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첫째 주일에, 하날새에서 드리는 하늘빵의 제목은 '체피토와 체피타'입니다.
남미의 콜롬비아에는 합법적으로 남의 빚을 대신 받아주는 이색적인 회사들이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런 회사들은 지방까지 진출하여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이들 회사들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영업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 회사의 남자 직원을 일컬어, '체피토'라 부르고 여자 직원을 '체피타'라 부릅니다.
이들 '체피토'와 '체피타'들은 채무자가 있는 곳이라면, 가정과 직장은 물론 심지어는 화장실까지라도 따라가서 빚을 받아 냅니다. 그래서 "체피토와 체피타는 채무자가 있는 곳이라면 무덤까지 찾아간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체피토'와 '체피타'는 시대에 걸맞지 않게, 또한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검은 턱시도 차림에 검은 모자를 쓰고, 한 쪽 손에는 '데오도르 므르소'..., 우리말로는 '빚쟁이'라는 흰 글씨를 쓴 '공공칠' 검은 가방을 들고, 다른 한쪽 손에는 검은 지팡이를 짚고 빚진 자들을 찾아갑니다. 이들의 모습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죽음의 사자'와 흡사합니다. 죽음의 사자 같은 '체피토' 와 '체피타'를 만나고도 빚을 갚지 않을 배짱을 가진 자는 많지 않습니다.
빚을 지게 되면 빚을 갚든지 아니면 마음 좋은 채권자를 만나 탕감을 받든지 해야 채무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지구 어디에 숨어살아도 채무감은 항상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죗값이라는 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 말씀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신 말씀은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 말씀에는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습니다. 죄를 짓게되면 예외 없이 죽는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렀습니다.
이 죗값을 갚지 않고 벗어날 수가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죄인은 죄를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이 죗값은 '사망' 아닌 다른 것으로는 갚을 수가 없습니다. 죗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죗값을 물질이나 사람의 공덕이나, 삼보일배하는 것으로나 누군가의 기도로 갚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선행으로, 또는 인간의 공덕으로, 또는 많은 돈으로 죗값을 대신 지불하겠다 하는 종교도 있었으며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더 많은 죄를 빚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 해야 죗값을 치르고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죗값을 치르지 않으면 하나님이 보낸 '체피토'와 '채피타'가 죽음 건너편까지 따라옵니다. '아도니 베섹'은 70명의 왕들을 잡아 그들의 손과 발의 엄지를 모두 잘라버리는 무자비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훗날 그 자신이 유다에게 잡혀 수족의 엄지가 모두 끊겼을 때 후회하기를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면서 죽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이 범한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만 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어느 교회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어 아내와 두 아이들과 함께 갔습니다. 아이들은 친척 아이들과 오랜만에 만났던 관계로 교회 마당에서 함께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한창 진행 중인데 얼굴이 벌겋게 달궈진 사람이 우리 집 아이 목덜미를 잡아 쥔 채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축구를 하다가 자기 집 응접실의 대형 유리창을 깨뜨렸으니 배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집 아이에게는 '체피토'였습니다.
그날 깨어진 유리값을 변상한 것은 누구였겠습니까?
유리를 깬 것은 저의 아들이었으나 배상은 내가 대신했습니다. 저는 백배사죄하고 깨뜨린 유리창 값을 배상했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변상해 줄 능력도 자격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죄는 우리가 짓고 죗값을 대신해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죗값을 대신할 능력도 없으며 자격도 없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대신하신 것입니다.
죗값은 사망이므로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죗값은 형벌이므로 예수님이 십자가 형벌을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사람으로 죽으시므로 사망이 예수님을 가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이 우리 죗값을 다 치러주셨으므로 우리 역시 죄에 매여있지않게되었으므로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체피토'와 '체피타'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 '하날새에서 드리는 ‘하늘빵'은 '하나님이 늘 주시는 일용할 빵'의 줄임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