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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라는 뜻으로, 마음을 꽉 잡고 그 마음의 중심에 항상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담으라는 말이다.
允 : 진실로 윤(儿/2)
執 : 잡을 집(土/8)
厥 : 그 궐(厂/10)
中 : 가운데 중(丨/3)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중용(中庸)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특출하지 않고 보통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서(四書)의 하나인 만큼 유가에서 말하는 중용은 알기에 쉽지 않다.
이 말이 처음 나오는 중용 제2장의 ‘군자는 중용을 하고, 소인은 중용을 어긴다(君子中庸, 小人反中庸)‘는 공자(孔子)가 한 말로 나온다.
여러 사람의 해석이 있지만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어서 평범하고 바뀌지 않는 이치로 해석한다.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는다는 이 성어는 중국 고대 순(舜)임금이 우왕(禹王)에게 선양하면서 마음을 조심하고 살피라고 당부한 말에 등장한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참된 진리의 마음은 미약하니, 오직 정성을 다해 하나 돼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리라.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이 때의 가운데는 때와 장소, 상황에 알맞은 생각과 처신을 뜻한다. 상서(尙書)라고도 하는 상고시대의 기록 서경(書經)의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편에 실려 전한다.
논어(論語)의 마지막 요왈(堯曰)편에는 이보다 앞서 요(堯)임금이 순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며 당부한다. ‘하늘의 정해진 뜻이 그대에게 와 있으니, 진실로 중용의 도를 지키도록 하라. 천하가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려주신 자리가 영원히 끊어지리라(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여기에는 윤집기중(允執其中)으로 약간 다르지만 요왕에게서 받은 당부의 말을 순임금이 우왕에게 선양과 함께 그대로 전달한 셈이다. 성군이 성군에게 신신당부할 만큼 중용을 지키기가 어렵다.
공자가 강조한 말이 중용에 다시 나온다. 천하를 다스릴 수 있고, 높은 자리도 사양할 수 있으며, 시퍼런 칼날을 밟을 용기도 있지만 ‘중용은 능히 할 수 없다(中庸不可能)’고 토로한다.
성인들도 실천하기에 어려운 중용의 길을 보통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기적이고 각박한 세상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려는 마음을 수시로 바로잡아 중심을 잡는 노력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 윤집궐중(允執厥中)
1931년 7월 1일 중국 창춘(長春)에 가까운 만보산(萬寶山) 지역의 삼성보(三姓堡)에서 농수로 건설을 둘러싸고 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이 충돌했다. 출동한 일본 경찰이 중국 농민에게 발포했지만 사상자는 없었다.
일본의 사주를 받은 창춘의 한국 특파원이 완바오산에서 동포 200여 명이 중국 관민 800여 명에게 살상당했다는 속보를 타전한다.
2일 밤과 3일 새벽 '삼성보(싼싱푸) 동포 수난 갈수록 심해져/ 이백여 명 또 피습/ 중국 농민이 대거 폭행'을 제목으로 한 호외가 발행됐다.
자극적인 과장보도였다. 흥분한 한국인은 서울, 평양, 인천 등에서 중국인 배척 폭동을 일으켰다. 중국인 142명이 살해되고 546명이 부상하고 91명이 행방불명됐다.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언론이 중심을 잡지 못했을 때 어떤 참사가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참담한 역사다.
상대를 이간(離間)하는 반간계(反間計)는 병법 36계의 33번째 책략이다. 만보산(완바오산) 사건은 한국이 일본에 당한 경우였다.
오보한 특파원은 지린(吉林)성 군법처의 한국인 직원에게 사죄서를 쓴 뒤 사살당했다. 다행히 중국인 배척 폭동은 사그라들어 일본이 의도했던 만주침략의 구실이 되지는 못했다.
논어(論語) 요왈(堯曰)편에 '진실로 가운데를 잡으시게. 온 세상 백성들이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린 작위도 영원히 끊어질 것'이란 구절이 나온다.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중국 고대의 성군 요(堯) 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며 한 당부다.
서경(書經)은 이를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오직 희미하니 오로지 정밀하고 한결같게 진실로 그 중정을 잡아야 한다'고 적었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주희(朱熹)는 중용(中庸) 서문에서 중정(中正)을 지키는 윤집궐중(允執厥中)이 주자학의 바탕임을 밝혔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 도입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둘러싼 좌고우면(左顧右眄) 속에 언론 보도가 춤추고 있다.
윤집궐중이 답이요 중정은 국익이다. 문제는 합의된 국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윤집궐중(允執厥中)
DJ 서재에 걸린 김구 선생 친필 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그 가운데를 취하라는 사서 가운데 중용에 나오는 글귀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나면 23일 오후 3시 반쯤 곧바로 운구가 시작된다. 대형 태극기와 영정을 앞세운 운구차량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와 도서관에 머물게 된다.
대통령의 영정이 동교동 사저의 응접실과 식장, 2층 서재와 투석 치료실 등을 마지막으로 들르면서, 외부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고인의 서재와 투석 치료실에 주목하게 한다.
서재와 투석치료실은 책꽂이 하나를 사이에 둔 공간으로 김 전 대통령이 독서를 하고 원고를 집필하며 일주일에 3차례 치료를 받던 개인적인 장소다.
고 김 전 대통령의 서재 책꽂이 옆에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족자가 걸려있다. 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그 가운데를 취하라는 사서 가운데 중용에 나오는 글귀다.
윤집궐중은 중국의 태평시대를 이끌었던 요(堯)임금이 9남 2녀의 자식을 물리치고 나라 안에서 가장 덕망이 높았던 순(舜)임금에게 왕위를 물리며 순 임금에게 준 네 글자다.
마음을 꽉 잡고, 그 마음의 중심에 항상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으라는 뜻으로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남긴 과제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 글귀를 보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국민통합, 남북화해, 평화 통일의 과업을 되새기며 정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숙제를 남겼듯 고 김 전 대통령 또한 우리에게 그 뜻을 전하고 있다.
⏹ 윤집궐중(允執厥中)
4000년 전 중국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나라를 물려주면서 16자의 당부 말씀을 했다.
人心惟危(인심유위)
道心惟微(도심유미)
惟精惟一(유정유일)
允執闕中(윤집궐중)
쉽게 풀이하면 인심은 사납고 법과 원칙도 사라졌으니 정신을 집중해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중용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리라는 말이다.
순(舜)은 우(禹)에게 선위(禪位)를 하면서 칭찬부터 했다. “홍수는 나를 불안하게 했으나 믿음을 기르는 데 성공하여 공을 이룬 것은 오로지 그대의 현명함 덕분이오.”
降水儆予, 成允成功 惟汝賢.
순은 “하늘의 역수(曆數)가 그대 몸에 있으니 그대는 끝내 왕위에 오를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임금으로서의 자세를 이렇게 알려주었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를 향한 마음은 미약하기만 하니 오로지 정신을 하나로 모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도리를 지키시오. 황당무계한 말은 듣지 말고 의논하지 않은 계책은 채용하지 마시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無稽之言, 勿聽, 弗詢之謀, 勿庸.
여기 나오는 유정유일(惟精惟一)과 윤집궐중(允執厥中)은 어지간히도 많이 인용되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9년(1478) 11월 30일, 홍문관 부제학 성현(成俔) 등이 이런 상소를 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몸소 실천하는 돈독한 행실과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효과를 체득하시고 밤낮 없이 노력하여 쉬지 않고 나아가신다면 정일집중(精一執中)의 학문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伏願殿下躬踐履篤行之實, 致修齊治平之效, 勉强惕厲, 進進不已, 則與精一執中之學, 無以異矣.
정일집중(精一執中)은 유정유일(惟精惟一)과 윤집궐중(允執闕中)을 합쳐서 줄인 말이다.
이보다 8년 전인 성종 1년 10월 23일, 성종은 주강(晝講)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 요(堯)임금이 순임금에게 이를 때는 윤집궐중만 이야기했는데,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이를 때는 왜 그렇게 길게 말했느냐는 것이다.
동지사(同知事) 이극배(李克培)는 “이것은 집중(執中)의 공부입니다. 순임금은 대성(大聖)이므로 공부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우임금은 순임금에 미치지 못하므로 공부할 말로 일러 주어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윤집궐중(允執厥中)
人心惟危(인심유위)
道心惟微(도심유미)
惟精惟一(유정유일)
允執厥中(윤집궐중)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미약하니, 정성을 다해 한마음으로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라.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송대 이후 많은 유생이 이 구절이 바로 요임금 이래로 전수되던 유교의 심법(心法)이라고 주장했고 조선 시대의 많은 유학자도 그렇게 믿었다.
이 구절이 위진남북조 시기에 만들어진 것임이 증명돼 요순 이래의 심법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
다만 논어(論語) 요왈(堯曰) 편에 윤집궐중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중국인들이 中을 중시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미미하다는 말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참으로 잘 말해주는 구절이 아닌가? 사람들은 정제되지 못한 욕구와 감정,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잘 들여다보면 인간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추구하는 도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미약해 힘을 잘 발휘하지 못할 뿐이다.
이를 극복하자면 우선 정성을 다해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정성스러운 마음, 집중된 마음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것이 없이는 일상의 작은 일도 성취하기가 힘들다.
그런 다음에 진실로 그 中을 잘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中이라는 말은 우선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고, 공자가 말한 중용의 중으로 볼 수도 있다.
중용의 중에도 양극단을 통합하는 中도 있고, 상황에 따라 적확하게 맞추는 시중(時中)의 中도 있다. 시중의 중, 중용의 중은 너무 고원한 이야기이고 보통 사람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현대인들은 복잡다단한 나날을 보내기 때문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더욱 미미하다. 수시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며 마음의 중심을 잘 잡도록 하자.
⏹ 윤집궐중(允執厥中)
사람이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처세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용(中庸)의 어려움이다.
공자 같은 성인마저 “천하와 국가를 고르게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으며, 시퍼런 칼날이라도 가히 밟을 수 있지만 중용만큼은 능히 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
이는 천하를 다스림은 지혜(智)이고, 벼슬을 멀리하는 것은 어짐(仁)이며, 칼날을 밟을 수 있는 것은 용기(勇)이기에 사람이 지인용(智仁勇)을 고루 갖추면 못할 게 없지만 중용 실천에 비할 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극단을 피하고 중용, 곧 중도(中道) 및 중심(中心)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서경 대우모편(大禹謨篇)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참된 진리의 마음은 희미하니, 오직 정성으로 하나 돼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리라.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중국 고대의 순 임금이 자신의 임금 자리를 우 임금에게 넘겨주면서 마음을 조심하고 살피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이때의 ‘가운데’란 때와 장소, 상황에 알맞은 생각과 처신(隨時處中)을 뜻한다.
후대 논어 요왈편에도 요 임금이 순 임금을 부르며 “하늘의 운수가 너의 몸에 있으니 윤집궐중하라. 동서남북 사해의 백성들이 곤궁해지면 하늘이 주시는 임금의 봉록도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天之曆數, 在爾躬, 允執厥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요 임금 같은 성군과 공자 같은 성인 모두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라’고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왜일까. 단순한 진영(陣營)논리와 특정 이념에 매몰된 이들은 상대에 대해 배타적이고 편협성을 띤다.
현실을 보자. 요즘 같은 개방화된 세상에서 왜곡된 신념체계에 바탕한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중간지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데 한계를 갖는다. 삶을 윤기 있게 만드는 포용과 배려의 필요조건인 중용과 중도의 정신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이다.
⏹ 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중용을 잡아라
堯曰 咨爾舜아 天之曆數在爾躬하니 允執其中하라 四海困窮하면 天祿이 永終하리라 舜이 亦以命禹하시니라
요임금이 말하였다. “아! 너 순아, 하늘의 운수가 너의 몸에 있으니, 진실로 그 중용(中庸)을 잡아라. 사해가 곤궁하면 하늘의 복록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 순임금도 이 말로 우임금에게 명하였다.
(堯曰 1)
축구나 야구, 농구나 배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생각해 보자. 양 팀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보며 관중들은 열광할 것이다. 그런데 선수들 이외에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중요한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휘슬(whistle)을 들고 있는 심판이다. 심판은 경기 중에 정확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심판이 어느 한 팀만 유리하게 판정을 내리는 순간 재미있던 경기는 순식간에 관중들의 야유와 비난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기규칙을 숙지하고, 이 규칙을 선수들에게 공지하여 반칙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또한 경기 중 반칙이 발생했을 때, 중립적 위치에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처럼 최고의 심판은 스포츠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고,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심판의 중요성은 비단 스포츠 경기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어떤 사회단체의 대표자 혹은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 역시 스포츠 경기의 심판과 같은 존재이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 쪽만을 유리하게 하거나 다른 한 쪽을 불리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양자를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구성원들로부터 진정한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에서는 사람이 학문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경지를 중용(中庸)이라고 말한다. 중용은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공자는 “중용의 덕(德)이 지극하다. 중용을 실천할 수 있는 백성이 적어진지 오래되었다(옹야 27).” 혹은 “천하 사람들도 평등하게 할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으며, 날카로운 칼날도 맨발로 밟을 수 있지만, 중용은 어려운 일이다(중용 9장)”라고 말한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중용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다는 말이니, 중용이 어떤 경지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는 중용을 행하고, 소인은 중용에 위배된다(중용 2장)”라고 말하며 중용의 실천 여부에 따라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기도 한다. 결국 쉽게 도달할 수는 없지만, 중용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군자인 것이다.
유교적 전통에 따르면, 현명하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사람을 군자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위정자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반면, 군자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소인의 경우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이유는 매사에 치우친 판단과 과도한 행동을 일삼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의 성왕(聖王)이었던 요(堯)임금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왕위를 넘겨줄 순(舜)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이제 너의 덕(德)이 하늘의 뜻에 합당하여 왕의 자리를 너에게 주겠노라. 그러나 천명(天命)을 받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천하 만물에는 모두 중(中)의 도리가 있고 하늘의 이치가 있다. 네가 마음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지 말고 일을 처리할 때마다 진실로 중용을 잡아 백성을 다스린다면, 온 천하가 그 덕(德)을 입어 천명을 오래도록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중용을 잡지 못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곤궁하게 만든다면 천명이 영원히 끊어져 버릴 것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여기에서 등장한 말이 바로 ‘진실로 중용을 잡음’이라는 말이다. 결국 천하를 잘 다스리는 방법이란 설명하기 어려운 고차원적인 원리가 아니라 그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중심잡기’인 셈이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유언으로 남긴 윤집기중(允執其中)이란 4글자는 순임금에 의해 다시 16글자로 정리되어 우(禹)임금에게 계승된다.
이것이 바로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미세하니,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해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는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육체의 욕구에서 나온 인심(人心)은 항상 한쪽으로 치우치고 위태롭지만, 본성의 의리에서 나온 도심(道心)은 밝히기가 어렵고 어두워지기 쉽기 때문에 미세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쉽게 표출되는 인심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도심을 밝혀 중용의 도리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훌륭한 지도자란 매사에 중립(中立)을 지키고 공평함을 유지할 때 그 판단의 공정성과 진정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말이다.
▶️ 允(맏 윤/진실로 윤, 마을 이름 연)은 회의문자로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厶(사; 임용)와 儿(인; 어진 사람)의 합자(合字)이다. 어진 사람을 임용함의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允(윤, 연)은 ①맏, 아들 ②진실(眞實) ③믿음 ④진실로, 참으로 ⑤미쁘다(믿음성이 있다) ⑥마땅하다, 합당(合當)하다 ⑦승낙(承諾)하다, 허락(許諾)하다 ⑧아첨(阿諂)하다, 그리고 ⓐ마을의 이름(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맏 백(伯), 맏 맹(孟)이다. 용례로는 임금이 허가함을 윤허(允許), 임금이 허가함을 윤가(允可), 임금이 허가를 내림을 윤하(允下), 잘 어울림 또는 성실히 화합됨을 윤해(允諧), 진실로 맞음이나 이치에 적합함을 윤당(允當), 임금이 윤허하여 내리는 말씀을 윤음(允音), 임금이 승인하는 명령을 윤명(允命), 남의 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을 윤옥(允玉), 남의 조카를 높여 이르는 말을 윤질(允侄), 웃어른에게 편지할 때에 그의 장성한 아들을 이르는 말을 윤우(允友) 또는 윤군(允君),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 사람의 아들을 일컫는 말을 윤애(允哀), 남의 말에 좇아 따름을 윤종(允從), 진실로 공손함을 윤공(允恭), 허락하여 받아들임을 윤납(允納), 임금에게 상소하여 허가를 받음을 몽윤(蒙允), 임금이 신하의 청원을 허락하지 아니함을 불윤(不允),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의 아들을 이르는 말을 애윤(哀允), 남을 높이어 그의 아들을 이르는 말을 현윤(賢允), 임금이 신하의 청원하는 말을 들어 주거나 들어 주지 아니하는 일을 위윤(違允), 임금의 허가를 받음을 승윤(承允) 등에 쓰인다.
▶️ 執(잡을 집)은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执(집)의 본자(本字)이다. 幸(행; 쇠고랑)과 丮(극; 꿇어 앉아 두 손을 내밀고 있는 모양)의 합자(合字)이다. 따라서 그 손에 쇠고랑을 채운다는 뜻을 나타낸다. 또는 음(音)을 나타내는 (녑, 집)과 丸(환; 손을 뻗어 잡는다)로 이루어졌다. 죄인(罪人)을 잡다의 뜻이 전(轉)하여 널리 잡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執자는 ‘잡다’나 ‘가지다’, ‘맡아 다스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執자는 幸(다행 행)자와 丸(알 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執자의 갑골문을 보면 죄수의 손에 수갑을 채운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執자는 이렇게 죄수를 붙잡은 모습을 그려 ‘잡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후에 금문과 소전을 거치면서 수갑은 幸자로 팔을 내밀은 모습은 丸자가 대신하면서 지금의 執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執(집)은 ①잡다 ②가지다 ③맡아 다스리다 ④처리하다 ⑤두려워 하다 ⑥사귀다 ⑦벗, 동지(同志) ⑧벗하여 사귀는 사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잡을 액(扼), 잡을 파(把), 잡을 구(拘), 잡을 착(捉), 잡을 포(捕), 잡을 조(操), 잡을 나(拏), 잡을 나(拿), 잡을 지(摯), 잡을 체(逮), 잡을 병(秉)이다. 용례로는 일을 잡아 행함을 집행(執行), 정권을 잡음을 집권(執權), 어떤 것에 마음이 늘 쏠려 떨치지 못하고 매달리는 일을 집착(執着), 고집스럽게 끈질김을 집요(執拗), 마음에 새겨서 움직이지 않는 일념을 집념(執念), 붓을 잡고 작품 등의 글을 씀을 집필(執筆), 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 메스를 잡음을 집도(執刀), 나라의 정무를 맡아봄 또는 그 관직이나 사람을 집정(執政), 주인 옆에 있으면서 그 집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집사(執事), 사무를 봄을 집무(執務), 병의 증세를 살피어 알아냄을 집증(執症), 정의를 굳게 지킴을 집의(執義), 허가 없이 남의 토지를 경작함을 집경(執耕), 뜻이 맞는 긴밀한 정분을 맺기 위한 계기를 잡음을 집계(執契), 고집이 세어 융통성이 없음을 집니(執泥), 자기의 의견만 굳게 내세움을 고집(固執), 편견을 고집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음을 편집(偏執), 굳게 잡음을 견집(堅執), 집착이 없음을 무집(無執), 거짓 문서를 핑계하고 남의 것을 차지하여 돌려보내지 않음을 거집(據執), 남에게 붙잡힘을 견집(見執), 제 말을 고집함을 언집(言執), 어떤 일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고 굳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의집(意執), 서로 옥신각신 다툼을 쟁집(爭執),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는 일을 망집(妄執),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리에 집착함을 미집(迷執),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여 양보하지 아니함을 확집(確執), 전하여 주는 것을 받아 가짐을 전집(傳執), 마땅히 나누어 가져야 할 재물을 혼자서 모두 차지함을 합집(合執), 뜨거운 물건을 쥐고도 물로 씻어 열을 식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적은 수고를 아껴 큰 일을 이루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집열불탁(執熱不濯), 더우면 서늘하기를 원한다는 집열원량(執熱願凉),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막집중(子膜執中), 고집이 세어 조금도 변통성이 없음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고집불통(固執不通) 등에 쓰인다.
▶️ 厥(그 궐)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민엄호(厂; 굴바위,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欮(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상형문자로 厥자는 ‘그것’이나 ‘오랑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厥자는 厂(기슭 엄)자와 欮(상기 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厥자는 매우 단순했다. 갑골문에서는 마치 국자와 같은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목축(牧畜)하던 사람들이 양이나 소 떼를 몰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를 그린 것이다. 돌멩이를 넣어 던지던 새총의 일종이라고도 한다. 후에 소전에서는 양과 사람이 결합하여 지금의 厥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니 厥자에 쓰인 厂자는 새총이 간략화된 것이고 欮자는 양(羊)과 사람(欠)이 변형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厥자는 유목민족이었던 ‘돌궐족’을 뜻하거나 ‘그’나 ‘그것’과 같이 오랑캐를 얕잡아 부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厥(궐)은 ①그, 그것 ②오랑캐의 이름 ③상기(上氣: 피가 머리로 몰리는 병) ④병명(病名), 냉증(冷症) ⑤꼬리 짧은 개 ⑥흔들리는 모양 ⑦짧다 ⑧숙이다, 앞으로 숙이다 ⑨발굴(發掘)하다 ⑩다하다, 진(津)하다, 있는 대로 다 들이다 ⑪굽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함을 궐각(厥角), 그 분을 궐공(厥公), 그 사람이나 그 자란 뜻을 궐야(厥也), 그 여자의 뜻으로 낮춰 이르는 말을 궐녀(厥女), 그 사람의 낮은 말을 궐자(厥者), 짧은 꼬리를 궐미(厥尾), 다음 날 날이 밝을 무렵을 궐명(厥明), 그 끝을 궐종(厥終), 그 처음을 궐초(厥初), 그 이후를 궐후(厥後), 그 물건을 궐물(厥物), 동요하는 모양을 궐이(厥弛), 그 달이라는 뜻으로 부인의 산월을 넌지시 이르는 말을 궐월(厥月), 체온이 식을 때 생기는 모든 병증을 궐랭(厥冷), 몸에 열이 난 뒤에 몸안에 열이 막히고 팔다리에 양기가 가지 않아 손발이 차지는 증세를 열궐(熱厥) 또는 양궐(陽厥), 오한이 나고 수족의 궐랭이 생기는 열병을 음궐(陰厥), 오한이 나고 손발이 싸늘해지는 열병을 한궐(寒厥), 정신이 아찔하여 급작스레 업드러져서 까무러치는 병을 시궐(尸厥), 회가 성하여 마음이 번거롭고 속이 메시꺼운 병을 회궐(蛔厥),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갑자기 손발이 차지며 졸도하고 말을 못하는 증세를 식궐(食厥), 비를 많이 맞아 몸이 젖음으로써 그 습기 때문에 어지럽고 머리가 아픈 병증을 습궐(濕厥), 피돌기가 나쁘고 몸 온도가 내려 생기는 머리앓이를 일컫는 말을 궐두통(厥頭痛), 마음이 흥분되어 일어나는 가슴앓이를 일컫는 말을 궐심통(厥心痛), 찬 기운이 머릿골을 범하여 머리가 아프고 이가 아픈 증세가 함께 일어나는 병을 일컫는 말을 궐역두통(厥逆頭痛), 신하가 임금에게 예물로 바치는 물건을 일컫는 말을 비궐지헌(篚厥之獻), 남의 마음을 속속들이 헤아림을 일컫는 말을 구궐심장(究厥心腸), 도리를 지키고 착함으로 자손에 좋은 것을 끼쳐야 함을 이르는 말을 이궐가유(貽厥嘉猷) 등에 쓰인다.
▶️ 中(가운데 중)은 ❶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물의 한가운데를 상하로 통하는 세로 금으로 중심, 중앙을 뜻함과 형제를 위로부터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고 일컬을 때의 仲(중)으로서 쓰인 것이다. 또는 깃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상형문자로 中자는 ‘가운데’나 ‘속’, ‘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전에는 中자가 무언가를 꿰뚫는 모습을 그렸던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이것이 군 진영에 깃발을 꽂아놓은 모습을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中자는 진지 중앙에 펄럭이는 깃발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나 ‘중앙’을 뜻하고 있다. 中자가 ‘중앙’이라는 뜻으로 쓰이다 보니 때로는 ‘속’이나 ‘안’, ‘마음’과 같은 사물의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中(중)은 (1)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의 뜻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을 나타냄 (2)등급 같은 것을 上中下(大中小)로 구분할 경우 그 가운데 등급 중등(中等) (3)중국 (4)장기판에서 끝으로부터 둘째의 가로줄을 이르는 말 (5)마음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운데 ②안, 속 ③사이 ④진행(進行) ⑤마음, 심중(心中) ⑥몸, 신체(身體) ⑦내장(內臟) ⑧중도(中途) ⑨절반(折半) ⑩장정(壯丁) ⑪관아의 장부, 안건(案件) ⑫가운데 등급 ⑬중매(仲媒), 중개(仲介) ⑭중국(中國) ⑮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둘째, 다음 ⑯가운데에 있다 ⑰부합하다, 일치하다 ⑱맞다, 맞히다, 적중시키다 ⑲급제하다, 합격하다 ⑳해당하다, 응하다 ㉑뚫다 ㉒바르다, 곧다 ㉓가득 차다 ㉔이루다, 이루어지다 ㉕고르다, 고르게 하다 ㉖간격을 두다 ㉗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중도에서 끊어짐을 중단(中斷), 한가운데를 중심(中心), 사방의 중심이 되는 곳을 중앙(中央),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 중추(中樞), 일이 되어 가는 동안 중도(中途),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중추(中樞),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중간에서 이어줌을 중계(中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도중(途中), 하늘이나 하늘 가운데를 공중(空中), 마음 속을 심중(心中), 도시의 안을 시중(市中), 정신을 집중시킴을 열중(熱中),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을 인중(人中),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다는 중석몰촉(中石沒鏃),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밈을 중상모략(中傷謀略), 일을 하다가 끝을 맺지 않고 중간에서 그만 둠을 중도이폐(中途而廢), 마음속의 욕망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외부의 사악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을 중경외폐(中扃外閉),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중립불의(中立不倚),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마음속에 일정한 줏대가 없음을 중무소주(中無所主), 덕성이 발라서 과불급이 없는 화평한 기상을 중화지기(中和之氣),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고 중간에 흐지부지 한다는 중도반단(中途半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