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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서예[2004]先舍後得(선사후득)=먼저 버리고 뒤에 얻는다
귀곡자(鬼谷子)의 처세기술
귀곡자(鬼谷子, BC 400년 ~ BC 320년)는 전국시대 사상가이자 전략가로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데 능했다고 합니다.
그는 강함과 부드러움에 대해 잘 알았고 “패합술(捭闔術)”에도 정통했습니다.
종횡가(縱橫家)는 일종의 전략 전술로 국제 정치사상이나
외교적 술수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귀곡자에게 배우는 처세법 7가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라.
어느 날 손빈(孫臏)과 방연(龐涓)에게,
“곧 물이 불어날 테니 너희들은 빨리 산을 내려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고, 서둘러 집을 정비하고 식량을 비축하게 해라”
갑작스러운 스승님의 말에 손빈과 방연은 반신반의 했지만
더 묻지는 못하고 재빠르게 산을 내려갔습니다.
3일 후 신기하게도 귀곡자의 말대로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큰 비가 내리더니 사방이 물바다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다행히 귀곡자가 사전에 알려주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화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귀곡자에게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표했고,
손빈과 방연 역시 이 일로 스승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점쟁이처럼 미래의 일을 알아맞히는 귀곡자가 신기했던 두 사람은
실례를 무릅쓰고 일의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귀곡자는 “나는 신선이 아니다. 또 신처럼 어떤 일을 미리 알지도 못한다.
그저 해마다 기상을 관찰하면서 규칙을 하나, 발견했을 뿐이다.
홍수가 나기 전 새벽에는 하늘이 뿌옇게 물드니
곧 큰 물난리가 날 것이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병에 담긴 물이 언 것을 보고 곧 추위가 닥쳐올 것을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당신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과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물러섬과 나아감
귀곡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곳에서 잠시 물러나
기회를 엿보는 방법을 깨우쳐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앞으로 나아가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땐 손해를 보더라도
뒤로 물러설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업에 성공하고 직장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나아감과 물러섬의 원리를 깨우친 사람들입니다.”
“니어(泥魚)”는 중국 고대 문헌 속에 등장하는 물고기입니다.
가뭄이 찾아와 물이 마르기 시작하면 보통 물고기들은
쏜살같이 물이 많은 곳으로 찾아갑니다.
가뭄이 지속되면 그곳의 물도 서서히 마르기 시작해
결국 모든 물고기들은 생명을 잃고 맙니다.
하지만 “니어(泥魚)”는 열악한 환경을 잘 버틴다.
그 비밀은 바로 가뭄이 찾아와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선 주변을 살핀 다음 몸을 숨길만한 진흙탕을 찾아냅니다.
진흙탕 속에 몸을 파묻고 마치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휴면(休眠) 상태에 들어갑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한 성격 덕분인지 녀석들은 혹독한 가뭄에도
6개월 이상을 버터 낸다고 합니다.
오랜 가뭄이 끝난 뒤 비가 내리고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하면
“니어(泥魚)”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진흙탕을 빠져나와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미 죽어 버린 물고기들은 “니어(泥魚)”의 먹이가 되고
녀석들은 빠르게 번식하며 호수의 통치자가 됩니다.
당신은 “니어(泥魚)”의 생존비결을 눈치 채야 합니다.
현실에서 득세를 할 당시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
실세(失勢)를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귀곡자는 말합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몸을 숨기고 지구전을 펼칠 준비를 하라.
그리고 적당한 때를 기다려라,”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는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굳은 신념으로 그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이후 상황이 바뀌어 기회가 다시 찾아들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뜻을 펼쳐라!
3, 버려야만 얻을 수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미련 없이 버려야 얻을 수 있다.”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귀곡자는 다른 사람과 갈등이 빚어졌을 때 자신이 열세에 놓였다면,
반드시 그 득실을 따져보고
“작은 것을 버려 큰 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舍 : 버리다), 득(得 : 얻다)
그런데 고사에서 이 두 글자는 항상 “사”를 앞에 놓고 “득”을 뒤에 두었습니다.
“선사후득(先舍後得)은 먼저 버리고 뒤에 얻는다“는 뜻이며,
“불사불득(不舍不得)은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소사소득(小捨小得)은 작은 것을 버리면 작은 것을 얻는다.”
“대사대득(大捨大得)은 큰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얻는다.”
“결국 버릴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다”입니다.
4, 패합지술(捭闔之術)
패합술(捭闔術)이라고 말합니다.
패(捭)는 여는 것.
합(闔)은 닫는 것을 뜻합니다.
상대방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그 본 모습을 알기 위함이요,
감추는 것은 그의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위함입니다.
쉽게 말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의 실력과 계획을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방”이란 나를 내보내고 남을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폐쇄”란 나를 감추어서 남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드러냄과 감춤은 인생에서 적절히 선택해야 합니다.
귀곡자는 “열어서 드러내고, 닫아서 감추는 패합술을 융통성있게 활용하면,
이 세상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5, 평정심(平靜心)
귀곡자는 무엇보다 평정심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오장육부(五臟六腑)가 편하면 정신과 혼이 더욱 견고해져 변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을 반성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게 되어 마음이 안정됩니다.
이처럼, 평정심을 갖춘 사람은 더 먼 곳을 내다보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성인(聖人)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닌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지혜(智慧)입니다.
6, 오합술(忤合術).
귀곡자가 대립(對立), 상반(相反), 순응(順應), 상합(相合)을 설명한 것입니다.
오합(仵合)에서 “오”는 외면하고 배신하는 것이요,
“합”은 영합하고 마주보는 것 입니다.
모든 일에는 정과 반, 이와 폐, 직과 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현명(賢明)한 사람은 불리한 것을 유리(有利)하게 만들고,
수동적(受動的)인 태도(態度)를 능동적(能動的)인 것으로 바꾸며
위기(危機)를 기회(機會)로 만드는데 뛰어납니다.
귀곡자는 “만물(萬物)은 항상 주기적(週期的)으로 순환(循環)하며
, 서로 다른 발전단계(發展段階)에서
항상(恒常) 서로 다른 특징(特徵)과
현실(現實) 배경(背景)이 존재(存在)한다”고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 처세(處世)에 성공(成功)하려면
변화(變化)와 발전(發展)을 이용(利用)할 수 있어야 하고,
넓은 시야(視野)로 만물(萬物)의 연관성(聯關性)과 독립성(獨立性)을
반복적(反復的)으로 관찰(觀察)하며
이를 명확(明確)하게 파악(把握)할 수 있어야 합니다.
7, 남의 형편(形便)을 먼저 해아 리라.
처세의 기본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입니다.
끝으로 처세(處世)의 기본(基本)은
다른 사람의 입장(立場)에서 먼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귀곡자는 “남을 알고 싶거든 먼저 자기 자신을 아는 것부터 시작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만 비로소 남을 알 수 있다.” 고 말했습니다.
세상(世上)에 온전(穩全)히 서려면 언제나 자신이 아닌
남을 먼저 배려(配慮)해야 합니다.
우리가 끝같이 지켜 나가야 할 일입니다.
늘 내가 아닌 상대방(相對方)의 입장(立場)에서 문제(問題)를 생각하고
나의 입장(立場)과 관점(觀點)을 고집(固執)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겸손(謙遜)한 군자(君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귀곡자(鬼谷子)의 7가지 처세술(處世術)
1,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라.
2, 물러섬과 나아감.
3, 버려야만 얻을 수 있다.
4, 패합지술(捭闔之術).
5, 평정심(平靜心).
6, 오합술(忤合術).
7, 남의 형편(形便)을 먼저 해아려라.
鬼谷子(귀곡자)
역사에 기록된 귀곡자(BC 400년 ~ BC 320년)의 본명은 왕후(王詡), 호는 현미자(玄微子),
혹은 왕선 (王禪), 귀곡 선생(鬼谷先生)이라고 불리며,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서, 종횡가(縱橫家)의 始祖,
음양가의 祖師, 도가의 王禪老祖, 병법의 大家 등으로 불린다.
아울러 허난성 운몽산의 귀곡동에서 은거하였기에 '귀곡 선생'으로 칭했다.
귀곡 선생이 남긴 저작은 <귀곡자(鬼谷子)> 14편이 전부다.
그중에서도 제13편, 제14편은 소실되었으나, 실제 <귀곡자>가 본인의 저작인지,
혹은 귀곡자라는 인물이 역사상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것은 귀곡자가 허난성 운몽산에 숨어서 살았기 때문에 그 논쟁이 심한데,
전설처럼 내려온 전국시대 병법 전략가 소진, 장의, 손빈과 방연이 그의 제자라고 전해 오는 등,
후대로 내려오면서 더욱 신비한 인물로 치부되어 왔다.
귀곡 선생은 과연 실존 인물인가?
<귀곡 선생>은 가상 인물이라는 설.
1. 우선, 귀곡자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선진(先秦: 진시황 천하통일 이 전 ) 시대의
여러 역사서에는 공식적인 언급이 없으나,
이후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장의, 소진 열전>편에서
'그들이 귀곡자로부터 수학하였다'라고 언급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과연 귀곡자가 그렇게 유명한 인물이라면,
왜 사마천은 단독으로 귀곡자를 열전에 포함시키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 귀곡자에 대한 고증 부족 의심을 제기했다.
2. 두 번째는 지난 1973년 마왕퇴에서 출토한 <전국종횡가서(戰國縱橫家書)>에는
소진(蘇秦)과 장의(張依)가 동시대에 같이 활동했다는 기록이 없다.
사실 둘의 나이 차는 30세가 되어서, 사마천이 기록한 양자 간의 친분과 교유는 근거가 희박하다.
이것은 후일 일부 사학가, 당조(唐朝)의 사마정(司馬貞)은 <사기은소(史記隱索)>에서 소진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출신 및 스승(귀곡자) 동문을 과장했다고 의심하였다.
3. 세 번째는 손빈과 방연은 귀곡자의 제자라고 하는데 실제 동문인지가 의심스럽다.
상기 사실은 명조시대에 출판된 <동주열국지(東周烈國誌)>의 영향을 받아서,
이후 손빈과 방연의 동문설과 귀곡자의 제자라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진 듯 하다. 라고 의심했다.
4. 네 번째로는 '당송 8대가' 중의 하나인 당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은 <辨鬼谷子>라는 저서를 통해
여러 문헌을 통해 고증해 본 결과, '귀곡자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귀곡 선생>은 역사상 엄연한 실존 인물이라는 설.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귀곡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역대로 설이 분분하지만,
가상인물이라는 설의 주장의 증거가 미약하고, 오히려 사마천의 <史記>의 내용,
또 한나라 때 경학자 유향이 지은 <설원(說苑)>· <선세 (善說)>, 명나라 시절에 출간된 <동주 열국지>,
마왕퇴의 <전국종횡가서> 및 그 밖의 여러 기록에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실존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귀곡자 정체에 관한 기록]
귀곡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역대로 설들이 분분하지만
관련 기록과 유적 등을 종합해 볼 때 실존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으로 본다.
우선 사마천의 『사기』에 유세가 소진과 장의가 그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한나라 때 경학자 유향이 지은 『설원(說苑) · 선세(善說)』에도 귀곡자의 말이 언급되어 있고,
그 밖에도 여러 기록에 언급되어 있다.
귀곡자에서 ‘귀곡’을 사람이 아니라 지명으로 보는 설이 있는데,
실제로 허난성 운몽산(雲夢山)에는 그와 관련한 지명과 유적이 남아서 전한다.
[저서 『귀곡자』에 대한 논쟁]
그가 남겼다는 『귀곡자(鬼谷子)』가 본인의 저작인지 그에 대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후대에 가필되었다 하더라도 당초 귀곡자의 사상과 관점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귀곡자가 숨어서 살았기 때문에 그 논쟁이 더 심한데,
민간 전설에서는 전국시대 이름난 군사 전문가인 손빈과 방연이
그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다고 전하기도 하는 등,
후대로 올수록 귀곡자는 더욱 신비한 인물로 치부되었고, 그의 저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1973년 후난성 창사(長沙)시 마왕퇴(馬王堆)라는 고고학 유적지의 한나라 무덤에서 비단으로 된 책
『전국종횡가서(戰國縱橫家書)』가 출토되었는데,
거기에 소진과 장의가 모두 귀곡자의 학생으로 기록되어 있어,
그의 존재와 저서에 대한 논쟁에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운몽산 귀곡동 앞의 귀곡자상
[관련 유적]
운몽산 사신대
귀곡자와 관련한 유적은 허난성 운몽산에 남아 있다.
귀곡동(鬼谷洞), 방연동(龐涓洞), 귀곡정(鬼谷井)을 비롯하여 사신대(舍身臺) 등이 그것이다.
중국 중심에 위치한 허난성에는 중원을 산둥, 산시(山西)로 나누는 태항산(太行山) 말고도
허베이와 허난에 걸쳐 있는 운몽산이란 명산이 있는데,
기타 명산들에 비해 그리 험준하고 깊은 산은 아니다.
운몽산은 ‘중화제일군교(中華第一軍校)’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데,
말하자면 중국 최초의 군사학교인 셈이다.
이곳에는 귀곡자의 사당을 비롯하여 제자들이 공부했던 동굴들,
귀곡자가 수련했던 동굴, 손빈의 무덤으로 전하는 절벽,
손빈의 사당 등 전국시대 최고 군사 전문가들의 족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유적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자들의 담력을 시험했다는 꽤 높은 절벽이다.
이름하여 ‘사신대’, 말 그대로 몸을 던진다는 뜻이다.
귀곡자는 이런 산중에 전문학교를 만들어 놓고 유세 · 병법 · 음양 · 술법 등을 가르치며
당대를 주름잡던 유세가와 군사 전문가들을 양성해 배출하였는데,
그의 제자들로 거론되는 소진, 장의, 손빈, 방연 등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중국 전설의 인물 귀곡자 이야기 중에서
귀곡 선생의 저술 <귀곡자>는 왜, 역대 왕조에 의해서 '금서(禁書)'로 묶였는가?
귀곡 선생의 존재 여부에 관계없이 그의 저서 <귀곡자>는 전국시대뿐만 아니라
후대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전국시대의 종횡가의 활동 근거가 되는 <귀곡자>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상대의 호불호와 장단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따지고, 상대의 유불리를 따져서,
최대 이익을 창출하는 실용주의 방법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합종 연횡 정책은 절대 군주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고,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각 국가 간의 이익과 생존을 도모하는 것으로서,
즉 당시 강대국인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은 유일한 합종 정책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육국의 연합을 깨트릴 수 있는 정책은 연횡책이었다.
여기에는 군주에 대한 절대 충성과 인의 도덕이 우선되지 않았으며,
서민 출신인 걸출한 종횡 정치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그러나 이후 천하를 통일한 정권은 유세가, 병법가, 종횡가와 같은 떠돌이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 무제 이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유교의 '인의 도덕(仁義道德)'을 바탕으로 한 군신, 부자, 사제 관계 등을 중시하였다.
이는 안정적인 황제의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철학이었다.
거기에 비해서 실용적인 <귀곡자> 정신은 반골을 키우는 절대 금서였던 셈이다.
단순히 <귀곡자>의 내용을 보고, 귀곡 선생을 신비의 인물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귀곡자> 12편의 내용은 손자병법이나 오자 병법, 육도삼략 등 다른 역작에 비해,
구체적이거나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
단지 심리전술(패합술)을 바탕으로 한 그의 전략은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지침서라고 생각되지만,
귀곡 선생이 중국 역사상 가장 신비한 인물로 여겨진 것은, 숨어 지냄으로 존재 여부가 불분명하고,
천하의 유명 인사인 소진, 장의, 손빈, 방연의 스승으로 알려짐으로써
후세 사람들에게 더욱 신비감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귀곡 선생>은 중국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마치 무협지의 절대적인 신비 인물처럼,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쉽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누군가가
통쾌하게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슈퍼맨' 출현의 갈구인 지도 모를 일이다.
귀곡자가 알려주는 처세술 7가지
1.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라
무엇보다 자신과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 할 수 있어야 한다.
2. 물러섬과 나아감
기회가 왔을때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앞으로 나아가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땐 손해를 보더라도 뒤로 물러설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3. 버려야만 얻을 수 있다
先舍後得(선사후득): 먼저 버리고 후에 얻는다.
不舍不得(불사부득): 버리지 않으면 얻지도 못한다.
小舍小得 大舍大得(소사소득 대사대득):
크게 버리면 큰 것을 얻고, 작은 것을 버리면 작은 것을 얻는다.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
미련 없이 버려야 얻을 수 있다.
4. 捭闔之術(패합지술)
패는 여는것 합은 닫는 다는 뜻.
對立(대립) 相反(상반) 順應(순응) 相合(상합)을 설명한 것.
상대방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그 본모습을 알기 위함이고,
감추려는 것은 그의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다.
5. 평 정 심
평정심을 갖춘 사람은 언제나 태도가 겸손하고 말을 온화하게 해서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준다.
6. 忤合術(오합술)
오합에서 "오"는 배치되는 것,
오합에서 "합"은 합치 되는것.
현명한 사람은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만들고,
수동적인 태도를 능동적인 것으로 바꾸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데 뛰어나다.
7. 남의 형편을 먼저 헤아리다
易地思之(역지사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
늘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나의 입장과 관점을 고집하지 않는것이야 말로 겸손한 군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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