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정영자
내 인생 가을만 쫓다 눈을 떠본다. 칼림바 배우는 내 옆 짝꿍 여사님이 붉게 익은 알밤을 책상마다 새알씩 나눠주었다. 튼실한 붉은 알밤을 보니 가을이란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짝꿍은 남편분이 알밤을 많이 주워오셨다며 별도로 우리 영감 몫까지 챙겨왔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점심이라도 먹고 가자고 했더니 바빠서 가야 한다며 쏜살같이 자전거로 내달렸다, 나는 시장가서 밤 대추 감을 보기는 했으나 가을이란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구수하고 삶아온 달달한 밤 맛에 가을을 마음속에 담아보았다,
눈만 뜨면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복지관 수업과 남편 병 수발로 살다 보니 철가는 줄도 모르고 운동 삼아 사십분을 걸어오니 늘 바쁘다. 요즈음은 올때는 버스 타고 집에 갈 때만 걸어간다. 가는 길은 초등학교 샛길을 지나서 두꺼비 하천을 걷다 보면 아파트 사이 창조의 길이다, 봄 여름에는 장미꽃 터널 지붕을 덮고 옆으로는 홍보 게시판 안에 학생들의 다양한 그림과 글이 눈길을 끄는 곳이다. 초 잎 한 옆에는 메뚜기 코스모스 거미줄에 왕거미 조각품도 늘 한 자리를 지키는 길 물방개 등에 앉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도 시원한 그늘이 햇빛을 가려주는 곳이다. 거기서 2~3분만 나오면 큰길 산남로 수곡로 대로변이다. 오늘은 대로변 길 건너편 가로수 나무들을 바라보니 빨강 노랑 파란 오색 옷을 갈아입었다.
날씨 또 한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파란 하늘이 더 싱그러워 보인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계절, 가을을 이제야 느껴본다. 또 길 건너편에는 명품 황톳길도 있어서 운동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지금은 시간상 낮 열두 시 점심 때어서 한가롭게 조용하다. 길옆 중화요리 집 울안에도 커다란 대봉감이 붉게 물들어 담 넘어까지 가을을 알려준다. 나는 언덕진 길이어서 뒷걸음으로 걸으며 한가롭게 사방을 둘러보니 다시 아파트 샛길로 들어섰다. 이 길도 어느새 육 년째 걸으며 길 옆에 곱게 핀 국화꽃 금잔화 무궁화 철 따라 피는 꽃을 보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가끔은 계절도 잊고 산다.
가로수 은행잎도 노랗게 물들어 웃고, 아파트 사이길에는 어느새 낙엽이 쌓여 땅에서 몸부림친다. 나는 낙엽 위를 밝고 지나니 바삭바삭 아프다고 속삭이는 느낌이다. 늘 그냥 지나쳐 다니던 길이지만 잠깐 눈을 돌려보니 내 옆에도 가을은 와있었다. 오늘도 솔솔 부는 가을바람 마시며 많은 운동기구에 몸을 실어 그네에 올라본다. 그리고 몸 비틀기 무릎 굽히기 팔 돌리기를 백 번씩 하다 보면 금세 한 시간이 지난다. 다시 집에 가려면 아직 온 거리보다 3분의 1은 더 걸어야 한다. 운동을 마치고 걷다 보면 수곡 우체국 옆에도 노란 모과가 조롱조롱 햇빛에 노랗게 익어서 참 예쁘다.
태양의 힘이랄까? 가을의 멋이랄까, 눈요기로 다시 아파트 앞을 지난다. 아파트 뜰에는 붉은 성류가 발그레한 얼굴로 부끄러워 수줍은 듯 아래만 내려다 본다. 나는 오늘 밤 맛으로 인해서 눈과 마음으로 가을을 보고 느끼며 걸어왔다. 4~5년 전만 해도 뒷 뜰 개나리 울타리에는 얼룩무늬 바다리 집에서 벌들이 왕왕대고 고추잠자리도 보였지만 모두 다 간곳없고“ 어쩌다 까마귀 소리만 간간히 들린다. 그러니 내 발이 안 움직이면 오늘에 이 맛을 못 느끼고 또 겨울을 맞이했을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학교로 운동을 다녀서 남 이야기도 듣고 눈으로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을 몸과 마음으로도 경험했었다. 하지만 한번 쓰러지고 나서는 자식들 야단에 조심을 많이 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진 느낌이다, 그러니 이제는 나의 늦가을은 물 흐르듯 세월 흐르는 대로 다 내려놓고, 가는 세월에 이 한 몸을 담아 정처 없이 유람이나 해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2024~10월의 마지막 날 31일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