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암 함걸(密菴咸傑)선사는 민땅(閩:福建省)사람이다. 처음 영(嶺)을 나와 무주(婺州)지자사(智者寺)에서 햇볕을 쪼이고 있었는데 한 노스님이 물었다.
"상좌는 이번 행각을 어디로 갈 예정이오?"
"사명산(四明山)육왕사(育王寺)를 찾아가 불지(佛智本才)스님을 뵙고자 합니다."
"말세가 되어 도가 없으니, 후배 선승들이 행각에 한결같이 귀만 달고 다니지 눈이 없단 말이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육왕사에는 천명의 대중이 찾아와 노스님은 매일 그들을 맞이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너희들에게 착실하게 기연을 틔워줄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말에 밀암스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길로 구주(衢州)명과사(明果寺)를 찾아가면 화편두(華扁頭:應菴曇華)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비록 후배지만 견식이 뛰어나니, 너는 그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
노스님의 말을 따라 밀암스님은 명과사 담화스님에게 귀의하였다. 담화스님의 가풍은 엄격하여 들어가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함걸스님은 갖은 고초를 꺼리지 않았다. 하루는 담화스님이 방장실에서 그에게 물었다.
"바른 법안이란 무엇인가?"
"깨진 사기 그릇이 무슨 값어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허공이 다 녹아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삐죽삐죽 주머니 속의 송곳자루가 불거져 나옵니다."
"같은 죄를 두 번 벌주지는 않는다."
담화스님은 즉시 법상에 올라 대중들에게 알렸다.
"크게 깨친 사람이 법당 앞에서 절벽이 무너지고 바위가 깨질 만한 말을 하였노라."
함걸스님은 담화스님을 의지하여 4년 동안에 많은 성인의 명맥(命脈)을 모조리 깨치고, 모친이 연로하여 고향에 돌아가겠다 하니 담화스님은 게를 지어 전송하였다.
크게 깨쳐 기연에 맞는 말로
곧장 정수리가 확 트였고
사년을 함께 지내며
묻고 따져도 훤하여 흔적이 없네
아직은 의발을 전하지 않았지만
그 기상 우주를 삼키리라
바른 법안을
도리어 깨진 사기그릇이라 하였네
이 걸음 모친을 뵈러 가는 길이나
결코 눌러앉진 말아다오
나에게 말후구가 있으니
네가 돌아오거든 전하리라.
大徹投機句 當陽廓頂門
相從經四載 徵詰洞無痕
雖未付鉢袋 氣宇呑乾坤
却把正法眼 喚作破沙盆
此行將省覲 切忌便跥跟
吾有末後句 待歸要汝遵
뒷날 구주(衢州)오거사(烏巨寺)의 주지가 되어 학인들이 수없이 운집하자 상당법문을 하였다.
"종전에는 거짓말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만 산에 불을 질러 밭사이의 골뱅이를 줍고, 하얀 해골 나무 위에 고기는 새끼를 낳고 세찬 여울 가에 새는 둥지를 튼다."
이 말은 모두 스님이 명과사에 있을 때, 깊은 밤에 나무꾼의 노래를 듣고서 무명[三漆桶] 을 타파한 화두이다. 스님의 비밀스런 기연은 헤아릴 수 없는 경지였다.
스님은 전후 일곱 차례나 큰 사찰의 주지를 지낸 후 태백산에서 열반하였다. 그러나 응암스님의 도는 함걸스님의 힘으로 크게 행하여진 것이다.
참으로 행각하여 스승을 찾아가는 데에는 눈을 가지고 다녀야지 귀만 달고 다녀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한 울타리 밑에 있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겪어 봐야 하며, 절의 크고 작음이나 대중의 많고 적음을 따라 세월을 허송해서는 안된다. 이 일에 있어서 바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석가모니 뱃속을 지나쳐 왔다 해도 똥막대기에 불과함을 알아야 하니 어찌 이를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