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500원짜리 동전이 필요한 일, 뭐가 있을까요?
오락실 아르바이트? 슈퍼마켓 집 아들? 택시기사?
늘 동전을 바꾸러 오는 사람이 있어요.
만 원짜리 지폐를 500원짜리 동전 스무 개로 말이에요.
주로 청바지에 편한 점퍼 차림인데,
요 며칠은 추위를 많이 타는지,
벌써 까만색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었더라구요,
머리는 약간 길어요,
그렇다고 묶어질 만큼 긴 건 아니구요,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다녀요, 집이 이 근처 인것 같아요.
겨울엔 바람 때문에 얼굴도 시리고, 손도 시릴텐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자꾸 그 사람이 걱정돼요.
그리고 어쩌다 하루 오지 않는 날이 있으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나?
아니면 은행을 옮겼나? 하고 궁금해지고...
이어서 많은 상상을 하게 되요.
어쩌면 그 사람이 아주 큰 회사의
사장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근데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챌까봐
일부러 그런 복장을 하고 다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상상,
어느 날, 환전소 유리 칸막이 너머로
나에게 쪽지를 건네며
데이트 신청을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첫 데이트를 하게 되는 상상..
그 사람이 은행 문을 열고 들어와요,
근데, 오늘은 웬일로 정장 차림을 하고 왔을까요?
번호표를 뽑아 들고,
두 번째 줄 소파에 앉아서 잡지를 보고 있어요.
잡지를 보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네요.
친구가 잡지에 나왔나 봐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 길래,
친구가 잡지에 나올까요?
그 사람이 번호표를 들고 내게 다가와요.
"50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주세요"
"오늘도 만원어치요?"
"아니요, 오늘은 이 만원어치요.
그동안 아르바이트 했던 가게 주인은 하루에 만원씩만
동전으로 바꿔놓으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부터는 제 마음대로 바꿔도 돼요.
오늘, 요 앞 아파트 단지에 제 가게를 오픈하거든요.
지영씨도 비디오 빌리러 오세요."
아..내 이름을 알고 있었네요.
오늘부터 전 비디오 광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일,
그게 바로 사랑의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