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초년에는 시월을 좋아하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십일월이 좋아졌다.10월의 마지막 저녁에 지금 나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싸늘한 공기에 전율하며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을 듣고 있다.
초가을의 상큼한 공기와 과수의 풍요로움이 나를 기쁘게 하던 때가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한때의 꿈인 양, 나는 지금 내 내면의 황량함을 관조하고 있다.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한없는 불안함은 십일월을 맞아 더욱 익숙하게 나에게 엄습한다. 그 끝없는 고독을 느낄 때, 나는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깊은 위안을 얻는다.
진짜 사라지고 싶다고 느꼈을 때...나는 십일월이면 항상 그러했다.해가 으슥하게 넘어가는 싸늘한 십일월의 노을과 이윽고 검게 짙어가는 교정의 나무들을 보고 있자면,나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학교 앞 주점가를 서성거리며 누군가를 찾아 다녔다.아침에 깨어나면 한편으로는 살아있음이 다행스럽고,한편으로는 사라지지 못한 아쉬움에 묘한 현기증을 느끼며, 하루를 견디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되뇌이곤 했다.
외로움과 고독을 노래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헤르만 헤세, 이 두독일시인은 나에게 외로움 속에서 구원받는 법을 가르치는 듯 했다.독일의 가을은 그렇게 습냉하고 음습하다던가? 그들은 모든 존재의 운명이 애초부터 그러하다는 듯 단호하게 세계와 절연하고 한없이 고독해 한다.과연 나는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12년전 시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나는 충정로의 한 다방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 횡한 바람이 낙엽을 이리저리 흐트리게 하던 날, 나는 긴장된 맘으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퍽 좋군요"라는 전화기반대편의 소리에 나의 의무적 대답은 "바람도 많이 붑니다."였다. 그렇게 서로를 확인하면, 나는 앞으로 나도 모르는 새로운 운명에 처해야 했다.사람이 거의 없는 다방에서 나에 대해서 불안해 하고, 나의 임무에 대해서 반의 확신과 반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 갑자기 이용의 노래가 나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나는 한없이 울었다..그냥 사는 것이 초라하고,나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다시는 이런 세계, 이 따위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맘만 들었다...
누구는 시월의 마지막 날에 고통스런 실연을 했겠지만, 나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에 고통스러워했다.도대체 그 무엇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십일월이 다가 온다. 나는 이번 십일월에는 변해야겠다.흔적도 없이 사라져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는다는 처절한 맘으로 나는 또다시 이 불가해한 세계와 싸워야 하겠다.그것이 신의 뜻이라 할지라도....
안개 속에서
詩: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헤메임은 참으로 이상하다.
덤불과 들은 모두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나의 생활이 아직도 밝던 때엔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지금 안개가 내리니
누구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가만히 격리시키는
어둠을 전혀 모르는 사람
정말 현명하다 할 수가 없다.
안개 속을 헤메임은 참으로 이상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