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분배자가 성체를 주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 영성체하는 이는 “아멘.” 하고 응답하는데, 이 응답은 신앙의 확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체를 주는 사람이 말하는 대로 “나는 정말로 이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습니다.” 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언과 응답은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이에게 객관적인 사실인정을 넘어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다가옵니다.
사제나 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우리 앞에서 성체를 들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빵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습니까?”라는 질문 외에, 암묵적으로 “당신은 그리스도의 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고, 당신의 형제자매와 친교를 이루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멘.”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의 양식으로 받아 모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성체)을 우리 안에 모신다는 것(영성체)은 그것과 하나 된다는 것, 그것을 모신 다른 이들과 이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어 우리 모두가 함께 세상에서 더욱 참된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자 합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충고대로, 성찬례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이 되어야 하며, 바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받아 모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되는 것에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 대답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데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 ‘아멘’이라고 대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성체할 때 하는 “아멘.”은,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뜻에 끝까지 순명하시어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신 ‘위대한 아멘’의 계속입니다. 이 대답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의 삶으로 들어가겠다는 우리의 각오를 표명합니다.
축성된 빵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올 때 거꾸로 우리 영혼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수님께서 영성체로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행위를 해석하면서 그러한 확신을 나타내었습니다. “나는 다 자란 사람의 양식이다. 네가 다 자라면 나를 먹고 살 것이다. 그러나 음식이 네 몸의 실체가 되듯이 나를 너의 실체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네가 내 안으로 들어와 바뀌어야 한다.” 위대한 중세 신학자인 대 알베르토 역시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 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여 우리가 그분 뼈의 뼈가 되고, 그분 살의 살이 되고, 그분 지체의 지체가 되게 한다. … 그때마다 둘은 하나가 다른 하나로 완전히 변하는 방식으로 결합한다. 더 강한 것이 더 약한 것을 자기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이 양식은 그것을 먹는 사람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바로 그 양식으로 변화시킨다.”
영성체를 하면서 우리는 영혼의 눈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열어 준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렴풋이나마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그 새로운 미래를 말과 행동으로 현재에 접목시키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미리 경험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