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프랑스 파리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하던 팔레스타인 수영 대표 발레리 타라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마이클 펠프스가 8관왕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올림픽 출전의 꿈을 갖게 됐다고 돌아봤다. “첫 느낌은 ‘오, 멋진 걸' 같은 것이었다. 난 올림피언이 되고 싶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중 국적인 그는 26일(현지시간) 막을 올린 2024 파리올림픽에 팔레스타인 대표로 출전함으로써 꿈을 이룬다. 가자지구의 전쟁이 아홉 달 넘게 이어지며 4만명 가까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타라치는 올림픽 출전이 추모의 행동일 수 있다고 28일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그녀는 다음달 2일 개인 혼영 200m 예선에 나서는데 가자지구에서 가장 오래 된 기독교 가문의 후손으로 대회에 나서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한 교회가 파괴됐을 때 먼친척 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가자의 사망자 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에게 타격이 된다"고 입을 뗀 타라치는 “우리 친구들이며 우리 가족, 우리 팀동료나 국가대표팀 멤버들”이라고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95년부터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유엔 회원국 4분의 3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했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승인하지 않고 있다. 훈련 스케줄에 차질도 따를 수밖에 없지만 타라치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입장하는 기회를 잡아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조국의 동포들이 매일 겪는 고통에 비견하면 본인의 고통은 하잘 것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타라치보다 훨씬 운이 나빴던 팔레스타인 대표로는 육상 선수 타메르 카우드가 있다. 가자에 있는 그의 집은 파괴됐다. 그와 가족은 전쟁 중에 두 차례나 강제로 이사해야 했다. 가족들은 현재 가자지구 정중앙의 다이르 엘발라의 텐트 안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이번 주 BBC 기자를 만나 “내 꿈은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은 뒤 "불행히도 전쟁과 여건 때문에 우리는 가자를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1500m를 뛰는 그는 두 차례나 국가 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일년 전 알제리 아랍대회에 출전하며 처음으로 스파이크화를 신었다. 콘크리트가 아닌 곳을 달려본 것도 처음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9월 그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타라치와 팔레스타인 대표로 함께 출전했다. 지난해 10월 초 가자 전쟁이 터졌을 때 둘은 여전히 항저우에 있었는데 카우드는 귀국해야 했다.
그의 최고 기록은 올림픽 출전 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 파리올림픽에 나가려면 실낱같은 기회, 심지어 와일드카드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었지만 재빨리 사라졌다. 그는 “제이콥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겨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현재 세계챔피언 제이콥 잉게브리센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와 함께 달리고 싶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와 경쟁하는 것이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는 여전히 흰색 팔레스타인 유니폼을 입고 다이르 엘발라의 텐트들과 먼지 투성이 평원을 누비며 훈련하고 있었고, 어린이 몇몇이 구경하고 있었다. 그가 예전에 훈련했던 가자 시티의 야르묵 스타디움은 쓰레기 야적장이 됐고, 관중석은 유랑민들의 피난처가 됐다.
그의 코치 비랄 아부 사만은 지난해 12월 공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팔레스타인 축구협회에 따르면 전쟁 이후 희생된 선수 및 스포츠 관리는 182명으로 집계된다. 일부에서는 스포츠 종사자 300명이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기도 한다. 카우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했다. 가자를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절대로 자신의 꿈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 두렵다고 했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했다. 우리 꿈을 산산조각냈다. 난 가자를 떠나 훈련 캠프에 합류해 오래 전의 강인함을 되찾아 이전보다 더 강해져 돌아오고 싶다.”
파리올림픽 수영에 출전하는 다른 팔레스타인 선수 야잔 알바우왑은 스포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되는 곳의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풀 수영장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인프라가 없다.”
타라치처럼 알바우왑은 해외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면 강렬한 자부심이 생긴다고 했다. "프랑스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는다." 그는 이 문장을 꾹꾹 눌러 두 차례 말한 뒤 "난 국기를 올리기 위해 여기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대회에는 팔레스타인 대표로 8명이 출전해 도쿄올림픽 5명보다 늘어났다. 그런데 이 중 출전권을 따낸 선수는 태권도 오사마 이스마일(18)이 유일하다. 타라치를 비롯해 7명은 IOC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Universality Places program'에 힘입어 출전한다. 수영, 유도, 역도, 복싱 등 좀처럼 올림픽 출전 기회를 잡기 어려운 개발도상국이나 빈국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