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의 죽음과 교훈
숙종 초기 서하 이민서(李敏敍) 선생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죽음과 관련하여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망친 역사를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당시 송강 정철과 우계 성혼이 모두 당쟁의 화(禍)를 입은 시초였으며, 의병(義兵)을 일으킨 김덕령(金德齡) 장군도 무고(誣告)를 당하여 체포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 가운데 여러 장수들이 꺼리고 질투하는 바였고, 또한 권세 있는 사람들이 안에서 그것을 도왔기 때문에 드디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 이렇게 김 장군이 죽은 이후부터는 여러 장수들이 모두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 회의를 품었고, 또 제 몸을 보전하지 못했던 바, 곽재우(郭再祐) 장군은 드디어 군사를 해산시키고 은둔했으며, 이순신 장군도 싸움에 임하여 갑옷을 벗고 탄환에 맞아죽었으니(李舜臣方戰免冑自中丸以死), 이후 호남과 영남의 부자 형제들이 의병(義兵)은 되지 말라고 서로 경계하였다.”(서하 이민서, ‘김충장공유사(金忠壯公遺事)’, 권3).
서하 이민서 선생 남긴 이 역사 비평은 당시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타락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평가함으로써, 이순신 장군의 자살이라는 선택도 하나의 필연적인 사건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숙종 후기 소재 이이명(李頤命) 선생은 이순신 장군을 조상한 글 ‘조이장군(弔李將軍)’에서 “또 의심하되 장군은 그러한 기미를 미리 알았을 것이라 하여 마침내 갑옷을 벗고 적중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하나, 나는 장군의 마음을 본시 알고 있는 바, 어찌 닥쳐올 화(禍)를 겁내어 자기 생명을 가벼이 하였겠는가.”라고 쓰고 있다.
이상이 충무공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의 핵심인데 이순신 장군 자살설이 난후 근 100년 가까이 이어온 뿌리 깊은 주장임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다. 한편 자살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관해서는 그 경위를 구체적으로 전해주는 것이 없으나, 소재 이이명 선생이 써 올린 조문(弔文) 내용만으로도 일부 자살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지니는 인식 차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소재 이이명 선생의 글에 따르면, 본시 그가 믿는 바의 이순신 장군은 (그 인품과 그 정신으로 미루어) 자신에게 닥칠 일신상의 불행에 구애되거나, 절망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롤 죽음을 택할 그러한 위인이 아니라는 뜻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대한 역사적인 기록에서 오늘날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할 바는 서하 이민서 선생의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義兵)을 일으킨 것을 시기하고 모함하는 풍조가 극심하여 김덕령 장군이 죽게 되었고 곽재우 장군은 의병을 해산하고 은둔까지 하였으며 이후 호남과 영남의 부자 형제들이 의병(義兵)은 되지 말라고 서로 경계하기에 이르렀으니, 임진왜란 이후에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또 다시 병자호란의 참화(慘禍)를 입게 된 것이 괴이할 것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특히 전 문재인 정권의 행태는 어떠했는가? 자신들의 집권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거짓 선전 선동을 일삼고 중국 공산정권에 아부하고 끌어 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된 북한 김정은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고 끌려 다니면서 국민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내주기까지 하였으니 이런 행태를 계속한다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불을 본 듯 환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애국 국민들의 뜨겁고 끈질긴 열망과 투쟁과 하늘의 도움이 있어 참으로 어렵게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였고 이제 한해가 지났다.
이제 국민 모두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선공후사, 멸사봉공의 정신을 되새기고 반드시 악과 거짓을 이 땅에서 뿌리 뽑아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되살려내야 한다. 이것이 자유와 인권과 정의의 대한민국을 되살려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2023. 5. 5. 素淡
충무공의 죽음과 교훈
숙종 초기 이조판서 대제학 서하 이민서 선생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죽음과 관련하여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망친 역사를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당시 송강 정철과 우계 성혼이 모두 당쟁의 화(禍)를 입은 시초였으며, 의병(義兵)을 일으킨 김덕령(金德齡) 장군도 무고(誣告)를 당하여 체포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 가운데 여러 장수들이 꺼리고 질투하는 바였고, 또한 권세 있는 사람들이 안에서 그것을 도왔기 때문에 드디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 이렇게 장군(김덕령)이 죽은 이후부터는 여러 장수들이 모두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 회의를 품었고, 또 제 몸을 보전하지 못했던 바, 곽재우(郭再祐) 장군은 드디어 군사를 해산시키고 은둔했으며, 이순신 장군도 싸움에 임하여 갑옷을 벗고 탄환에 맞아죽었으니(李舜臣方戰免冑自中丸以死), 이후 호남과 영남의 부자 형제들이 의병(義兵)은 되지 말라고 서로 경계하였다.”(서하 이민서 撰, ‘金忠壯公遺事, 권3, 14면).
서하 이민서 선생 남긴 이 불후의 역사 비평은 당시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타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집약, 평가함으로써, 이순신 장군의 자살이라는 선택도 하나의 필연적인 사건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숙종 후기 좌의정 소재 이이명 선생은 이순신 장군을 조상한 글 ‘조이장군(弔李將軍)’에서 “또 의심하되 장군은 그러한 기미를 미리 알았을 것이라 하여 마침내 갑옷을 벗고 적중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하나, 나는 장군의 마음을 본시 알고 있는 바, 어찌 닥쳐올 화(禍)를 겁내어 자기 생명을 가벼이 하였겠는가.”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이상이 충무공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의 핵심인데 이순신 장군 자살설이 난후 근 100년 가까이 이어온 뿌리 깊은 주장임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다. 한편 자살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관해서는 그 경위를 구체적으로 전해주는 것이 없으나, 소재 이이명 선생이 써 올린 조문(弔文) 내용만으로도 일부 자살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지니는 인식 차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소재 이이명 선생의 글에 따르면, 본시 그가 믿는 바의 이순신 장군은 (그 인품과 그 정신으로 미루어) 자신에게 닥칠 일신상의 불행에 구애되거나, 절망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롤 죽음을 택할 그러한 위인이 아니라는 뜻인 것으로 보여 진다.
이상의 대한 역사적인 기록에서 오늘날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할 바는 서하 이민서 선생의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義兵)을 일으킨 것을 시기하고 모함하는 풍조가 극심하여 김덕령 장군이 죽게 되었고 곽재우 장군은 의병을 해산하고 은둔까지 하였으니 임진왜란 이후에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다시 병자호란의 참화(慘禍)를 입게 된 것이 괴이할 것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특히 전 문재인 정권의 행태는 어떠했는가? 자신들의 집권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거짓 선전 선동을 일삼고 중국 공산정권에 아부하고 끌어 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된 북한 김정은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고 끌려 다니면서 국민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내주기까지 하였으니 이런 행태를 계속한다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불을 본 듯 뻔한 노릇이다.
그동안 수많은 애국 국민들의 뜨겁고 끈질긴 열망과 투쟁과 하늘의 도움이 있어 참으로 어렵게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였고 이제 한해가 지났다.
국민 모두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선공후사, 멸사봉공의 정신을 되새기고 반드시 악과 거짓을 물리치고 뿌리 뽑아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되살려내야 한다. 이것이 자유와 인권과 정의의 나라를 되살려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2023. 5. 5.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