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그것도 열대 남국을 연상케 하는 무더운 날씨다. 하지만 이때 덥다고 선풍기 바람 앞에 누워 있는 게 만사는 아니다.산과 계곡을 찾아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이달이 마지막이다.예로부터 덥다고 소문난 경상북도의 시원한 계곡 두 곳을 소개한다.계절 바뀌어 선선한 바람이 옷속에 스며들 때 '여름에 바캉스 한번 못갔다고 징징'대느니, 뜨거운 태양이 짙은 그림자 드리울 때, 산좋고 물맑은 경북의 대자연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근사한 선택이다.
◇천연 슬라이드, 타봤니?
팔공산의 정기를 그대로 간직한 경북 군위군 동산계곡에는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워터파크 못지않게 시원한 천연 슬라이드가 있다. 청정자연 속 시원한 물이 4㎞ 맑은계곡을 흘러내리는 가운데 '멱바위'라 불리우는 나지막한 폭포들이 바로 그 것. 물살에 미끈미끈하게 닳은 바위는 어디 하나 모난 데가 없어, 맑은 계곡수를 타고 튜브나 맨몸으로 내려와도 긁히거나 아프지 않다. 머릿속까지 저릿저릿해지는 차가운 물은 열 사람이 서도 너른 바위를 타고 세차게 흘러내리는 까닭에 형형색색 인공의 튜브 슬라이드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재미를 선사한다. 물은 이어진 폭포를 타고 한참을 내려온다. 물위까지 드리워진 울창한 숲은 워터파크 안에서 하루에 몇 십만원을 내야 빌릴 수 있는 원두막보다 더 시원하다. 살랑살랑 모기를 쫓아주는 바람도 귀를 때리는 매미 소리도 진짜다.
군위는 대구 북쪽 팔공산의 때묻지 않은 비경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곳. 강원도 심심산골처럼 높다란 '한티재'를 넘어가면 국보 제109호인 군위삼존 석굴(제2석굴암)이 나온다. 깎아지른 절벽에 뻥 뚫린 천연 동굴 속에는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1세기나 이른 석불이 모셔져 있다. 앞에는 계곡이 흐르고 잘라낸 듯한 절벽에 그 오랜 옛날 누군가 정성으로 쪼아 만든 아미타불과 대세지 보살, 관음 보살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절경의 고갯길 한티재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시원한 열 두폭포, 영남의 금강산
이 더운 때 산에 오른다고? '이열치열'이니 얼토당토 않은 소릴 꺼내려거든 아예 집어치우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포항 내연산(930m)은 어느 때보다 한 여름에 올라야 한다. 눈과 귀, 그리고 콧속까지 시원한 열두폭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놓치기 아까운 열 두 폭포는 무더위 속에서 산을 오르는 자에게만 비경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한다. 보경사 입구를 통해 계곡을 오르면 왼쪽으로는 포항의 피서지로 유명한 '청하골'이 펼쳐지는데 가만 보니 금강산 만폭동과 설악의 오색을 살짝 닮았다.
청하골을 따라 오르면 12폭포를 만날 수 있다. 처음 상생폭포부터 보현폭, 삼보폭, 잠룡폭, 무룡폭을 거치면 계곡미가 절정을 이루는 관음폭포와 연산폭포를 만날 수 있다. 넓은 못에 두줄기로 흘러 내리는 관음폭포,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 우렁찬 굉음을 내는 연산폭포는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 차례 소나기라도 온 다음 오르면 구름다리까지 마중나온 물보라와 함께 오히려 하늘로 치솟는 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 물기둥을 만날 수 있다. 물줄기는 바위를 타고 흘러 다음 폭(瀑), 또 다음 폭을 이루며 보경사 입구까지 흘러내려 가지만 산을 오르는 이는 폭포 옆 시원한 소(沼)에서 쉬어갈 수 있다.
※ 여행정보 |
'여행정보' ●둘러 볼만한 곳=원진국사 사리탑(보물 제430호)과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가 보존된 보경사(寶鏡寺). 보경사는 602년 진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지명법사가 신라 진평왕에게 팔면보경을 바치며 명산에 거울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고 한데서 유래됐다. 군위 삼존석굴에서 약 10분 정도 거리에 돌담 가득한 진풍경의 한밤마을(대율리)이 있다. 수해로 인한 산사태로 말미암아 팔공산의 돌들이 이 마을을 '제주도'처럼 만들었다. 아래로부터 차곡차곡 쌓은 돌담길은 4㎞(10리)정도 구불구불한 골목을 연출하고 있다. 조선시대 부잣집 전통가옥 상매댁(남천고택)과 마을 앞 대청이 멋드러진 풍경을 자아낸다.
●먹을 거리=청둥오리 불고기가 맛있는 동산계곡 식당. 칼칼한 양념에 재워내 느끼하지 않고 여름철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운다. 시원하게 무쳐먹는 도토리묵도 조미료 등에 때묻지 않은 옛날식 수더분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054)383-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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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포항 | 이우석기자 dem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