차가 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배제되어 버렸다.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광경이다.
무궁화, 새마을, KTX가 모두 서는 역이기 때문에 정지 표시판도 모두 제각각이다.
무궁화호를 위한 '7량' 정지판, 새마을호를 위한 '10량' 정지판, KTX를 위한 '20량' 정지판.
전부 각각 제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효자들이다.
규모는 굉장히 크지만 한적함이 물씬 느껴지는 주변 풍경.
도시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큼직하게 지어버렸기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폐해만 끼치고 말았다.
저 멀리서 다가오던 디젤기관차가 장성역에서 속력을 늦추며 서서히 통과한다.
무슨 이유로 다른 것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자기 혼자만 선로를 질주하는 것일까...
기관차가 통과하고 장성역은 다시 고요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큰 건물 하나 찾기 힘들고, 역 건물마저도 한구석에 정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장성역은 KTX까지 정차하는 어엿한 대형역이다.
대형역에서의 한적함. 아무데서나 섣불리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송정리 방면으로는 조그마한 산을 둘러가기 위해 둥그렇게 곡선을 돈다.
그리고 곡선을 돌기 직전,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가는 선로를 잠시 밖으로 토해낸다.
비록 스케일은 작지만 중앙선, 태백선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 잠시 펼쳐지는 것이다.
'호남'이라고 하면 흔히들 지평선이 훤히 드러나는 호남평야를 떠올리기 일쑤지만,
이 곳 장성은 그런 평지 지형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해발 500m 규모의 구릉성 산지를 서, 북, 동으로 둘러싸고 있는 '반(半) 분지' 지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산은 많이 보이지만, 의외로 험준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찾을 수 없다.
최소한 백양사역 부근까지는 가야 그나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나 할까...
장성역 주변은 험한 산지를 둘러싸고 있는 '분지'의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노령재를 넘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달려온 KTX가, 장성역을 통과함으로서 완만한 평지에 접근한다.
그리고는 산을 따라 천천히 곡선을 돌아 광주로 진입한다.
장성역은 넓은 평지와 험한 산지가 공존하기 때문에 한결 여유로운 시골의 분위기를 배로 느낄 수 있다.
KTX가 수시로 달리는 바쁜 노선 속에서 왠지 모를 여유로움을 만끽진다.
KTX를 떠나보내고, 입을 잘못 맞춘 새마을호가 다시 역을 통과한다.
KTX에게 밀려 예전의 무궁화 수준으로 입지가 크게 떨어진 새마을호.
입지가 떨어진 만큼 관심도 줄어버려 도색조차도 제대로 맞지 않아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위상을 완전히 잃은 날개 잃은 천사 새마을호는, 그 어떤 수를 써도 예전의 위상을 되찾기는 어려울 듯 싶다.
떠나는 새마을호의 뒷모습이 쓸쓸하기만 하다.
KTX와 새마을을 뒤로 하고, 장성역 바깥을 잠시 내다본다.
봄 햇살을 받아 새롭게 움튼 새싹들이 바람에 넘실대고,
그 뒤로는 한산한 평야와 일직선으로 놓인 야트막한 산지가 보인다.
그리고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단지까지...
장성에서의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다른 풍경을 찾아 어디론가 떠난다.
장성역(長城驛)의 장성(長成)을 염원하면서...
첫댓글 맨 윗사진 간판에 상무대가 눈에 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