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나는 바르게 살까요?
오늘은 사제로서 본보기의 삶을 사신 아르스의 성자, 요한비안네 사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사제 직무를 준비하는 일에 세상의 학식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로 신학교에서 교육을 준비하던 시간에 여러 차례 미끄러졌다고 합니다만,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사제가 된 다음에는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살았던 분이라고 합니다.
비안네 성인에게서 우리가 본 특별한 모습은 사제의 직무인 고해성사를 위하여 하루에 18시간을 고해소에서 머물만큼 지낸 분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사람이 자기의 삶에서 충실하게 산다면 놀라운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의 선포를 통해서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듣기가 두렵다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현실을 그렇게 대할 수 있다면, 그만큼 사람의 삶이 하느님의 뜻에서 멀리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어찌하여 하느님의 뜻에서 멀리 있거나 다르게 길을 가도 되는지 당연하게 여길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그렇게 살면서도 자기의 삶에 불편한 일이 생기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자기의 삶에 생기도록 허락하신(?) 하느님께 탓을 돌리고 모든 원망을 쏟아 붓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삶에서 놀라운 일을 만나거나 힘겨운 일을 만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기하고 질투하신 일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사람은 그렇게 삽니다만, 그 일이 얼마나 옳다고 하겠습니까? 내가 잘못된 길로 간다면 그렇게 해서 생기는 잘못이나 행동의 결과는 내가 책임을 감당하면 되는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길 일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들의 삶을 바르게 대하지 못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하여 불만을 제기하는 방법으로 제자들의 삶에 관해 딴지를 걸었습니다. 제자들이 잘못된 삶을 산다고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율법을 대하면서 행동한 모습이 온전히 옳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모습은 잘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하여 내가 올바로 살았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겠는지 그 모습을 잘 새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