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본 구원
이 책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설교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이 땅에
살아가는 <죄인들>로 보고,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이라 주장합니다.
강도만나서 거의 죽게 된 자는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논지입니다.
강도 만난 자는 사마리아인의 손끝에만 의존할 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눅10:33-35) 강도 만난 자가 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부 구원자인 사마리아인이 했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한 일은 누워있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자인 예수님이 하십니다."(p. 33)
"사람들은 자기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강도 만난 자가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는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하는 피구원자입니다."(p. 205)
저자 박옥수 목사는 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바른 해석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박옥수는 구원파. 그런데 박옥수 해석이 맞아죠.
오은환이는 구원파인 박옥수 보다 못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주장인 것이죠.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이 사람이 위에 영생을 물어본 율법사입니다.
율법사가 자기 이웃 즉 내 이웃이 누군냐고 물보는 것은 영생 때문이죠.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율법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답을 하니까 예수님이 옳다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니까
이 율법사가. 내가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이웃이 누구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율법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도 없고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겁니다.
이 전제가 있은 것이죠.
역설적인 비유로 답을 하신 겁니다.
왜 이 사람이 옳게 보이려고 한 질문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위치에 있는 것 아니고. 반대로 사랑을 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29절과 36절과 37절만 보면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율법사는 자기가 사랑할 대상인 이웃이 누구냐고 질문한 것인데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답은 사마리아인인 자비를 베푼 자가 이웃이 된다고 답을 하죠.
강도 만난 자가 이 율법사입니다.
강도는 죄입니다.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죄로 인애서 지옥갈 갈 운명이죠. 여리고는 심판을 받은 성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제사장이 속죄제사를 해야 하는데. 웃기는 것은 이 제사장도 그 길로 같이 내려가고 있다는 말이죠
또 레위도 맞찮가지고. 그 곳이 이르러 . 어디이죠. 여리고.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루살렘어서 여리고 내려가요.
세명 다..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이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모함을 합니다.
기름은 성령님. 포도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주막은 교회입니다.
이튿날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천년을 하루로 계산.
율법의 제사장들이 죄을 치유하지 못헸고 예수님의 대신 그 죄를 담당하셔고.
성령을 보내주시어 교회 안에서 즉 주막에 거하다가.
예수님의 재림하시면 갚아주시는 겁니다.
율법사의 이웃은 사마리아인 즉 예수님이 이웃이 되어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침례를 받고 교회 안에서 거하다가
영생으로 갚아주시는 겁니다.
율법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어야 하는 겁니다.
이답은
요한복음 6 :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이웃으로 삼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