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오일장
곽효환
역참과 찰방이 있었고
전주나 남원, 곡성, 구례, 순천으로 혹은
장수나 순창으로 가려면 거쳐 가야 했던
교통 요지 오수에
장이 서는 5일 또는 10일이면
할머니 손을 꼭 붙잡은 어린 나는
휘둥그레진 눈에 몸이 달아 어쩔 줄 몰랐다
오수 망루에서 정오 사이렌이 울리고
풀무질과 칼 벼르는 소리 가득한 대장간을 힐끗거리고
옷감 끊는 사람들과 흥정이 오가는 포목전을 기웃거리고
중절모에서 빨간 털모자까지
온갖 모자를 파는 모자전을 곁눈질하고
꽃신 비단신 고무신 파는 신발가게 앞에 멈춰서
운동화 사달라고 조르고
그릇 소반 비누 양초 등 온갖 생활용품을 파는 잡화점과
손님 부르는 소리 가득한 장돌뱅이들의 난전은
늘 흥성흥성했다
소와 말 같은 가축 거래를 마친 어른들은
국밥집으로 자리를 옮겨 통성명하고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릿잔을 기울였고
나는 조르고 조른 끝에
커다란 쇠 가위를 현란하게 돌리고 부딪치는
엿장수에게 산 엿가락을
볼이 터지라고 물고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요란한 북과 심벌즈 소리와 함께 원숭이가 흥을 돋우는 작은 공연과 연신 주문 외우듯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며 붕어 그림이 그려진 약봉지를 흔들며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의 외설스럽고 걸쭉하고 마법 같은 입담에 나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이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고
더 많은 근동 사람들로 차고 넘쳐 붐비던
전국에서 가장 큰 면 소재지
근방 제일의 오일장터 거리는
이제 한때의 추억으로 남아
몸을 부딪치며 지나다니는 사람도
장날 따라 옮겨 다니던 장돌뱅이도
큰 소리로 호객하던 장사꾼도 사라지고
늙은이들과 더 나이 든 늙은이들이
느린 걸음으로 드문드문 오고 또 간다
------
곽효환(郭孝桓)
- 시인, 경남대 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 1967년 전주 출생
-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 을 발표하고,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너는』,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등
-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등
- 편저 『이용악 시선』,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 『아버지, 그리운 당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백석 시그림집』, 『이용악 전집』(공편), 『청록집 ―청록집 발간 70주년 기념 시그림집』, 『별 헤는 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등
- 고대신예작가상, 애지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김달진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