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예수 성심 성월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계실겁니다. 하지만 어찌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이 '삼위 일체 대축일', 삼위 일체 대축일 다음에 이어오는 목요일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우리나라에서는 주일로 이동하여 경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체 성혈 대축일이 지난 뒤 바로 이어지는 금요일이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정확하게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셈에 따라 유월에 예수 성심 대축일이 있다 보니 유월이 예수 성심 성월이 된 것이지요.
성령 강림 대축일은 성령께서 비로소, 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등장하셨음을 기념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아버지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신 성자 하느님과,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은 외아드님의 모든 것을 전해 주려 이 세상에 오신 성령 하느님을 기념하는 삼위 일체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이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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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
삼위 일체 대축일을 지내고 나서 오는 첫 목요일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 되는 것은 성목요일에 제정된 성체성사의 “기쁨"을 누려 보고자 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아시다시피 성목요일은, 마지막 만찬에 이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체성사의 기쁨보다는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지배합니다.
그러니 성체성사를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기쁘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성체 성혈 대축일이라 하겠습니다.
성체와 성혈은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사랑의 표시로서 죽음을 불사한 예수님의 희생과 다시 연결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요일인 금요일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 뜨거운 심장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성심 대축일이 금요일에 자리잡은 까닭입니다.
그리고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인 토요일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기념일로 이어집니다. 아들의 마음 곁에 어머니의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마음 가짐과 행동은 어디서 생겨났을까요? 유월이 다 가기 전에 예수님의 마음, 곧 성심에 대한 신심행위의 기원에 대해 상식적으로 알아 두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마음을 공경해 온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날 대축일로 지내는 예수 성심 대축일과 성시간 전례는 17세기 프랑스에서 기원합니다.
이전에는 소수의 신비주의자나 성인에 국한되던 것에 비해, 그 시기에 이르러 성심 공경은 상당히 일반화되었습니다.
성 요한 외드(성 장 외드, 1601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태어나 1680년 선종)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삼위일체에 봉사하는 지점에서 일치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설명했고, 이 두 성심에 대한 신심이 개인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공동 전례차원까지 확대되기를 원했습니다.
요한에게 ‘성심’이란 심장으로서 인체기관도 아니고, 감정들이 들어차 있는 장소도 아니었습니다. 성심은 영적이고 올바른 내면성을 의미하고, 이 내면성은 의지력을 전해 줍니다.
쉽게 말해, 하느님의 삶에 전적으로 동참하려는 힘(곧, 삼위일체의 삶에 투신하려는 힘, 봉사하려는 의지)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은 예수 성심 대축일 제정의 신학적이고 전례적인 기초를 확립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어 예수성심 공경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더 널리 보급된 것은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성녀 마르그리트-마리 알라코크, 1647-1690)를 통해서였습니다.
1673년 12월 27일, 프랑스의 성모방문동정회 수녀였던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발현하셔서 교회가 모두 함께 성심을 공경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사적인 계시라고 국한시켰던 것이었지만, 마르가리타 마리아의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 아님을 믿게 된 주변 사람들
(특히 영적 동반 사제 클로드 라 콜롱비에르, (예수회원이었고 마르가리타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요청하신 것이 참된 것임을 알았고, 그녀를 도왔습니다), 수녀원 원장 등)의 증언으로 공적인 신심으로 인정되기에 이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마르가리타 마리아에게 살아 움직이는 당신의 성심을 보이시며 보속의 방법으로 자주 영성체를(특히 달마다 첫 금요일에) 하고 성시간 기도를 바치라고 하셨답니다.
달마다 "첫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 내가 겪은 극심한 고민과 슬픔에 너를 참여시키겠다.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나와 함께 깨어서 성부의 의노를 풀어 드리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보속하며 성시간을 지키도록 하여라."
이것이 성시간을 하게 된 유래라고 하는데, 일정한 생활 규칙을 강조하는 수녀원에서 오밤중에 홀로 기도한다고 성당으로 나오는 모습이 예쁘게 보일 리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하는 기도였으나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마르가리타 마리아의 이렇게 튀는 신심행위가 불편한 무엇이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후 1765년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폴란드 주교단의 청원을 받아들여 제한된 지역에서 예수 성심을 공경할 것을 지시하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제정했습니다.
또한 1928년 교황 비오 11세는 이 축일을 팔부 축제(이것은 1960년에 폐지됐습니다)로 하고 회칙 “극히 자비로운 구원자”를 통하여 예수 성심 대축일을 위한 기도문과 취지를 규정하였고,
세계를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예절을 해마다 그리스도 왕 축일에 경신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가톨릭 대사전, “예수성심 대축일”항 참조)
예수 성심 공경의 유래를 따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잘 알고 있으며, 감사할 줄은 알지만 그것만으로 예수 성심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는 것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심을 공경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의지를 발동하여 하느님께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복사로 활동할 때, 가장 힘들어 했던 시간이 성시간이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달의 첫 목요일 저녁 미사 당번 안 걸리기를 바랐었습니다.
미사에 이어서 성시간 전례가 이어졌으니까요. 그런데 그 성시간이 예수님의 요청으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음을 반성합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셔야 했던 주님을 이제는 더 이상 외롭게 하지 않도록 해 드려야겠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