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331
■ 1부 황하의 영웅 (331)
제 5권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제 40장 패자(覇者)가 되다 (5)
한편, 진문공(晉文公)의 미움을 사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진(陳)나라에 머물고 있던
위성공(衛成公)은 이제나 저제나 천토(踐土)로 보낸 세작(細作)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세작이 돌아와 보고했다."숙무(叔武)가 맹회에 참석하고, 그 맹약서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밖에 다른 일은 없었느냐?“"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숙무가 나의 복위에 대해 아무런 청원도 하지 않았단 말이냐?“
"그러합니다."위성공(衛成公)이 보낸 세작은 낮에 진행된 맹회만을 지켜보고 그 즉시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날 저녁 숙무(叔武)와 원훤(元暄)이 진문공을 찾아가 위성공의 복위를 청원한 사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세작의 보고에 위성공(衛成公)은 불같이 노했다."결국 숙무(叔武)가 내 나라를 가로챌 작정이구나.
원훤(元暄)이란 놈이 더 가증스럽다.내 이놈을 용서치 않으리라!"
이렇게 외치고는 원훤의 아들 원각(元角)을 잡아다 단칼에 목 베어 죽였다.
천토회맹(踐土會盟)에 참석했다가 초구성으로 돌아온 원훤(元暄)이 이 소식을 들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으나,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긴 원훤은 하늘을 우러르며 길게 탄식했다.
"내 아들이 죽은 것은 천명이다.주공이 비록 나를 의심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 어찌 주공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사마직을 맡고 있는 만(瞞)이라는 사람이 위로할 겸 원훤에게 말했다.
"주공이 그대를 의심하여 아들까지 죽였으니 그대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이참에 다른 나라로 망명하여 그대 마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나 원훤(元暄)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벼슬을 버리고 떠나면
누가 우리 주공을 도와 이 나라를 지킬 것인가?
내 자식이 죽은 것은 개인의 원한일 뿐, 나라를 지키는 일보다 더 큰일은 없소.“
원훤(元暄)은 숙무와 의논한 끝에 다시 한번 위성공을 복위 시켜달라는 탄원서를 써서 진문공에게 보냈다.
얼마 후 진문공(晉文公)으로부터 답신이 왔다.임금이 도성을 비웠는데도 변함 없는 마음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그대들의 마음이 가상하여, 위후(衛侯)의 환국을 승낙하노라.
숙무(叔武)와 원훤(元暄)은 진문공(晉文公)의 서신을 읽고 나서 몹시 기뻐했다.
그들은 급히 진(陳)나라로 사람을 보내어 위성공에게 어서 환국하여 군위에 오를 것을 권했다.
위성공(衛成公) 또한 기쁜 마음으로 환국할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때 천견(歂犬)이란 자가 또 위성공의 귀를 간지럽혔다.
"숙무가 섭정한 지 오래여서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제법 됩니다.
더욱이 원훤(元暄)은 아들까지 잃어 주공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을 믿고 경솔히 움직이시면 어떤 화를 당할지 모릅니다."
위성공(衛成公)은 귀가 엷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나도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영유(寧兪)를 불러 말했다."그대가 먼서 초구에 들어가서 숙무의 동태를 살피고 오라."
위성공의 명을 받은 영유(寧兪)는 위나라 도성 초구(楚丘)로 향했다.
이를테면 분위기 탐색이었다.그가 궁에 들어섰을 때 숙무는 임금이 앉는 전상(殿上)에 앉지 않고
전당 동쪽 구석에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영유(寧兪)가 그런 숙무를 향해 물었다.
"공께서는 섭정 임금이신데, 어찌하여 전상 높은 곳에 앉지 않고 낮은 곳에 앉아 일을 보십니까?“
숙무(叔武)가 공손히 대답하였다."저 자리는 주공이신 형님 자리입니다.
내 어찌 섭정의 신분으로 전상(殿上)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하루빨리 형님께서 돌아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영유(寧兪)는 감탄했다.
"내 오늘 공에게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숙무는 영유와 의논한 끝에 위성공이 입성할 날을 7월 15일로 정했다.대부 장장(長牂)을 불러 명했다.
"남쪽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주공 일행이 당도하면 극진히 영접해 들이시오."
그러나 위성공(衛成公)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임금이었다.
조정 신료들 중에는 위성공(衛成公)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섭정인 숙무(叔武)에 의해 발탁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위성공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 불안에 떨며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 도성을 버리고 간 임금이 다시 돌아와 군위에 앉게 되면 조정은 두패로 나뉘어질 것이 분명하오.
- 그렇소. 주공을 따라 진(陳)으로 간 사람들은 일등공신이 될 것이요,
국내에 남아 나라를 지킨 우리들은 죄인이 될 것이 분명하오.
조정 신료들의 이같은 마음을 눈치챈 영유(寧兪)가 그들 앞에 나서서 약속했다.
"진(陳)나라로 따라간 사람은 주공을 위한 것이요,국내에 머무른 사람은 나라를 지키기 위함인 것을
내 어찌 모르겠소.그러니 그대들은 안심하고 주공을 맞이하시오.
내가 책임지고 그대들의 안전을 보장하리다."
이 말을 듣고 조정 신료들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았다.
영유(寧兪)는 진(陳)나라로 돌아가 위성공(衛成公)에게 보고하였다.
- 숙무(叔武)는 진심으로 주공을 모실 생각입니다. 다른 생각은 일체 품고 있지 않습니다.
위성공(衛成公)은 안심했다.그러나 천견(歂犬)은 사정이 달랐다.
위성공(衛成公)이 귀국하여 숙무(叔武)로부터 순탄하게 정권을 이양받으면
지금까지 해온 중상 모략이 발각될 가능성이 높았다.이간죄(離間罪)는 참수형에 해당한다.
그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다가 급기야는 또 하나의 계책을 생각해냈다.
천견(歂犬)은 다시 위성공을 찾아가 속삭였다."아무래도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습니다.
숙무(叔武)와 영유(寧兪) 사이에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귀환 날짜를 정한 것부터 수상쩍습니다.“위성공(衛成公)은 또 천견(歂犬)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렇지? 굳이 날짜를 정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무엇인가?“
"저들이 약정한 날짜보다 앞당겨 귀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흉계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군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만약을 대비하여 신이 주공의 행차 선두에 서겠습니다.
저들이 무력을 행사할 경우에는 신이 방패막이가 되겠습니다.“
위성공은 천견(歂犬)의 충성스런 마음에 감격했다.
그의 청을 허락하는 한편 신하들에게 귀국할 채비를 하라는 명을 내렸다.
영유(寧兪)가 영문을 알지 못해 위성공에게 달려가 간했다."신이 이미 주공의 환국 날짜를
정해놓고 왔는데, 그 날짜보다 앞당겨 가신다면 공연히 국내 사람들만 놀래키는 일이 됩니다.
예정대로 출발하시기 바랍니다."천견(歂犬)이 옆에 있다가 영유(寧兪)에게 소리쳤다.
"그대는 어찌하여 주공이 속히 돌아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오?“
영유(寧兪)는 더 말해야 소용없음을 알았다.
마침내 위성공 일행은 위나라 도성 초구성을 향해 출발했다.
초구성(楚丘城) 가까이 이르러 영유(寧兪)가 다시 말했다.
"성안에서는 주공이 15일에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흘이나 먼저 당도하였으니 갑자기 들어가면 숙무(叔武)께서는 틀림없이 크게 놀랄 것입니다.
신이 먼저 입성하여 숙무와 조정 신료들에게 주공의 귀환을 알리겠습니다."
위성공(衛成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오. 숙무(叔武)와 신료들을
하루빨리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저들도 내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오.“
영유(寧兪)가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자 천견(歂犬)이 다시 위성공(衛成公)에게 말했다.
"굳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고집 피우는 것부터가 수상쩍습니다.
신 또한 지금 당장 입성하여 저들의 흉계를 저지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무장 병사들과 함께 병차를 몰아 수도 초구성(楚丘城)을 향해 달려갔다.
33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