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 및 전후에서와 같이 믿음의 선배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했을 뿐 아니라 그 우리아까지도 간교한 방법으로 죽게 만든 것은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깨어 있지 못하고 하늘의 힘을 갈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약해지고 악해질 수 있는지, 게다가 어느 정도까지 사악해 질 수 있고 있을 수 없는 죄악들까지도 범하게 될 수 있는지를, 심지어는 진정 다윗같이 오랜 시간 그 누구보다 치열한 믿음으로 살았고 하나님께 최고의 기쁨이 되었으며 그와 함께 온갖 하늘의 힘과 응답과 승리와 복과 형통들 등을 생생하고 풍성하게 누렸던 자라도 결코 그 자체로는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진정 인간인 이상 언제라도, 한 순간에 시험과 유혹들에 빠질 가능성이 없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보여주고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다윗이 그렇게까지 최악의 죄악들, 결코 믿지 않은 자들이라 하더라도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죄악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다윗이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구원이 돌이켜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결국은 합력하여 선이 되었으며, 더군다나 수많은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결코 작지 않은 믿음과 은혜들, 선한 도전과 영향력들이 되고 있고, 심지어는 마태복음 1장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와 같이 증거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과 함께 구주 예수님의 메시야 계보 한가운데 위치하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그 정도로 하나님의 세계가 신묘하다는 것이고, 복음의 능력이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것이며, 사실 하나님으로 인한 힘과 구원의 일들, 뜻과 섭리들은 우리 인생들의 이성과 상식들, 현실과 상황들, 한계와 제한들,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 절망과 불가능들 등을 뛰어 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가장 실제적이면서 현실적이고 세밀하며 생생하고 강력하며 신령하고 초월적이며 세상 끝 날과 영원에까지 이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하고 어느 정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죄악들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범해도 된다거나 죄악들과 치열한 싸움들이, 범한 죄악들에 있어서의 즉각적인 회개들이 필요 없다거나 크고 작은 죄악들로 인해 아무렇지도 않게 되고 아무 일도 없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고 오히려 완전 반대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아래 본문의 다윗만 하더라도 사무엘하 12장부터 20장에 걸쳐서 잘 증거되어 있고 시편 등에서도 잘 발견할 수 있듯이 오랜 시간 동안 그 자신 뿐 아니라 그의 가정, 자녀들, 심지어는 온 나라 전체에 있어 심각한 대가와 곤고와 처참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면들은 성경 처음의 아담과 하와 때부터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허다하게 확인할 수 있고 수시로 강조하고 있으며 생각 이상으로 무섭게 경고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참으로 원론적으로는 죄악들을 가까이하고 반복하며 갈수록 악해지는 그 백성된 자들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아비의 심정으로 그의 자녀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설 수 있게 되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은혜와 응답과 복들 등은 막으시곤 하는 것이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면서 원치 않는 아픔과 곤고들, 때로는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들에 따라 예상치 못할 비참과 처참들 등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이며, 필요하면 마치 40년 광야 길을 돌아가듯이 많은 시간들을 방황케 하시거나 어떤 면에서는 훈련되게 하시거나 합당하게 준비될 수 있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러한 모든 이치와 원리들은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도,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는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인데 그와 같은 모든 일들이 참으로 당연하고 심히 마땅함은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으로..
모든 인생들에 있어 가장 좋고 복되며 먼저이어야 하는 것은 다윗 같은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이나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날마다 죄악들과 싸우고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야 말로 모든 우선과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더 나이가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사는 동안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단 한 번, 단 한 시라도 예외 없이 아래 본문의 다윗과 같이 죄와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마치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아니라, 또한 잠시라도 자신의 힘이나 의, 세상의 능력과 방법들 등도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떤 식으로든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순간순간마다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면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 본질적으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바로 그와 함께 갈수록 더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생생해 지고 충만해 지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으로 인해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온갖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이 더욱 강렬해 지고 풍성해 지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그렇게 더 생생하고 강렬하게 된 하늘의 힘과 은혜로 더 죄악들과 싸우고 더욱 말씀의 신앙이 됨으로 인해 더욱 더 성화되고 성장하게 되며 견고해 지고 장성해 가며 심지어는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강한 군사와 같은 신앙도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사무엘하11:14~1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9월 4일(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