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연쇄살인범 파일
어쩌면 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경고 표지만 있었더라면. 적어도 제프리 다머의 경우 그 경고 표지는 아주 불길했다. 상당히 불길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정서 불안을 겪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모두 제프리 다머처럼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모두 괴물이 될 확률은 사실 희박하다.
다머는 밀워키에서 태어나 오하이오 주 베스라는 쾌적한 중산층 주거지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사이가 아주 나빴고, '언제나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는 것이 다머가 말한 부모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었다. 끝없이 말다툼을 벌이는 부모는 자신들의 큰아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친구도 없이 방치된 다머는 그 자신만의 공상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다머에게는 별난 취미가 있었다. 작은 동물을 죽여 껍질을 벗기고 염산을 부어 살점을 녹이는 것이었다. 집 뒤의 가축우리에 그는 다람쥐 해골을 모아서 전시했다. 한편 집 옆에 자신만의 은밀한 동물 묘지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체를 반드시 매장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따금 나무에 꽂아두기도 했다.
애정결핍에 시달린 다머는 자포자기식의 행동에서 위안을 찾았다. 고등학교는 별 탈 없이 다녔는데, 그래도 종종 기묘한 행동을 보였다. 그는 수업시간에 양처럼 매애 하고 우는 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복도에서 간질환자처럼 느닷없이 쓰러지기도 했다. 고교 졸업앨범에 사진을 실을 우등생을 모아놓은 자리에 몰래 끼어들기도 했다. 이 장난은 사진을 현상한 뒤에야 발각되었다. 담당교사는 대단히 화가 나서 매직펜으로 다머의 얼굴을 검게 지워버렸다. 결국 졸업 앨범에 실린 사진 속의 다머는 다른 학생들에 둘러싸인 검은 얼룩으로 남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적절한 모습이었다. 이 무렵 다머의 삶에는 죽음과도 같은 암흑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그는 폭음을 시작했으며, 고문, 절단, 죽음에 대한 환상이 갈수록 강렬해지고 강박적이 되어갔다.
1975년의 어느 날, 이웃 소년들 몇몇은 다머의 집 뒤편에 있는 숲길을 어슬렁대며 걷다가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한다. 장대에 개의 목이 잘린 채로 꽂혀 있었던 것이다. 소년들은 그 근처에서 가죽을 벗기고 창자를 빼낸 개의 몸뚱이가 나무에 못박혀 있는 것도 보았다.
1978년 다머가 졸업을 앞두고 있을 당시 그의 부모는 지겨운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부부는 갈라졌고 각자의 길을 갔다. 다머는 집에 홀로 있게 되었고, 갈수록 혼란해지는 환상만 그의 곁에 남았다.
다머는 어머니가 집을 떠난 지 몇 주가 지난 뒤, 스티븐 힉스라는 히치하이커를 알게 되었고,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둘은 맥주를 나눠 마시고 잡담을 나누었으며 성관계도 했다. 힉스가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을 때 다머는 바벨로 그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목을 졸라 죽였다. 다머는 사체를 집 아래의 바닥 밑 공간에 끌어내린 뒤 절단했고, 비닐봉지에 사체 일부를 담아두었다. 그 후 뼈를 묻었는데, 이 뼈는 나중에 다시 파내서 쇠망치로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집 뒤편의 나무가 우거진 골짜기에 뿌렸다.
제프리 다머가 살인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던 이 무렵의 그의 나이는 불과 18세였다.
이후 한동안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오하이오 주립 대학을 몇 달 다니다가 그만 두고 나온 뒤 군에 입대했다. 동료 군인들에게 그는 '평범한 청년'이었는데, 술을 마시기 전까지만 그랬다. 다머는 술에 취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침울하고 공격적이면서 거만한 행태를 보였다. 다머는 애초 6년간 군 생활을 하려고 했지만, 2년 뒤에 전역했다.
군대에서 나온 다머는 밀워키 주 근방의 웨스트앨리스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갔고, 혈액은행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1985년에 그는 초콜릿 공장에 취직했으며, 같은 해에 다른 어떤 일을 겪게 되었다. 그 일은 아주 중대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거의 6년간 잠잠하던 무서운 병세가 되살아난 것이다.
그는 게이 바를 돌아다녔으며, 어느 날 밤 그는 한 남자를 만나 호텔에서 묵었다. 두 사람은 술에 취했고, 성관계를 했으며,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아침 다머가 깨어났을 때 남자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다머는 가까운 상점가에서 여행가방을 사서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가방 속에 시체를 구겨넣었고, 택시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시체를 절단하고 유기했다.
1년 뒤 다머는 살인을 또 저질렀다. 클럽에서 동성애자 한 명을 만나 할머니 집으로 데려온 뒤의 일이었다. 다머는 죽은 사내의 해골에서 살을 모두 벗겨낸 뒤 엽기적인 기념물을 만들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희생자가 또 나왔다.
다머는 이후 몇 년간 법적인 문제를 여러 번 일으켰다. 그는 음란하고 외설스러운 행동을 보였는데, 1986년에는 몇몇 아이들 앞에서 오줌을 싸는 행동을 보여 체포되었다. 2년 뒤 13세의 라오스 소년을 밀워키의 아파트로 끌어들여 진정제를 섞은 음료를 먹인 다음 능욕했다. 2급 성폭행과 음란한 목적의 아동 유괴 혐의로 체포된 그는 감옥에서 10개월을 지냈고 1990년 3월에 석방되었다.
이듬해에 다머는 남자 세 명을 더 죽였다. 한때 이웃주민들은 그의 아파트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을 알았다. 이웃들이 다머의 집에 몰려가 불만을 털어놓자 그는 자기 집 냉장고가 고장 나서 고기가 썩었다고 해명했다. 그가 무척 미안해했기 때문에 이웃들은 그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
1991년 5월, 그는 거의 체포될 뻔했다. 27일 자정이 막 지났을 무렵 벌거벗은 채 피를 흘리는 10대 소년이 골목길을 달려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그러나 경찰이 탐문을 벌였을 때 다머는 또다시 교묘한 말재주로 경찰을 안심시켰다. 그는 자신과 소년이 동성애를 나누는 연인 사이며, 사소한 실랑이를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어리둥절해하는 14세 소년을 다머의 손에 넘겨주었다.
이 10대 소년의 유해는 나중에 납골당이나 다름없는 다머의 집에서 다른 유해들과 섞인 채 발견된다.
이후 두 달 동안 다머의 손에 희생된 수는 다섯 명이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다가 1991년 7월, 무더운 여름날 늦은 밤중에 밀워키의 순찰 경찰 두 명은 한 손에 수갑을 차고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정신 나간 사내와 마주치게 되었다. 사내는 숨을 헐떡이면서 순찰차에 달려와 다머의 아파트 건물을 다급하게 가리키며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말을 조급하게 털어놓았다. 경찰은 조사에 착수했고, 믿지 못할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제프리 다머의 공포의 방도 찾아냈다.
침실의 장롱 서랍장은 사체 일부와 절단된 시신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가득했다. 그 중에는 젖꼭지 밑 부분이 염산에 녹아 사라진 사람의 몸통 사진도 있었다. 끔찍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냉동고 안에서 남자의 머리통 세 개와 장기 일부, 창자, 허파, 간, 신장, 심장을 찾아냈다. 다머는 그 심장을 나중에 먹으려고 했다고 훗날 털어놓았다.
베이킹 소다를 담아둔 상자 옆 냉장고에서도 머리통 하나가 발견되었다. 아파트 곳곳에는 두개골 7개, 완전한 해골 5구, 뼈 조각, 부패한 손, 성기 등 갖가지 신체 부위가 감춰져 있었다. 그 밖에도 염산통, 마취제 클로로포름, 방부제 포름알데히드, 또 전기톱도 세 개나 나왔다.
이 소름끼치는 기념물들은 모두 11명의 유해였다. 훗날 다머는 자신이 모두 17명을 죽였다고 자백했다.
다머의 끔찍한 범행이 알려지자 미국 전체는 충격에 빠졌다. 1992년 재판에서 다머의 변호사는 그의 잔인한 행동들, 예를 들어 '자물장에 두개골을 보관하거나, 식인을 일삼거나, 시체를 보관한다든지, 시체 성애 증상을 나타내고, 전두엽 절제와 피부 제거를 한 행동'이 그가 정신병자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정신 이상에 따른 범행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다머는 최후진술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은 1994년 11월에 이루어졌는데, 다른 죄수의 몽둥이가 그를 죽게 했다.
다머의 시신은 화장될 예정이었지만, 그의 뇌를 빼놓는 문제 때문에 그의 부모 사이에서는 또다시 한바탕 극심한 논쟁이 벌어졌다. 다머의 어머니는 아들이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주장했으며, 아들의 뇌를 연구단체에 기증해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신경학적 원인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한편 다머의 아버지는 모든 일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다면서 아들의 장기를 없애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 문제는 1995년 12월에야 결정이 내려졌다. 판사는 다머의 유언장과 그의 진술을 거론하며 뇌를 화장하도록 지시했다.
첫댓글 나쁜새끼긴한데불쌍하다
밀워키에서 태어나 오하이오 주 베스라는 쾌적한 중산층 주거지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사이가 아주 나빴고, '언제나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는 것이 다머가 말한 부모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었다. 끝없이 말다툼을 벌이는 부모는 자신들의 큰아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친구도 없이 방치된 다머는 그 자신만의 공상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그게 니 더러운짓의 배경이 될 순 있겠지만 이유는 될 수 없다.............
그래..안좋은환경이라고다살인자가되는건아냐..그치만 또한번부모의중요성이느껴지는미친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