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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대곡사
대곡사의 대웅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으로, 탑몸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靑石塔)이다.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절을 지었으며 처음에는 대국사라 이름하였다가 다시 대곡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 탑은 전체 높이가 173㎝로서,
상륜부는 없어졌으나 화강암으로 된 기단부와 점판암으로 된 탑신부는 약간의 손상을 입은 상태로 남아 있다. 땅에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기단부의 바닥돌은 사각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에 함께 기단부를 형성하는 하대석이나 중대석, 연화대좌, 상대석이 차례로 놓여져
있다.
탑신부는 현재 12층이 남아 있는데 각층은 몸돌은 없고 지붕돌(옥개석)만 쌓여 있는 상태이다. 각층의 지붕돌은 위로 갈수록 일정한 비율로 축소되어 있는데 6층과 7층은
체감비율이 급격히 줄어 들어 그 사이 한층의 지붕돌이 없어진 것 같아 원래는 13층을 이루었으리라 짐작된다.
대곡사 다층석탑은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보물 제518호)보다는 조금 늦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적어도 그 시기가 11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각층의 몸돌이 남아 있지 않고 지붕돌도 약간의 손상을 입었지만 12층까지의 지붕돌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고려 초기의 청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 준다.
경북 고령 반룡사
반룡사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대가야 유물전시관 보관) 바닥돌은 화강암을 2단으로 높게 쌓아 마련하였고, 그 위로
점판암으로 만든 2층의 기단(基壇)과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점판암은 벼루를 만들 때 쓰이던 재료로 부서지기 쉬운
특성이 있는데, 이 탑 역시 위층 기단의 가운데돌과 탑신부의 각층 몸돌이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윗면에 연꽃이 새겨진 기단 각 층의
맨윗돌은 탑신부의 지붕돌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이러한 모습의 탑은 통일신라 후기에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많이 세웠는데, 이 탑도 이 때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자그마한 규모와 단아한 자태는 뒤편의 화단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염불암
동화사에 딸린 암자인 염불암 안마당에 서 있는 탑으로, 원래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점판암을 이용해 만든
탑인데, 이 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닥돌 이외에는 모두 이 재질의 돌이 쓰였다.
탑은 3단의 바닥돌 위에 쌓아 놓았는데, 세울
당시에는 기단(基壇)과 탑신부(塔身部)의 몸돌들이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10개의 지붕돌만이 포개진 상태이다. 지붕돌은 파손이
심하여 곳곳에 작은 돌을 괴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다.
지붕돌은 밑면에 2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 느린 경사가 흐른다.
또한 두께가 얇고, 네 귀퉁이에서 곡선을 그리듯 한껏 들려 있어 경쾌한 멋을 이끌어낸다. 지붕돌의 비례는 그리 아름답지 않으나, 넓다란 바닥돌
위에 세워 놓은 작은 규모의 탑으로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청석탑이 널리 유행하던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경남 합천 해인사 원당암 |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호국신앙의 요람인 해인사의
원당암 경내에 위치하는 다층(多層) 석탑이다. 탑신(塔身)이 점판암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청석탑(靑石塔)으로 특수한
석탑이다. 점판암은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는 석재이다. 땅과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은 화강암 석재를 이용하여 3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 탑신을 받치는 기단(基壇)과 지붕돌은 점판암으로 이루어졌다. 기단은 1층이며 밑면에는 돌아가며 연꽃문을 장식하였고, 윗면은 네 모서리에 대리석 돌기둥을 세웠으며 맨윗돌에는 연꽃문을 새겼다.탑신의 몸돌은 남아있지 않고 지붕돌만 10층이 쌓여 있다. 지붕돌은 경사진 4면이 매우 평평하고 얇으며 밑면엔 낮은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고 처마는 직선형이나 네 귀퉁이가 위로 살짝 들려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화강암으로 만든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낮게 있고, 그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높직하게 남아 있다. 청석탑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지만 이 석탑은 신라 말에 만들어져 청석탑의 선구라 할 수 있다. 석탑 옆의 석등은 거의 동일한 시대의 작품이다. 땅과 맞닿은 6각형의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과 중간받침돌, 지붕돌로 이루어졌는데, 아래받침돌과 지붕돌이 점판암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재는 화강암이다. 현재는 지붕돌 밑의 불을 밝히던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이 남아 있지 않다. 중간받침돌은 가늘고 긴 편으로 아래위에 상(上)·하(下)의 글자가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붕돌은 6각형으로 윗면은 편평하며, 머리장식은 원기둥모양의 돌 하나가 얹혀있을 뿐이다. |
경남 창녕 영산 법화암 |
BR>법화암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 다층석탑으로,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유행한 청석탑(靑石塔) 또는
와탑(瓦塔)의 형태를 띠고 있다. 본래 영취산 위 보림사 소속 암자에 있던 것을 현재의 법화암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 전한다.
탑은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과 같은 독특한 모습으로, 기단부(基壇部)는 화강암이고 탑신부(塔身部)는 점판암(벼루를 만들 때 사용되는 돌)으로 되어 있다.연꽃을
새긴 기단은 불단과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현재 탑신은 몸돌 1개와 지붕돌 7개만 남아있다.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상징하는 선이 그어져 있고,
얇게 만든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 있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을 대신한 다른 종류의 자연석이 놓여 있다. 석재를 많이 잃어버렸지만 원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점판암이라는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경남 진주 두방암 |
두방암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원래 법륜사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으로 절이 없어져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푸른빛이 도는 점판암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일명 청석탑(靑石塔)이라 한다. 기단부(基壇部)의 바닥돌은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시멘트로 만들었고, 각 기단의 맨윗돌에는 연꽃을 새겨
장식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부서지기 쉬운 돌의 특성상 상자모양의 몸돌과 얇은 지붕돌을 교대로 높게 쌓아 올렸다. 새로 만든
바닥돌이 기단의 폭보다 좁고 높아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고 불안정하다. 하지만 다른 청석탑에 비해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편으로 청석탑이
유행하던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 원주 보문사 |
보문사터로 알려진 곳에 지금의 절을 새로 지을 때 중 땅속에서 발견된 탑으로, 점판암(벼루를 만들던 돌)으로
이루어진 청석탑이다. 2층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구조인데, 기단과 탑신의 모습이 비슷하여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현재는 이 탑을 보호하기 위해 탑의 아래에 화강암의 높고 널찍한 2층의 단을 마련해 놓았다. 아래·위층 기단은
윗면에 연꽃을 새겨놓았고,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불교문자인 범어(梵語)를 새겼다. 현재 탑을 이루고 있는 전체가 모두 원래의 것은
아니고, 탑신의 2·3·4층의 몸돌과 5개의 지붕돌, 두 기단의 맨윗돌 외에는 최근에 새로 만들어 끼워놓은 것이다.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탓인지 심하게 닳고 부서진 부분이 많으나, 고려시대의 청석탑 양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탑이다.
충남 아산 세심사 |
고려시대에 창건된 세심사는 원래 ‘신심사’였다가 최근에 세심사라 그 이름이 바뀌었다. 절안에 자리하고 있는 이
탑은 3층 기단(基壇) 위로 9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기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탑신부는 벼루를 만드는 돌인 점판암으로 제작하였다.
3층을 이루는 기단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곳곳에 연꽃무늬를 새겨놓았다. 탑신부는 1층 몸돌만 4단의 널돌로 만들었고, 나머지 여덟 층의 몸돌은 모두 1매의 널돌로
만들었으며, 각 몸돌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2단씩이고,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네 귀퉁이는 들려 있지 않고 깎여 있다. 꼭대기에 놓인 점판암의 머리장식들은 후대에 새로 조각하여 얹어놓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돌을 다듬은
수법과 재질의 특수성·조각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짐작된다.
원래는 탑신의 몸돌이 없어져 기단 위에 지붕돌만이 남아
있었는데, 1956년 일타·도견 두 스님이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전북 김제 금산사 |
금산사 소속의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을 현재 자리인 대적광전 앞의 왼쪽으로 옮겨 왔다.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만든 정사각형의 탑인데
비해, 이 탑은 흑백의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다층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에는 연꽃조각을 아래위로 장식하였다.탑신부(塔身部)는 각 층마다 몸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장
위의 2개 층에만 남아 있다. 몸돌은 각 귀퉁이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좌불상(坐佛像)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에서 아주 느린 경사를 보이다가, 아래의 각 귀퉁이에서 우아하게 들려있다. 밑면에는 받침을
두었는데, 그 중심에 용과 풀꽃무늬를 새겨놓았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남은 것이 없었으나, 훗날 보충한 화강암으로 만든 장식이 놓여
있다.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점판암을 사용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각 층의 줄어드는 정도가 온화하고
섬세하다. 몸돌과 지붕돌에 새겨진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탑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